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류영주 기자'성범죄 줄감형'으로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됐다는 논란에 휩싸인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야권에서는 대법원장 자질이 부족하다고 공세를 펼치는 반면, 여권에서는 특정 판결 몇 건으로 자질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엄호하고 있다.
여성계는 물론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후보자에 대해 "인식 부족을 개선할 의지나 가능성도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감형 여부는 법관 개인의 재량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이 후보자가 사회적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판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의 가늠자인 대법원장 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국민적 공분 속 '불법촬영' 피고인은 실형 위기 벗어나
=2019년부터 2020년 한국 사회는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불린 신종 디지털 성범죄로 충격에 휩싸였다. 피해자 중에는 미성년자가 많았고 더욱 교묘해지고 악랄한 범죄 방식에 전국민이 경악했다.
수사당국과 국회, 청와대까지 나서 대응책에 골몰했다. 검찰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 처리기준'을 마련했고 양형 기준도 재조정됐다. 국회에서는 정쟁을 접고 'N번방 방지법(성폭력처벌법 및 형법,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을 발의해 신속하게 통과시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불법 촬영과 유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졌다. 하지만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9일 CBS노컷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 후보자는 지난 2020년 11월 성범죄 현장을 담은 영상물을 찍은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에 대해 집행유예로 형량을 감경했다. 'N번방 특별법'이 통과되는 등 전국민적 공분이 고조된 때였다.
피고인 A, B, C는 술에 취해 항거불능인 피해자들을 간음하면서 이 과정을 휴대전화로 무단 촬영했다. 그 뒤 카카오톡 단체방에 촬영물을 전송했다.
1심에서 A씨는 징역 7년을, B씨는 징역 10개월, C씨는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2심에서 A씨의 형량을 징역 4년으로 줄였고, B·C씨에 대해서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감형 사유는 역시나 "피해자와 합의했고 깊이 반성하고 있어서"였다. 무엇보다 불법 촬영물 유포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엄중해졌음에도 "친구들에게 자신을 과시하려는 충동적, 직관적인 행동"으로 치부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비판에 이 후보자는 "하급심의 양형 편차를 최소화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양형기준을 참고해 적절한 형을 선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범죄와 형벌 사이의 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권고형의 범위 내에서 신중하게 형량을 정했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는 이에 대해 8일 "인식 부족을 개선할 의지나 가능성도 없음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단편적 판단 지양해야 한다지만…양형기준 이탈해 또 감형
야권과 여성계를 중심으로 이 후보자의 '자질론'이 불거지는 한편, 법원 내에서는 법관의 몇몇 판결만 놓고 자격이나 자질을 평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깊이 반성하고 있고 초범"이라는 이유로 성범죄 피고인들에 대해 대체로 감형을 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 후보자는 과거 가정폭력 및 성폭력 항소심 사건에서 감형한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 논란이 됐다. 더구나 '반성'을 이유로 법원의 양형기준에서 벗어나면서까지 형을 줄여 주기도 했다.
지적장애가 있는 사촌동생의 아내를 강간한 피고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사례가 또 있었다. 장애인 강간에 대한 권고형은 징역 4년에서 8년6개월로, 이 판결은 양형기준의 하한에서 이탈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 출신이기도 한 더불어민주당 최기상 의원은 "피해자가 장애가 있거나 여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에까지 감형한 사례를 보면 후보자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며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보장의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을 이끌 자격이 있는지 엄격하게 검증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