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저위험 권총'을 직접 들어 하늘을 겨누고 있다. 경찰청 제공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잇따라 발생한 '묻지마 범죄(이상동기 범죄)' 대응 방안으로 '저위험 권총'을 꺼내들었다.
윤 대통령은 29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모든 현장 경찰에게 저위험 권총을 보급하고, 101 기동대에는 흉기 대응 장비를 신규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위험 권총'(STRV9)은 겉보기에는 일반 리볼버형 권총과 같아 보이지만, 플라스틱 탄두 저위험탄을 쓰는 총기를 말한다. 권총에 주로 사용되는, 탄두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일반 9mm 파라벨룸 탄환에 비하면 물리력이 10% 수준에 불과한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다리나 대퇴부, 팔 등의 부위를 기준으로 피부조직에서 5~7cm 가량만 관통하도록 개발됐다.
실탄을 사용하는 기존 38구경 리볼버 권총은 위력이 너무 강해 현장에서 경찰관이 섣불리 사용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총기의 위력이 강한만큼 용의자가 과도하게 크게 다치거나 목숨까지 잃을 가능성이 높다. 자연히 사용 규정이 까다로워 정작 필요할 때에도 경찰이 총기를 꺼내기를 망설이게 했다. 게다가 총알이 용의자의 몸을 관통하거나, 빗맞을 경우 주변 시민 등에게까지 큰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따라서 저위험 권총이 현장에 보급되면 치명상을 가하지 않고도 범인을 제압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다만 비록 플라스틴 탄두를 사용해 살상력이 작다지만, 장기 등 급소가 모여있는 사람의 상체를 맞출 경우에는 치명상을 입힐 가능성은 남아있다. 실제 저위험 권총을 현장에 도입할 경우 관련 안전수칙도 함께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경찰은 지난해 4월 저위험 권총에 대한 위해성 경찰 장비 안전성 검사를 마쳤고, 지난해 연말 시범 장비 100정을 구매해 내부 검증도 진행했다. 현재는 내년 하반기 보급을 목표로 기능 보완 절차를 진행 중이다.
구체적으로 경찰청은 내년 중 지구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현장 경찰관에 저위험 권총을 단계적으로 지급하고, 기존 권총을 포함해 1인 1정 꼴로 권총을 소지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2024년 예산안에 따르면 범죄 대응 강화를 위한 예산이 올해 2735억 원보다 4배 많은 1조 1476억 원으로 책정됐다. 특히 이상동기 범죄 같은 흉악난동 대응을 위해 1천억 원이 새로 투입된다.
이 가운데 경찰관 1명당 저위험 권총 1정을 지급하는 데 86억 원을 쓴다. 경찰은 지구대·파출소 등 현장 경찰 기준 약 5만명에 먼저 보급하고 단계적으로 확대 보급해 나갈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3년 동안 저위험 권총 약 2만 9천 정을 보급해, 기존 38구경 권총을 포함해 지역 경찰에 1인 1총기 수준으로 보급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눈에 띄는 것은 저위험 권총이 누구의 입에서 어떻게 언급됐느냐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치안 관련 분야를 언급하면서 경찰 구조 개편 및 예산 배정을 언급한 데 이어 저위험 권총 도입을 앞머리에 제시했다.
지난 6일 오전 서울 지하철 강남역 인근에서 순찰을 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살인 예고 지역과 다중이용시설 등 전국 45개소에 경찰특공대 128명과 장갑차 11대를 배치했다. 황진환 기자최근 잇따른 흉기난동 사건 이후 경찰은 주요 다중밀집 장소에 장갑차와 특공대를 배치하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섰다. 또 시민들을 상대로 하는 선별적 불심검문을 부활시키기도 했다. 이런 '강력 대응'의 연장선에 있는 저위험 권총을 윤 대통령이 치안 역량 강화에 있어 가장 주목할 '키워드'로 거듭 강조한 셈이다.
하지만 애초 강력범죄를 부른 사회적 원인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예방 대책 대신, 사건이 터질 때마다 문제가 됐던 사안을 모면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땜질 처방'만 내놓는다는 지적은 이번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이상동기 범죄 대응) 근본 진단에 맞는 맞춤형 대안인지 아니면 또 즉흥적으로 나온 건지를 봤을 때 후자 쪽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사실 지난해 윤 대통령이 이미 지시했던, 최근 강력범죄와 특별히 관련은 없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치안에 관한 문제를 진중하고 치밀하게 안보 문제처럼 분석할 필요가 있다"며 "강력범죄가 빈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장기 처방은 무엇인지 국가가 밝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