박종민 기자"고속터미널 오면서 흉기 소지한 남성 붙잡혔다는 뉴스를 봤는데, 아차 싶더라고요. 사람 많은 곳 무섭죠. 사람이 많으면 범인이 숨기가 더 쉬우니까요."
4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박관우(23)씨의 말이다. 20대 건강한 청년조차 이제는 사람 많은 곳이 두렵다고 한다. 신림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지 2주 만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소재 백화점에서 또다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지면서 시민들은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사람 많은 곳 무서워" 공포로 가득 찬 '다중밀집지역'
이날 오후 고속버스터미널은 버스를 타려는 시민들로 북적이면서도 서늘했다. 터미널에서 흉기 2개를 소지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힌 지 몇 시간이 채 안된 시각, 경찰관들은 시민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거동이 수상한 자를 찾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4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민소운 기자일부 시민들도 주위를 살피는 등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강선경(44)씨는 "어쩌다가 한 두명 찌르는 일은 뉴스에서 봤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주 다치는 건 처음이다 보니 소름 돋는다"면서 "사람 많은 곳을 안 갈 수는 없지만, 사람 많은 곳을 가기 무서워졌다"고 말했다.
박관우(23)씨 또한 "어쩔 수 없이 고향에 내려가야 하니까 고속터미널에 오긴 했지만 사람 많은 곳이 갑자기 좀 무서워졌다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괜히 길 가다가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 정도"라고 털어놨다.
4일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몰. 민소운 기자서울 송파구 잠실역 분위기도 삼엄했다. 앞서 이날 오전 잠실역에서 사람을 죽이겠다는 '살인 예고' 글이 올라온 탓에, 지하철 역사 내에는 경찰들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순찰을 돌고 있었다.
롯데월드몰에도 곳곳에 보안요원들도 배치됐다. 쇼핑몰 안에는 "고객 안전을 위해 보안인력 강화 운영 중"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졌다.
그럼에도 '묻지마 범죄'는 사실 언제든 한두 사람의 목숨쯤은 앗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민들은 떨었다. 최오찬(77)씨는 "겁나서 어떻게 살겠냐, 난데없이 칼을 휘두르고 이러면 겁나서 다니겠냐"면서 "오늘도 잠실역 살인 예고 글이 올라왔다고 들어서, 지금 오면서도 두리번거리면서 왔다"고 말했다.
최씨는 "사람 많은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면 예상을 못하지 않냐, 어떻게 준비나 대응이라는 걸 할 수가 없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거 아니겠냐"고 혀를 찼다.
이모(42)씨는 "나 같은 경우 공황장애가 있어서 그런 사건들이 더 무섭고 두렵다"면서 "아침에 잠실역에서 사람 많은 지하철에 있는데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고 토로했다.
최근 잇단 '흉기난동'은 모두 인파가 몰리는 '다중밀집지역'에서 발생했다. 이에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담화문을 통해 다중밀집지역을 포함한 공공 장소에 대한 순찰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다중밀집지역) 247개소를 선정해, 경력 1200명이 배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보면, 다중밀집지역에 방범활동을 위해 배치된 경력은 총 36중으로, △서울 3중2제 △부산 2중2제 △대구 2중2제 △인천 4중 △광주 4중 △대전 2중 △울산 1중 △세종 1중 △경기남부 7중 △경기북부 2중 △강원 2제 △충북 1중 △충남 1중 △전남 1중2제 △경북 2중 △경남 1중△제주 1제다.
경찰특공대 전술요원(SWAT) 또한 전국 총 13개청에 99명이 배치됐다. △서울 25명 △광화문 김포공항, 부산 4명 △인천 4명 △광주 5명 △대전 8명 △세종 5명 △경기남부 16명 △경기북부 6명 △충남 7명 △전남 7명 △경남 4명 △제주 8명이다.
