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맥스스튜디오 변승민 대표. 클라이맥스스튜디오 제공※ 스포일러 주의
류승완 김성훈 김용화 등 쟁쟁한 감독들 사이에서 독립·단편을 제외하고 필모그래피에 장편 2편만을 새겨 넣은 젊은 연출자 엄태화 감독이 출사표를 던졌다. 더군다나 액션, SF 등 여름에 걸맞은 색채의 영화 사이에서 재난 한가운데 던져진 채 민낯을 드러낸 인간들을 조명한 영화다. 이른바 '여름 성수기' 공식에서 벗어난 영화지만, 많은 이야기와 해석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렇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새로운 방식으로 흥행 공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제작사 클라이맥스스튜디오 변승민 대표는 바로 이러한 지점을 우선시했다. 가장 작품에 적합한 감독과 충무로 최고의 스태프가 모여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 말이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시너지를 발휘하며 관객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배우들을 모았다.
그 결과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변 대표의 바람대로 좋은 의미에서 가장 논쟁적인 영화가 됐다. 인간 군상의 욕망과 계급이라는 화두를 던진 영화는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한국 영화를 대표해 미국 아카데미에 도전한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클라이맥스스튜디오에서 만난 변승민 대표에게 영화의 시작부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슈 등에 관한 의견을 들어봤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비하인드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200억 대작을 엄태화 감독에게 맡긴 이유
▷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200억 원 이상이 들어간 대작인데, 대작 경험이 많은 베테랑 감독이 아닌 엄태화 감독을 선택했다. 엄 감독의 어떤 점이 영화를 완성해 줄 거라고 생각했나? 기성 감독이나 작품 경험이 적은 신인급 감독들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그 나름의 장점이 있겠지만, 어떤 작품에 적합한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많은 자본이 소요돼야 잘 구현될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에 필요한 요소들을 엄태화 감독님이 어떤 감독님들보다 잘할 수 있다는 신뢰가 들었다. 블랙코미디적인 요소, 긴장감을 가져가는 것 그리고 시각적 스펙터클을 주는 부분에서의 새로움 말이다.
엄 감독님이 단편 영화뿐 아니라 '잉투기' '가려진 시간' 등을 통해 작품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재능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사실 단순히 예산만 많이 드는 게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요소를 잘 버무려야지 관객들한테 닿을 수 있는 영화다. 엄 감독님과 작품을 같이 준비하면서 더더욱 확신이 들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영화에서 엄태화 감독의 색깔이 진하게 묻어나는 걸 보면서 제작자가 감독을 많이 믿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영화를 제작하면서 제작자로서 지키고 싶었던 지점이 있었나? 관객들한테 어떻게 새롭게 다가갈 것인가라는 대전제에 대한 합의가 초반부터 있었다. 기존 재난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접근해야 하는데, 상업 영화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고민 중 하나가 잘못하면 너무 낯설게 느껴져서 반감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작품적으로 필요한 요소와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한 간극을 계속 체크했다.
또 기획이나 논의 단계에서 했던 것들을 말 그대로 잘 구현할 수 있는 스태핑(인력운영)에 대한 부분이 되게 중요했다. 감독님이 이전에 같이 호흡을 맞춘 스태프들도 있지만, 각 영역에서 흔히 말하는 '최고'라고 하는 분들을 모셔서 감독과 제작자가 구현하고자 했던 것들을 완성도 있게 만드는 데 대한 세팅을 제일 많이 신경 썼다.
