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육사 내 독립군 흉상을 이전하는 문제가 역사왜곡 문제로 번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국방부는 국방부는 앞뒤가 맞지 않은 논리를 들거나, 거짓 해명까지 하면서 파장을 오히려 키우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국방부 출입하는 홍제표 기자에게 들어보겠습니다.
홍 기자, 국방부 설명이 굉장히 오락가락 대응하는 느낌입니다. 육사의 흉상은 없앤다고 하면서 국방부 앞 흉상은 결정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유도 설명했나요?
[기자]
그렇지 않습니다. 모순적인 상황인데요, 국방부도 마땅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주목할 부분은 있습니다. 5년 전인 2018년 육사에 홍범도 장군 등의 흉상을 설치할 때 '충분한 공감대 없이 강행됐다'는 설명입니다. 철거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논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주장이 맞다면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98년에 설치된 국방부 앞 흉상은 사전 공감대가 충분했다는 역설적 귀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앵커]
그렇겠네요.
[기자]
그렇지 않고서야 지난 25년 동안이나 별 탈 없이 존치되고, 지금도 섣불리 철거 결정을 못 내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앵커]
육사 독립군 흉상만 해도 처음에는 5기를 모두 철거하겠다고 했다가, 지금은 일부만 없앤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비판 여론에 부담을 느껴서 그런 건지, 이것도 그렇게 결정이 됐습니까?
[기자]
이것도 아직 결정된 것이 없습니다. 이것 역시 국방부가 스스로 말을 바꾼 것입니다.
당초 국방부가 독립군 흉상 철거의 첫번째 이유로 든 것은 '특정 시기에 국한된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독립군이나 광복군 특정 시기 인물들만 세우는 것은 맞지 않다는 논리였습니다.
오히려 일부 인사의 공산주의 경력은 두 번째 이유로 내걸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주말을 거치면서 선별 철거가 대안처럼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홍범도 장군 흉상만 없애고 나머지 4인 흉상은 남기거나, 아니면 신흥무관학교 설립자인 이회영 선생 흉상 1기만 남기는 식의 방안입니다.
이것은 전체 흉상을 모두 철거하는 것이 부담이 되자 여론 떠보기 차원에서 흘러나온 얘기로 보이고,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관련단체에선 '독립운동 후손들마저 갈라치기한다'는 심한 불쾌감을 벌써 나타내고 있습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앵커]
국방부 앞 흉상도 있고, 심지어 '홍범도함' 잠수함도 있잖습니까. 흉상만 철거하고 잠수함명은 놔둘거냐는 질문에 국방부와 해군이 이견을 보인 것도 황당했는데요, 이것도 흔한 일은 아니죠?
[기자]
그렇습니다. 국방부의 자가당착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제 언론브리핑에서 국방부와 해군이 홍범도함 이름 변경 여부를 놓고 공개적으로 이견을 표출하는 매우 이례적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국방부로선 흉상마저 뽑아내는 판에 수천억짜리 잠수함의 이름을 그대로 두는 것은 너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해군으로선, 군함의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입니다. 결국 육군, 또는 육사가 터부시하는 이름을 단 채 바다 속을 누벼야 하는 해군 입장에선 괜히 찜찜할 수밖에 없겠죠. 이래저래 진퇴양난인 셈입니다.
[앵커]
이번 일이 역사왜곡 논쟁으로도 번지고 있거든요. 홍범도 장군의 공적과 관련해서도 역사학계가 반박을 했다면서요.
[기자]
국방부가 그제 추가 입장을 내면서 불거진 문제입니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의 항일무장투쟁을 부정하거나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다면서도, 이른바 '자유시 사건' 연루 의혹을 제기하며 사실상 부정적 면모를 부각시켰습니다.
이 자유시 사건은 1921년 당시 소련 극동의 '자유'라는 이름의 작은 도읍 근처에서 우리 독립군 분파 가운데 일부가 소련군에 무장해제 당하는 과정에서 다수가 희생된 사건입니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이 이 사건의 재판위원으로 참가한 사실 등을 근거로 연루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역사학계는, 홍 장군이 오히려 소련 당국에 진상규명 탄원서를 제출한 사실 등을 들며 국방부가 침소봉대하거나 사실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방부에서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