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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약속에도…인권위는 왜 '간호사 인력기준 개선' 권고했나

보건/의료

    정부 약속에도…인권위는 왜 '간호사 인력기준 개선' 권고했나

    "의료기관 특성 등 고려한 적정수준 간호사 : 환자 수 法규정해야"
    '간호법 대란' 당시 이미 "1人당 환자 5명" 목표로 제시했지만…
    "재작년 9·2노정합의서 도출된 원론적 수준…구체적 로드맵 부재"
    "간호사 정원기준 준수, 국민 건강과 직결…이행 담보체계 만들라"

    지난 7월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산별총파업대회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환자 안전을 위한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제도화' 등을 촉구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 노조 제공지난 7월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산별총파업대회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환자 안전을 위한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제도화' 등을 촉구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 노조 제공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달 18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간호사 노동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의료기관 종별 특성 등을 고려한 적정수준의 간호사 1명당 최대 담당환자 수를 관계법령에 규정하라는 것이다.
     
    사실 간호사 인력배치기준의 상향과 교대제 개선 등은 앞서 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제2차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안)과 대체로 겹치는 내용이다. 정부는 법정기준(간호등급제 하한선)을 높이고 미이행 시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당시 정책 방향성에 대해서는 대한간호협회도 공감의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인권위가 상임위원회를 거쳐 이번 권고안을 의결한 이유는 무엇인지 짚어봤다.
     

    OECD '최다' 병상에 인력은 반토막…환자생명 위협하는 '격무'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코로나19 사태에서도 회자된 간호사의 '격무'는 신규 시절 지녔던 열정을 갉아먹을 뿐 아니라 환자에 대한 공감을 어렵게 만든다. 지난 2018년 고(故) 박선욱 간호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태움'('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로 간호사 간 괴롭힘을 가리키는 은어)도, 타 직업군 대비 3배가 넘는 이직률(15.3%)도 이러한 환경에 기인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나는 병동에서 일하는 10년차 간호사다. '오늘 점심 메뉴는 무엇일까?' 하며 기대하는 일반 직장인들과는 달리 '오늘은 과연 점심을 먹을 수 있을까?'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 달 20일 근무 중 5번 점심을 먹으면 성공한 달이다. 그나마 나의 점심시간을 줄여야 간호를 제공할 수 있다.
     
    (..) 환자들이 스테이션에 와서 무엇을 요구할 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잠시만요. 들어가서 기다리세요"라는 대답이다. '간호사들은 뭐가 그리 바쁘길래 바로 해결을 못해 주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나 혼자 12명의 환자를 책임지고 봐야 하니 환자의 요구를 바로 들어줄 수가 없다. 12명의 환자가 한 가지씩만 요구해도 나에겐 기본적인 업무 외에 해결해야 할 12가지 숙제가 생기는 셈이다."(이정현 간호사)

     
    민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두 달 전 펴낸 <'덕분에'라더니 '영웅'이라더니>에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공모한 병원 현장 수기 당선작 26편이 실렸다. 최우수작('선생님, 제가 오더 내는 의사에요?', 김한나 간호사) 등엔 인력부족으로 인한 간호사들의 고충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수기집 출간과 맞물려 7월 13일 총파업에 나섰던 보건의료노조의 주된 요구사항은 '인력 확충'이었다. 특히 '간호사 1명당 환자 수 5명' 배치기준이 적용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해달라고 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여건이) 가장 좋은 병원이 간호사 1명당 환자가 10~12명"이라며 "중소병원이나 종합병원 같은 경우는 (한 명이) 20~30명, 40명까지 보는 곳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비교한 인구 1천 명당 활동간호사 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4.4명으로 평균치(8.0명)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병상 수는 2021년 기준 1천 명당 12.8개로 최상위권이고,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연간 15.7회)와 입원환자 평균 재원일수(18.5일)도 평균치의 2배 이상이다. 환자를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간호사의 업무량이 과다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료기관 종별 임상 간호사 및 병상 수 추이(2008~2022). 복지부 제공의료기관 종별 임상 간호사 및 병상 수 추이(2008~2022). 복지부 제공
    이에 더해 '기피 과(科)'가 되어버린 필수의료 의사 부족으로, 전공의 업무 상당 부분이 간호인력에 전가된 PA(진료보조인력)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김한나 간호사는 본래 의사의 영역에 속하는 '환자 오더(order)'와 처치 등을 떠맡게 된 상황을 두고 "간호부는 의사 아이디(ID)를 쓰지 말라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처방이 없으면 업무가 돌아갈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응급 콜(call) 회신을 기다리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컴퓨터 앞에 앉아 당직의 ID로 접속해 ABGA(동맥혈가스분석) 검사를 처방"하는 것은 그저 일상이다. 그가 10년 가까이 익힌 간호업무엔 의사업무가 꼭 포함돼 있었다.
     