연출자가 작품을 만들며 어떤 선택을 할 때 좋은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옆에 많이 두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질문들을 계속 받다 보면 연출자도 자신의 생각이 더 확고해지는 동시에 미리 관객들한테 받을 질문을 받게 되면서 균형적인 시각을 만들 수 있다. 나도 그런 지점에서 다른 작품보다 좀 더 재밌게 작업했던 것 같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여타 재난영화처럼 재난 상황이 가져오는 스펙터클보다 재난 한가운데 놓인 사람들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기에 관객들이 감정적인 피로에 짓눌리지 않도록 전반적인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작품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요즘 현대 관객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품을 준비할 때도 이를 어떻게 설득력 있게 해낼 건지가 중요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사람들이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물도 다양하다. 어떤 한 명이 작품 전체를 끌어가서 그 사람의 시각 자체를 주입하기보다 '그 안에 놓인 우리라면'이라는 질문을 관객들이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공감을 얻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 지점에서 캐스팅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다양한 인간 군상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
▷ 말한 대로 관객들을 흡인력 있게 끌어당길 수 있는 연기력의 소유자가 어느 때보다 중요했던 작품이다. 캐스팅 과정에서 가장 염두에 둔 지점은 무엇인가? 결국 관객들이 배우들을 보고 그들에게 공감하기에, 이에 가장 적합하고 이상적인 배우가 누가 있을지 엄청 고민했다. 우리가 가진 비전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려면 공감대를 확실하게 가져갈 수 있는 연기력뿐만이 아니라 대중적인 부분에서 좋은 소통을 하는 배우들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지금의 배우들이 모였다. 모든 작품이 배우의 얼굴로 완성이 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어떤 작품보다도 배우의 얼굴이 굉장히 중요했던 작품이다.
▷ 반상회 신을 보면서 그런 지점을 명확하게 느꼈다. 주조연뿐 아니라 단역까지도 하나하나 살아 숨쉬며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캐스팅할 때 가장 중요한 게 '실제 같은'이라는 키워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매체에서는 낯설지라도 굉장히 오랫동안 무대에 서거나 앙상블을 많이 하셨던 배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연기라는 것이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받아주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배우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재능과 에너지가 훨씬 더 잘 구현된다고 본다. 그런 지점에서 모든 배우가 각기 서로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신 하나하나가 되게 조화롭게 나왔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병헌을 향한 엄청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병헌이 어떤 점에서 김영탁 역에 적역이었다고 판단했나? 이병헌 배우는 정극과 희극 모두를 다 섭렵할 수 있는 가장 스펙트럼이 넓은 인물이자 소시민적인 부분들도 드러낼 수 있고, 영웅적인 느낌도 가지고 있다. 끝과 끝의 폭이 가장 넓고, 그 끝과 끝이 어디까지인지 아직 그 한계가 없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영탁은 단순히 선악으로 구분할 수 없다. 또 초반의 가벼운 듯한 영화의 톤앤매너를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뒷부분에 가서는 관객들에게 뜨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다. 그런 부분에서 가장 적역이었다.
▷ 지금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가 나오고 토론의 주제로 놓이는 인물 중 한 명이 명화다. 영화 안에서 명화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 줄 거라 기대했는지 궁금하다. 명화와 민성이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들의 시점으로 영화가 마무리되고 다양한 인물이 오가야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가 정확히 전달될 거라고 봤다. 명화를 둘러싼 논의들은 사실 우리가 가장 바랐던 지점이다. 명화는 단순히 옳은 이야기만 주장하고, 살아남으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장애물이 아니다.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그것들을 공유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가장 주체적인 여성상이다. 어떠한 대세나 환경에 지배 받지 않고,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는 발언을 함으로써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캐릭터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놀라운 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명화를 '민폐 캐릭터'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는 중요한 가치를 지키려고 하는 인물을 좀 답답하게 보는 것 같다. 관객에 따라서는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그런 사람들이 가장 진보적이고 또 사회를 바꾼다. 엔딩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운 시작을 할 때 가장 그곳에 서 있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명화는 그 어떤 캐릭터보다 리스크를 가장 크게 쥐고 있는 인물이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주변의 차가운 시선도 견디는 인물이라는 지점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명화의 표정에서 많이 나왔다. 그런 지점에서 박보영 배우가 너무 훌륭하게 연기해 줬다. 관객분들이 작품을 다시 보실 때 명화를 극단적으로 왼쪽이나 오른쪽에 한 번씩 놓고 본다면, 작품을 보는 재미가 많이 달라질 거다. 또 명화의 마지막 대사가 어떤 의미일지 연결해 생각해 본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