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아름다운 크리스천을 만나는 시간, 로드인터뷰 사람꽃. 오늘은 조수교의 집사인 사회복지법인 평화의 마을 이귀경 대표를 제주CBS 목회자 기자인 조수교회 주성학 목사가 만나봅니다.
◆주성학> 제주 사회적 기업 1호인 평화의 마을에 와 있는데요. 이곳은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일을 하는 곳입니까.
◇이귀경>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곳이에요. 사회에서 일을 하기가 힘들거나 능력들을 인정받지 못해서 일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이 일을 하고 있고요. 비장애인 직원들도 직장의 동료로서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거죠. 중증장애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직접 돈을 벌게 해서 지역사회의 시민으로살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주성학> 어떤 방식으로 그분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돕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귀경> 일이라는 게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 것과 더불어 자기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거든요. 남의 보호를 받거나 남의 돈으로 살고 있는 의존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자기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요.
여기는 제주의 질 좋은 흑돼지로 소시지를 만드는 곳이에요.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 사람들이 우려했어요. 중증 장애인들이 소시지를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든 것이 혹시 위험하진 않을까 하는 우려였는데요.
그때 제가 '남의 시선이 그렇다면 우리가 표준화된 인증을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해썹(HACCP)을 준비했습니다. 결국 2007년도에 인증 받고 국제적인 표준에 준하는 위생적인 환경에서 좋은 품질을 가진 소시지를 만든다는 콘셉트로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당당하게 직장인으로서, 소시지를 만드는 장인으로서 인식 전환을 하게 됐고, 직접 번 돈으로 지역사회 소비자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 겁니다.
독일육가공공장에서 살라미를 배울 당시의 모습, 공장대표와 함께. 이귀경 대표 제공◆주성학>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이귀경> 여기에 이 시설을 만들기 전에 저는 장애인 시설에서 일을 했어요. 장애인 시설에 있는 학교에서 양호 교사로 일을 했는데요.
그때 저는 뭔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능이 낮다는 이유로 자기의 의사결정이 아닌 격리된 환경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나, 뭔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제주로 오게 된 거예요.
당시 제주에는 이런 장애인 시설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필요한 곳에 가자고 해서 제주로 오게 된 겁니다. 저희가 생각한 것은 이 사람들이 장래에 부모님이 안 계셔도 자기 혼자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자립을 우선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님들이 부정적이었습니다. 내 아이를 돈을 줘도 맡길 데가 없는데 어떻게 자기가 돈을 벌어서 살 수 있다는 거냐면서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설득을 하고 시작한 게 2001년도였습니다.
◆주성학> 여기는 어떤 분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까.
◇이귀경> 부모가 없거나 부모도 장애를 가져 너무 멀어서 직장을 다닐 수 없는 분들이 주거하는 곳은 있지만 여기는 직업재활시설이고 직장입니다.
현재 31명이 일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발달장애인들입니다. 문자나 숫자가 되는 분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기능이 낮고, 그보다 더한 분들은 거의 하루 종일 잘 움직이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도 일거리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만일 일을 하기가 힘들면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기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게 저희 시설입니다.
◆주성학> 지금 대표님의 집무실 벽에 굉장히 많은 상장이 걸려 있는데요. 소시지의 나라라고 불리는 독일 소시지 경연대회에서 상을 수상하고 맛과 품질로 인정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이곳에서 생산된 그 소시지가 인정받고 알려지게 된 배경과 의미를 말씀해주시죠.
◇이귀경> 저는 이 분들에게 기술을 요하는 소시지를 만드는 기술자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제가 독일에 가서 상을 굳이 탄 이유도 '장애를 가졌지만 우리들이 만든 소시지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다. 나는 당당한 훌륭한 기술자들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상도 타고 그 다음에 홍콩에 수출도 했는데 그런 것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세계적으로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그런 제품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처음 소시지를 만들려고 생각했을 때는 이유가 몇 가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그걸로 부가가치가 높고 노동집약형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순환과 재구매가 빨라야 한다는 거였는데요. 그게 소시지였습니다.
처음 제가 소시지를 만들 때 저항도 있었습니다. 그때 삼겹살이 1만3000원이었는데, 만든 소시지가 1kg에 1만6000원이었거든요. 그때 많은 분들이 '삼겹살보다 비싼 소시지를 누가 먹냐, 소시지가 거기가 거기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가격에 초점을 맞추면 그 옆에 조금만 싼 가게가 있어도 거기서 사먹게 되거든요. 그래서 품질에 초점을 맞추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질 좋은 재료를 위해 직접 농사를 짓거나 간장을 담그면서 내 눈으로 보며 바로 넣을 수 있는 재료만으로 소지지를 만들게 된 겁니다.