    숨 돌릴 틈 없었던 초과근무에도 퇴근 후 김 간호사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중환자실로 옮긴 환자는 괜찮을까?', '내가 빠뜨리고 안 한 일은 없나?', '데이(Day·주간) 선생님에게 인계 못한 일이 있나' 등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서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암병원 중환자실(CAICU)에서 간호사로 7년간 일한 김수련씨는 저서 <밑바닥에서>(2023)에서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환자 수에 비해 간호사가 적으면 그 중환자실에 있는 모두가 궁지에 몰린다"고 지적했다. 맡는 환자가 한 명 증가할 때마다 사망률은 7% 가량 증가한다.
     
    "주도면밀한 모니터링과 빠른 대응이 우리 일인데, 한 명 한 명이 더 많은 환자를 봐야 한다면 주의력은 떨어지고 피로도는 급격히 상승한다. 대부분 정해진 휴식시간 없이 장시간 일하는 간호사들은 피로가 누적될수록 실수가 늘어나고 종종 중대한 징후를 놓친다. 그것은 때로 치명적이다."
     

    "장기근속 가능케 하겠다"지만…현장 이행 담보할 강제성 '全無'

     
    정부도 현실을 모를 리 없다. '간호법' 대란 속에 내놨던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에서 "근무환경 개선과 장기 근속으로 간호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겠다"고 공언했던 복지부다.
     
    병원 근무 겸직교수로 실습교과를 가르치는 '임상간호교수' 제도화 정도를 제외하면 상급종합병원 기준 '간호사 1명당 환자 5명'을 정책적 지향점으로 삼겠다는 게 대책의 핵심이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병동에서 중증환자 등이 입원한 병실은 간호사 한 사람이 환자 넷을 볼 수 있도록 연내 간호등급제 개편방안도 마련키로 했다.
     
    '3교대' 근무제 개선 시범사업과 함께 '유령 간호사'라 불리는 PA 관리·운영체계를 세우기 위한 협의체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간호사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엔 정부의 종합대책 자체가 다소 빈약하다는 게 인권위의 평가다.
     
    인권위는 결정문을 통해 "해당 계획은 2021년 9월 2일 정부와 보건의료노조가 13차례에 걸친 논의 끝에 마련한 '노정합의문'에서 도출한 내용과 동일한 수준"이라고 짚었다.
     
    또 "해당 합의문의 상당 부분이 이행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구체적 추진 일정과 재정확보 계획 등 추진 로드맵이 부재한 정부의 종합대책은 그 이행을 담보할 수 없는 문제점을 내포한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의 이행률을 제고할 수 있는 장치도 사실상 없다.
     
    인권위는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인의 정원기준은 병원 개설자가 지켜야 하는 '법적 최소기준'임을 강조했다. 각 병원은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업무정지 15일에 처해지지만, 2015~2019년 8월까지 간호사 정원기준 미충족에 대한 행정처분은 119건에 불과했다.
     
    인권위는 "2회 이상 정원기준을 중복 위반한 의료기관에 대해 시정명령만 반복할 뿐 영업정지를 처분한 사례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공식 통계 외 실제로는 상당수 의료기관이 간호사 정원을 준수하지 못한다고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호인력 야간근무 가이드라인'에 대해서도 강제성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야간간호료를 직접 인건비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미준수에 따른 불이익이 없고 준수현황 모니터링을 위한 의료기관 자료 제출도 의무가 아니란 것이다.
     
    인권위는 "가이드라인 준수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나아가 지침 수준의 가이드라인이 아닌 강제력을 수반하는 법령의 제·개정 등을 통한 시행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간호사 정원기준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안전한 간호서비스'의 필수적 요건이란 점도 강조했다.
     
    인권위는 "모든 의료기관의 간호사 정원 신고를 의무화하고, 정부는 상시적으로 의료기관의 간호사 정원기준 준수를 확인하는 체계를 마련해 위반 시 시정명령과 행정처분, 강한 페널티 적용 등의 적극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임상간호사의 교대제 개선을 위한 예측 가능한 패턴형 근무제' 연구(2022)에서 "병동(간호단위)에 적정 인력배치를 위해서 의료법상 간호사 인력 배치기준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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