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선고공판 마치고 나오는 김태우 전 구청장. 연합뉴스 서울의 서쪽 끝자락 강서구가 시끄럽다. 오는 10월 11일 예정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문이다. 도로 곳곳에 어지럽게 설치된 여야 정당의 현수막들이 소란을 더 부추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김태우 전 구청장이 지난 5월 대법원 판결로 구청장직을 상실하면서 발생했다.
김 전 구청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으로 일하면서 조국 전 민정수석의 감찰무마 의혹 등 내부 비리를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공직상 알게된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용히 치러질 것으로 보였던 보궐선거가 갑작스레 큰 주목을 끄는 이유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민심을 들여다볼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로서는 집권 초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되는 것이고 민주당으로서는 사법리스크에 시달리는 이재명 체제에 대한 평가라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
따라서, 여야 모두 승패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공천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강서구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지만 민주당 후보가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힘 김태우 구청장에게 패했다.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보궐선거가 실지회복에 나설 기회다.
공천경쟁이 여당 보다 훨씬 뜨겁다. 무려 13명이 후보자 사전검증을 위한 검증위원회에 명단을 올렸다.
그런데, 그 면면을 보면 지역구민들에게 명함을 내밀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처참하다.
후보자들의 대부분이 상습 음주운전에 건축 사기, 도박, 미투 연루 등 각종 범죄 전과자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지역에서 사업을 하거나 토착 정치인으로 활동해온 인물들이다.
이러다보니 전략공천 얘기가 나오고 실제로 지역과 별 인연 없는 인사가 공천 경쟁에 뛰어들기도 했다.
인사말 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몰락 원인 중 하나가 도덕적 붕괴였다. 내로남불과 선택적 공정이 국민적 분노를 샀고 윤석열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제 야당으로 도덕성으로 재무장해야 할 민주당이 이같은 범죄 연루자를 보궐선거 후보자로 내세운다는 것은 유권자를 무시하는 처사다.
국민의 힘 사정은 설마가 현실이 되는 아연실색할 상황으로 가고 있다.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김태우 전 구청장이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되면서 김 구청장 재출마설이 현실화되고 있다.
국민의 힘 소속 일부 구청장들은 앞서 김 구청장의 특사와 보궐선거 재출마를 촉구하는 단체성명을 내기도 했다.
여당 일각에서는 김태우 전 구청장은 일반 범죄자가 아닌 공익제보자이며 나아가 정권 출범의 일등공신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희생양이기 때문에 재출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어불성설이 없다. 김태우 구청장의 단체장직 상실은 대법원이 결정한 일이다.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상식, 법치라는 가치에 따라 탄생했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정권의 특별사면 남용이 검찰수사의 정당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이런 윤석열 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부인하는 것은 헌법을 유린하는 것이고 정권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다.
사법부 판결을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명분으로 덮을 수는 없다.
국민의 힘 당규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원인을 제공한 재.보궐선거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을 수 있다'라는 규정이 있다.
당 지도부가 이 문제로 고민하는 모습 자체가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사법부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불과 석달 만에 원인 제공자를 특별사면해주고 재출마시키는 것은 지역구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다.
강서구청 청사. 연합뉴스 국민의 힘으로서는 후보자를 아예 공천하지 않을지언정 사법적 판결을 받은 김태우 전 구청장을 다시 후보로 내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야당 시절 보궐선거 책임론으로 여당인 민주당을 거세게 공격했던 일을 기억해야 한다.
김 전 청장이 내부비리를 폭로한 계기가 자신의 비리에 대한 감찰에서 비롯된 '부정한 목적'이라는 판결문의 의미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전과자가 판을 치는 민주당이나 사법적 판결을 받은 전직 구청장을 재등판시키려는 국민의 힘 공천 움직임은 강서구민들에게는 똑같은 모욕이다.
"강서구민들이 그렇게 우습냐?" 필자가 CBS 시사프로 한판승부에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소식을 전한 뒤 어느 강서구민이 쓴 댓글의 일부다.
여야 정당들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자를 정하면서 이런 인물들로 현 정권의 심판자를 자처하거나 양심수 운운하는 일은 없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