좋은 소시지를 위해 간장을 직접 담근 모습.◆주성학> 맛과 품질에 있어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지금 궤도에 오르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귀경> 저희는 본래 거제도에 있다가 제주에 이런 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97년도에 내려왔는데요. 우선 땅은 사고 준비를 했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제가 간호사라서 병원에서 들어가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복지부와 일도 많이 했기 때문에 제주에서도 금방 진행될 줄 알았는데요. 지금은 이해하지만 제주의 배타성이 저희를 너무 힘들게 했습니다. 제주에 있는 단체들이 반대를 하기도 하고, 투자를 해주겠다고 했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기도 하고, 제주도청에서도 갑자기 안 된다고 하기도 하고. 민원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이를 악 물었습니다. 여기서 반드시 시설을 할 거라고. 그러면서 '하나님 만일 제가 이 일을 못하게 하시면 하나님이 손해 보시는 거예요' 하면서 지냈는데, 그렇게 4년 정도가 흐른 겁니다.
사실 지금 있는 곳도 처음에 샀던 땅은 아니었습니다. 부활절 40일 기도를 끝내고 보지도 않고 샀던 땅이 중산간 허허벌판이었고, 도저히 시설을 할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희를 도와주시던 장로님이 우연히 이 땅을 발견하게 됐고, 저희는 보자마자 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에 매달린 거죠. 제가 매달릴 곳은 하나님밖에 없었는데. 모세가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데, 바로 옆인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광야를 헤매게 한 것은 자기를 다 내려놓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저희도 그렇게 하신 거라고.
◆주성학> 집사님은 언제부터 신앙생활을 했습니까.
◇이귀경> 저는 교회는 안 다녔어요. 나 자신을 찾으려고 배낭 하나 메고 온 천지를 돌아다니던 중 어떤 작은 마을에서 종소리를 듣고 교회를 간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정말 심한 장애를 가진 작은 아이를 봤습니다. 그때 제가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째서 저 생명한테 저런 장애와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각도 안 주셨는지, 하나님께서 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생명 내가 책임질게요' 그렇게 맹세를 한 거예요. 그때가 제가 처음으로 교회에 들어간 거였어요.
그 후에 학교를 마치고 소록도에서 일을 했는데, 소록도에서도 계속 환자들이 '간호사님은 다른 건 정말 좋은데, 교회만 다니면 정말 좋겠다'고 얘기했지만 저는 주워들은 걸로 '하나님은 백성을 선택해놓는다고 하셨는데, 제가 선택받았다면 언젠간 가겠죠' 이렇게 얘길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소록도의 환자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겠다고,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셨는데요. 그 기도가 저를 이 길로 오게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주성학>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정체성 그리고 신앙적 가치가 집사님이 평화의 마을을 운영하면서 장애인들도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사회적 기업 운영에 영향을 많이 미칠 것 같습니다.
2016년부터 불우이웃 150여 명을 초대해 나눔 디너쇼 개최. 이귀경 대표 제공◇이귀경> 여기 있는 장애인들이나 직원들한테 종교를 강요하지 않아요. 다만 제 삶이 본받을만하면, 저의 모습을 보면서 종교인들이 저렇구나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작은 아이를 자기한테 오라고 했듯이 우리의 세상에는 누구는 낮고 누구는 잘 났고, 이런 건 없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또 제가 결심한 게 있어서 계속 이 일을 했기 때문에 존엄성은 하나님 나라에서 다 똑같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니까 제가 죄송스럽고 부끄럽지만 우리는 종교에 바탕을 둔 기관으로 운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성학> 기도 제목을 나눠주시죠.
◇이귀경> 신앙을 가질 때부터 생각을 한 건데요. '하나님께서 저를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사랑의 도구로 쓰여지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를 하고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 나중에 저로 인해서 본이 되도록, 삶을 품위 있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선물인, 우리 아이들, 여기의 아이들 모두 하나님이 너 해라하고 주신 게 아니잖아요. 근데 우리들은 자꾸 내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저도 제게 맡겨주신 것을 함부로 하기도 하고 저의 욕심에 의해서 자꾸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항상 내 입장에서 생각을 하게 되고 내가 먼저 판단하고 사람을 대하게 되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내 기준에서 옳지 않으면 바꾸려고 하거든요.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인거에요.
그 사람 그 자체가 본모습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귀한 건데, 우리는 장애를 가지지 않은 내 자신에 비유해서 그게 낫다는 생각을 한단 말이에요. 그리고 또한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네가 잘못했다 하는 것은, 제가 우리 직원들한테도 이야기하지만 '사랑이 없는 정의는 면허 받은 살인 청부업자다.'
그래서 저도 이곳을 운영하면서 장애를 가진 직원들이나 또 우리 비장애 직원들이나 다 마찬가지로 똑같이 귀하다 생각하고 늘 내가 먼저 판단하지 말자고 이야기를 해요. 그건 굉장히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남편인 남시영 대표(왼쪽), 주성학 목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