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대출 횡령 사고 발생한 BNK경남은행. 연합뉴스금융회사 내부의 횡령·배임, 불완전 판매 등 각종 금융 사고 발생시 최고경영진과 임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금융권 전반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금융회사 내부통제 기능을 강화해 고객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각종 금융사고를 미연에 방지해 궁극적으로 국내 금융회사의 대내외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절박한 취지다.
내부통제 장치 강화와 실효적 운영에 방점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11일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관리의무와 사전감시 역할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앞서 금융당국도 정부 입법보다 의원 입법이 법안 처리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감안해 해당 개정안을 의원 입법으로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은 바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실행되면 금융사고 발생시 최고경영자와 임원들도 법적 처벌대상에 오를 수 있는 만큼,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은행 직원의 700억원대 횡령 사건 이후 금융권 내부통제 강화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지만, 올해에도 BNK경남은행 1000억원대 횡령, KB국민은행 미공개정보 이용 127억원대 주식 매매차익, 대구은행 불법 증권 계좌 개설, 롯데카드 100억원대 배임 등 금융권의 내부통제 미흡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지난해부터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 TF'를 꾸려 형식이 아닌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를 주문하고 있지만, 비슷한 사고가 이어지면서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넘어 시스템 문제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게 일었다.
윤 의원이 이날 대표발의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은 이르면 내년 중에 본격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데, 내부통제 장치 강화와 실효적인 운영에 방점을 찍고 있다.
현행법도 금융회사에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금융사고 발생시 최고경영진과 임원, 이사회에 책임을 묻는 게 쉽지 않았다.
또 전문적인 금융지식과 영업능력 등을 담보로하는 특정 내부 업무에 대한 임원들의 접근력과 이해도가 떨어져 관리 감독 책임을 묻는 것도 어려웠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감원장. 연합뉴스전문 지식을 가진 직원이 내부 통제를 제대로 받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하나의 업무에만 종사하면서 벌어진 우리은행 700억원대 횡령, 경남은행 10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실례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부실, 라임·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등 금융회사의 불완전 판매로 소비자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져도 현재의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은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만 부여하고 있어 최고경영진과 관련 임원을 처벌할 수 없었다.
지난 2020년 금감원은 손태승 당시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DLF 관련 내부통제 책임을 물어 중징계(문책경고)를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현행법은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만 규정하고 있을 뿐, 내부통제 기준 준수 의무까지 부여하지는 않았다며 손 전 회장에게 징계 무효를 확정했다.
책무구조도 도입, 이사회에 내부통제 권한 부여
이번 개정안에는 이같은 내부 통제 미흡 공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회사 최고경영진과 임직원의 감시 역할을 강화하고, 이사회에 내부통제 장치 심의·의결·관리감독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금융회사 대표가 각 임원들에게 내부통제 책임을 배분하는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 작성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게 핵심이다.
올해 6월 금융위와 금감원도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책무구조도에서 금융회사의 주요 업무에 대한 최종책임자를 특정하고, 내부통제 책임을 하부로 위임할 수 없도록 하는 원칙을 구현하고자 하는 취지"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내부통제 제도개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제도 변화가 아닌 조직 전체 구성원의 인식과 가치관을 바꿈으로써 실질적인 행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면 내부 임원 개개인별로 권한과 책임이 명확해져 내부통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고 금융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대표이사는 회사 내 조직적·반복적인 내부통제 시스템 실패에 대해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위반한 임원에 대해서는 해임요구와 직무정지 등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할 법적 기준도 마련됐다.
다만 최고경영자와 임원들이 '상당한 주의를 다 했을 경우'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금융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 감경과 제재 면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터놨다.
'대표이사 거수기'로 불렸던 이사회에도 내부통제 장치 심의·의결 의무 등을 부과하고, 이사회 내 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감시역할도 강화된다.
다만 금융권 내부에서는 금융당국의 지나친 책임 추궁으로 펀드 상품 개발을 포함한 글로벌 경쟁력이 훼손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특정 펀드 판매와 각종 파생상품 설계, 고객 관리 등은 해당 분야에서 수년 동안 집중해서 근무하지 않으면 수행할 수 없는 업무"라며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순환근무 의무 부과, 지나친 책임 소재 구분 등은 글로벌 경쟁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금융당국 관계자는 "명확한 책무에 따른 권한과 책임 분산, 충분한 면책 조항이 담긴 만큼, 이번 기회에 금융권 스스로가 내부통제를 강화해 대내외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