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스토어에 긴줄이 늘어섰다. 화웨이 제공
"항일전쟁 승전 78주년이 되는 해, 그 해의 고난과 승리를 돌이켜보며 오늘날 중국의 새로운 분위기를 보면 우리는 중국의 잠재력이 크며 미래가 유망하다고 굳게 믿는다"
중국 국영방송 중국중앙(CC)TV는 지난 3일 앵커 논평을 통해 화웨이의 최신형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Mate 60 Pro)의 출시 소식을 전하며 이런 평가를 내놨다.
이날은 항일전쟁 승전 78주년 기념일이자 화웨이가 해당 제품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식 판매하기 시작한 날로, 화웨이의 신제품 출시를 항일전쟁 승전에 견줄 만큼 극찬한 것.
그러면서 "휴대폰에 내장된 반도체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선사한다"며 "4년여에 걸친 미국의 탄압 끝에 화웨이는 1만개 이상의 부품 국산화를 달성했으며, 자주 혁신의 잠재력은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즈도 3일 "미국의 극단적인 억압이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면서 "이는 미중 기술 전쟁에서 중국이 결국 승리할 것임을 예고하는 쾌거"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애국소비' 촉발시킨 화웨이폰….1분만에 완판
화웨이 '메이트 60'. 연합뉴스관영매체들의 대대적인 분위기 조성에 화웨이의 신형 스마트폰은 불티나게 팔리며 중국에서 오랜만에 소위 '애국 소비'가 불붙고 있다.
대대적인 신제품 출시행사도 없었지만 온라인을 통해 작동 영상이 공개되자 조회수가 순식간에 2억건을 돌파하는 등 중국인들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그 여세를 몰아 지난 3일 타오바오, 징둥 등 대형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 제품이 판매되자 일부 사양은 수초 안에, 그리고 대부분 사양은 1분 만에 매진됐다.
또, 오프라인 매장인 화웨이 스토어에는 신제품의 실물을 체험하거나 사전예약분을 받기 위한 고객들의 긴 대기줄이 이어지기도 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사무직 근로자 롱 씨는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적 자부심을 느끼다"면서 "아이폰보다 더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美 제재 뚫고 불가능을 가능으로…흥분한 中
연합뉴스화웨이 측이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 제품은 5G 통신을 지원하며 이를 위해 7nm(10억분의 1m)급 반도체가 장착됐다. 이는 많은 전문가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 미국 당국을 긴장시켰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9년 국가 안보를 이유로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시작했다. 당시 자국 기업이 화웨이에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자국의 기술을 이용하는 다른 나라 반도체 기업들까지 화웨이와 거래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화웨이가 7nm급 반도체를 신제품에 장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는 것이 중국 측의 주장이고, 전 중국이 들썩이는 이유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해당 제품을 입수해 실험한 결과 통신 속도가 애플의 최신 아이폰과 같은 수준이며 5G 휴대폰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반도체를 자체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CCTV 계열 영어방송 CGTN은 이 제품이 미국의 화웨이 제재 이후 처음으로 '최상위급 프로세서'를 탑재했다면서 중국 반도체 기업 SMIC가 이 제품에 쓰인 7nm급 반도체를 생산했다고 전했다.
기술자립 대대적 홍보…성공 여부는 아직
연합뉴스화웨이의 신형 스마트폰 출시는 지난달 말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는 기간에 발표됐다. 이는 화웨이, 그리고 화웨이를 지원하는 중국 정부의 치밀한 계산하에 나온 이벤트로 보인다.
러몬도 장관은 미국의 대중 무역 제재를 총괄하고 있고, 그의 방중에 맞춰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기술자립에 성공했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화웨이의 신제품이 실제로 중국이 자체 개발해 생산한 고사양 반도체를 탑재했는지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화웨이는 이 제품을 '역대 가장 강력한 메이트 모델'이라고 소개하면서도 통상적으로 제품 출시때 공개하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와 모뎀 종류, 지원 통신 규격 등의 구체적인 정보를 전혀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언론이 대대적으로 이 소식을 보도하고 있지만 정작 화웨이는 신제품에 들어간 반도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향후 전개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귀뜸했다.
앞서 지난 5월 중국의 반도체 설계 기업 '파워리더'는 고성능 CPU를 자체 개발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인텔의 제품을 포장만 바꾼 것이라는 사실이 들통나기도 했다.
더 커지는 제재 실효성 논란에 웃음짓는 中
스마트이미지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중 제재의 상징기업이라 할 수 있는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에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첨단 반도체가 탑재되며 대중 제재의 실효성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은 중국이 의도한 그림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일(현지시간) "미 정가에서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핵심기술 발전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우려를 촉발했다"며 "첨단 반도체 수입 및 생산을 막아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신분야에서의 중국이 진보를 늦추려는 미국의 의도가 먹히지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앞서,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황은 지난 5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칩을 사들일 수 없다면 자체 개발에 나설 것이고 이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만 도와줄 뿐"이라며 제재 무용론을 촉발시켰다.
이어 미국 반도체산업협회 등도 제재 무용론을 들고 나오면서 정부 주도의 대중 반도체 제재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화웨이의 신제품 출시는 논란에 기름을 붓는 꼴이됐다.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 대학 교수는 WP와의 인터뷰에서 "화웨이 같은 중국 기업은 여전히 큰 역량을 지녔다"라며 "규제를 강화할지를 둘러싼 미 정가의 논쟁이 더 심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