이중무장한 경찰관들이 장갑차와 함께 다중밀집지역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경찰청 제공'살인 예고'글에 '가짜뉴스'까지…시민 불안 증폭
이런 가운데 신림을 포함한 각지에서 살인을 예고한 글이 잇따라 온라인에 올라오면서 시민들의 불안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날 오후 5시 50분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 '왕십리역 살인 예고' 글을 작성한 20대 남성 A씨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살인 예고' 게시글만 20개 이상으로, 경찰은 이중 게시자 3명을 검거해 1명을 구속해 검찰로 넘겼다. 구속된 20대 남성 이모씨는 실제 흉기를 구매하고 범행 계획도 세웠던 정황이 드러나면서 '살인 예고' 게시글을 단순한 장난으로만 보기 어렵다.
경찰은 '살인 예고' 게시글 작성자를 검거하기 위해 모든 경찰력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서현역 사건을 계기로 사이버 수사 역량을 모두 투입해 (게시자를) 추적하고 있다"며 "협박 또는 특수협박이라도 구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흉기난동' 관련 가짜뉴스까지 등장했다. 4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날 오전 11시 22분쯤 경기 포천시 내손면 종합버스터미널에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해 30여 명이 다쳤다는 글이 퍼진 것이다.
만취한 40대 남성이 흉기 난동을 부려 7명이 의식 불명이 되는 등 총 36명이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버스터미널 안에 있던 버스 12개가 전소됐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지만, 경찰과 소방당국의 확인 결과, 해당 내용은 사실 무근인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
포천 뿐 아니라 대구에서 흉기 난동이 발생했다는 가짜뉴스도 퍼졌다. 3일 오전 3시쯤 대구의 한 PC방에서 손님이 직원을 흉기로 찌른 뒤 도주했다는 뉴스가 퍼진 것이다. 이에 경찰은 "사실 관계를 확인한 결과 위 사건은 대구에서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온라인상에 퍼지는 살인 예고글과 가짜뉴스에 대해서도 수사력을 집중해 엄단할 방침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전 수사역량을 집중해 게시자를 신속히 확인·검거하고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했다.
경찰 "총기·테이저건 사용 주저 않겠다" 선포
윤희근 경찰청장이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흉기난동 범죄 대응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시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경찰은 흉기 난동 범죄에 대해서는 총기와 테이저건 등 경찰이 가진 물리력을 적극 사용해 범행을 조기에 차단하기로 했다.
윤 청장은 "총기, 테이저건 등 정당한 경찰 물리력 사용을 ㄷㅓ주저하지 않고, 국민 안전을 최우선 기준으로 경찰관에 대한 면책규정을 적극 적용해 현장의 법 집행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총기 사용 관련, 흉기 소지 범죄에 대해서는 최고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급박한 상황에서는 경고 사격 없이 실탄 사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흉기를 소지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나 이상 행동자에 대해서는 메뉴얼에 따라 선별적 검문검색도 실시하기로 했다.
더불어 경찰은 "권총으로 이중무장한 경찰특공대원 127명을 전진배치했다"고 밝혔다.
또한 "다음날(5일)부터는 전술 장갑차 10대를 추가 배치해 초기에 범죄 분위기를 완전 제압해 국민들이 평온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서울(광화문, 김포공항, 용산) 25명 △부산(김해공항) 4명 △대구(대구공항, 반월당역) 6명 △인천(인천공항) 4명 △광주(광주공항, 송정역, 터미널) 5명 △대전(대전역, 터미널 등) 8명 △세종(정부청사, 코스트코 등) 5명 △경기남부(오리역, 서현역) 16명 △경기북부(의정부역, 신세계백화점 등) 6명 △충남(천안아산역, 터미널 등) 7명 △전북(부안 잼버리 행사장) 12명 △전남(무안공항, 나주역) 7명 △경북(구미KTX역, 홈플러스 등) 10명 △경남(창원 중앙역) 4명 △제주(제주공항) 8명을 각각 배치해 위력 순찰과 안전 점검에 나섰다.
더불어 강남역, 부산 서면역, 대구 중앙로역, 대전 KTX역, 세종 정부종합청사, 경기 남부 오리역, 수원역과 전북 잼버리 행사장, 경남 김해 신세계 백화점, 제주 제주공항에는 장갑차 10대가 배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