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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헌신, 한 순간 무너져"…학교 앞엔 '추모'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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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년 헌신, 한 순간 무너져"…학교 앞엔 '추모' 물결

    용인 체육교사 60대 A씨의 유족
    "민원으로 '살고 싶지 않다' 말해"
    '경찰 고소로 심적 부담↑' 주장
    "경고와 감사, 수사…자책+자괴감"
    학교 앞 조화 놓이고 '추모행렬'
    "덕분에 체육시간 기다려졌는데…"
    죽음 배경에 대해 '수사 본격화'

    4일 경기 용인시 내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등학교 교사 A씨의 빈소 앞 모습. 박창주 기자 4일 경기 용인시 내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고등학교 교사 A씨의 빈소 앞 모습. 박창주 기자 
    "마지막으로 만난 게 사촌 결혼식 때였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 보였는데, 결국…"
     
    4일 오전 경기 용인시의 한 장례식장. 전날 숨진 채 발견된 용인의 한 고등학교 교사 A(60대)씨의 빈소는 일부 유족들이 눈물을 닦으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등 침통한 분위기였다.
     
    유족 B씨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던 결말에 대해 힘겹게 말문을 열며 A씨의 근황을 돌이켰다.
     
    "한참 전부터 학부모 민원 때문에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해 왔어요. 그래서 '괜찮다. 정년도 1년밖에 안 남았다'고 위로를 했지만 이런 결정을 한 거죠."
     
    가족들은 '그동안 잘했고, 안 좋은 경험했다고 치고 이겨내 보자'고 A씨를 달래려 애를 써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34년간 교직을 지켜온 A씨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다.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게 교사로서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된 것 같습니다. 나이가 많았지만 트렌드에 맞게 학생들에게 맞추려고 노력했던 분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벌어져 더 힘드셨을 겁니다."
     
    A씨는 지난 6월경 자신의 체육수업 중 평소 앓던 장염 등으로 화장실을 여러 번 이용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학생 한 명이 다른 학생이 찬 풋볼 공에 맞아 왼쪽 눈을 크게 다친 사고와 관련해 피해 학생 측으로부터 고소 등을 당했다.
     
    7월 초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최근까지 A씨와 출석 일정을 조율해왔는데, 정식 조사가 이뤄지기 전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B씨는 "학부모 항의로 학교에서 경고조치를 받았고, 국민신문고와 교육청에도 항의가 올라갔던 것으로 안다"며 "수업 중 (질환으로) 화장실을 다닌 부분에 대해 자책감과 자괴감 같은 것도 너무 컸던 것 같다"고 했다.

     

    학교 앞 추모행렬 "덕분에 체육시간 기다려졌는데…"

     
    A씨가 근무했던 용인시의 한 고등학교 앞에 그를 추모하는 조화들이 세워져 있다. 박창주 기자A씨가 근무했던 용인시의 한 고등학교 앞에 그를 추모하는 조화들이 세워져 있다. 박창주 기자
    재직 교사의 안타까운 소식에 이날 해당 고교 앞에는 교사단체 등이 보낸 조화 10여 개가 놓이고 조문객들이 방문하는 등 A씨를 추모하려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학교 담장에는 "덕분에 체육시간이 늘 기다려졌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그곳에서는 책임감, 의무감 다 내려놓으시길 바란다" 등 제자들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쓴 손편지 메모들이 붙어 있었다.
     
    특히 이날은 서울 서초구 서이초교에서 숨진 교사의 49재와 겹쳐 전국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진행되면서, A씨에 관한 추모 물결도 함께 주목받는 분위기다.
     
    서이초 교사 외에 지난 주말을 포함한 나흘 사이에만 경기 용인(A씨)과 고양, 전북 군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교사가 3명으로 늘면서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용인 학교 앞을 찾은 시민 C(60대·여)씨는 "교육자로서 얼마나 치욕적이었으면 이런 선택을 했겠느냐"며 "너무 속상하고 가슴 아프다"라고 안타까워했다.
     
    현장에 조문 공간을 조성한 경기교사노조 홍정윤 사무처장은 "너무 충격적이고 큰 슬픔을 나눌 공간이라도 마련하려는 취지"라며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해당 고등학교 담벼락에 A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귀가 적힌 메모지들이 붙어 있다. 박창주 기자해당 고등학교 담벼락에 A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귀가 적힌 메모지들이 붙어 있다. 박창주 기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측도 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잇단 교사들의 극단 선택과 관련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조 경기지부 관계자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 선생님들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선생님들께서 돌아가셨다"며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은 그간 무엇을 한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경고조치+고소까지…사망 경위 '수사 본격화'

     
    A씨는 자신의 체육 수업시간에 발생한 사고로 인해 다친 학생의 학부모 요청으로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감사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해당 학부모가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A씨를 경찰에 고소해 심리적 압박을 받아 왔다는 게 A씨 유족 측의 주장이다.
     
    유족에 따르면 A씨는 이미 학교로부터 경고조치를 받은 상태였다.
     
    단, 이 학부모가 A씨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직접적으로 압박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분당경찰서 전경. 경기남부경찰청 제공경기 분당경찰서 전경.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경찰은 A씨가 사망 당시 소지하고 있던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 작업을 시작하는 등 사건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통화기록과 사진, 문서자료 등을 토대로 A씨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된 경위를 밝히는 게 핵심이 될 전망이다. 동료 교사 등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도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A씨는 일요일인 지난 3일 오전 10시 반쯤 성남시 분당구 청계산 등산로 입구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 외출 뒤 연락이 끊겼다는 가족들 신고를 받은 경찰은 A씨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을 거쳐 그의 소재를 파악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품 중에는 유서도 있다. 유서에는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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