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 '그리멘토' 시연 장면. 서울시무용단 제공 학교폭력(이하 학폭)을 주제로 한 신작 현대무용 '그리멘토'(GRIMENTO)가 9월 7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지난 7월 호평 속에 미국 뉴욕 링컨센터 공연을 마친 '일무'를 협업한 정구호 연출과 김성훈 안무가가 다시 뭉쳤다. 세종 컨템퍼러리 시즌 '싱크 넥스트 23'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리멘토'는 가해자, 방관자, 피해자라는 구체적인 배역을 설정하고 평범한 교실에서 학폭이 일어나는 과정을 총 6장으로 구성했다. 무용수 16명이 책상과 의자를 활용해 차별, 갈등, 폭행, 치유 등의 의미를 가진 순간을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정구호 연출은 지난 25일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무용단 연습실에서 가진 간담회를 통해 "작품 창작 과정에서 다양한 참고 자료를 살펴봤는데 대부분 피해자와 가해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번 작품은 덜 다뤄지는 방관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 나름대로 해결책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방관자는 가해자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학폭은 방관하기 때문에 피해가 커지는 경우가 많죠.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끼고 싶지 않고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서 방관하는 사람이 용기 내서 (가해 행동을) 막으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피해자가 방관자의 도움으로 구원 받아 치유되는 내용으로 구성했어요."
김성훈(왼쪽) 안무가와 정구호 연출. 서울시무용단 제공 'GRIMENTO'는 '회색의 순간'을 말한다. 불어로 회색을 뜻하는 'Gri'와 라틴어로 기억, 순간을 의미하는 'Memento'의 합성어다. 무대, 소품, 의상 역시 모두 회색이다.
정 연출은 "학폭은 가해자가 처벌 받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에게는 회색의 기억이 각인된다"며 "무대는 6가지 채도의 회색빛으로 표현했다. 검정색에 가까운 회색에서 점점 흰색에 가까운 회색으로 바뀌는데 결국 완전한 검정색도 흰색도 될 수 없다. 피해자는 평생 회색의 기억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무용수들이 다같이 회색 의상을 입는 것에 대해서는 "회색 고리가 돌아가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학폭 가해자가 부모가 되면 자식이 그 행동을 답습하는데 그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했다.
김성훈 안무가는 학생들의 다양한 버릇과 관습을 관찰해 안무로 표현했다. 정교한 군무로 학교의 일상성을 보여주는 한편 학폭 장면을 직접적으로 재현한다.
김 안무가는 "무용수의 움직임이 굉장히 극적이고 사실적"이라며 "저마다 표정과 걸음걸이, 버릇 등을 달리해 16명의 캐릭터가 구분된다"고 말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이 되면 무대에 설치한 책상 위치를 바꿔요. 그 과정에서 생각지 않았던 공간이 생겼고 새로운 움직임을 발견했어요."
무용계에서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이 드문 만큼 두 창작자에게 이번 작품은 또 다른 도전이다. 정 연출은 "학폭 문제는 끊임없이 알리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 학생, 부모, 선생님 모두 와서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무용 그리멘토 시연 장면. 서울시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