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제공 서울대 행정대학원 최태현 교수는 제목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처럼 책의 시작을 절망으로 시작한다.
"우리 사회에 재해, 범죄, 사고, 질병, 가난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고통받는 약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고 힘이 없다. 더군다나 이런 문제를 우리의 제도로는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제도가 그런 비극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 절망스럽기도 하다.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런 현상 속에서 우리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해 왔던 민주주의를 완벽한 제도라고 볼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오늘날 복잡성이 증대한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민주주의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짚으면서 선거, 관료, 시민참여, 당사자 등 민주주의 작동 원리인 대의제의 대표 개념을 둘러싼 역설을 짚어본다.
이어 다양한 사회 문제 가운데 풀고 싶은 것을 취사선택하며, 그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민주적 원칙을 지키는데 자신을 예외시키는 정부의 역설적 태도를 꼬집는다.
이른바 공무원의 소극적 행위와 태도를 비판하는 수식어인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 불리는 국가 조직과 민주주의의 관계에서 비롯한 역설, 권력을 좇고 쉽게 부패해지는 리더의 역설을 다룬다.
책 후반부는 이러한 역설적 조건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말하며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향에 대한 처방적 관점을 넘어 우리 삶에 깊숙이 연결돼 있는 공존의 문제로 끌어들인다.
최태현 지음 | 창비 | 416쪽
문학수첩 제공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 직후 전세계 언론은 시시각각 벌어지는 전황을 실시간 구체적이고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장기화된 이후 그 전황은 단신으로 바뀌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국가 대 국가로서 친서방 유럽과 러시아·친러진형의 세계 대전으로 확산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정치·사회·문화적 관계와 소비에트연합(구 소련)으로 대표되는 연방제 사회주의국가를 경험한 정치적 역사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여전히 민족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서로에게 깊게 연결돼 있는 이러한 이야기를 한 가족사로 풀어낸 책이 출간됐다.
'루스터 하우스'의 저자 빅토리아 빌렘은 러시아 국적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소련의 제도권 교육체제에서 학교를 다녔다가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뒤에는 10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대학까지 학업을 마치고, 벨기에 브뤼셀에 정착해 프리랜서 작가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2년 러-우크라 전쟁의 전초전이 된 2014년 크름반도 침공을 보며 자신의 아련한 유년 시절이 떠올랐고, 외할머니가 여전히 터를 잡고 체리 과수원을 일구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시골마을로 무작정 찾아간다. 외증조할아버지의 일기를 펼쳐보다 뜻밖의 격동의 가족사를 발견하게 된다.
책은 우크라이나의 100년 근현대사를 소설처럼 훑어간다. 1930년대 실종된 수수께끼 같은 증조부의 형 '니코딤'의 존재를 찾아가다 자신의 외고조부모 대에서부터 얽히고설킨 가족사의 미스터리에 직면한다.
20세기 우크라이나를 절망으로 몰아넣은 홀로도모르(대기근 1932~33년), 제2차 세계대전, 소비에트 연방에서 가한 정치적 탄압, 전체주의 정권의 부패,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불안정한 상황 등 100년의 굽이치는 역사의 소용돌이로 독자를 안내한다. 아버지 죽음 이후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 러시아인 큰아버지와의 관계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여곡절로 이어진다.
저자는 니코딤의 삶을 쫓아가면서 혈연만 남기고 일찌감치 떠났던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밝혀낸 진실 앞에 크나큰 위안과 깊이 베인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얻는다. 마치 영화 같은, 소설 같은 이야기는 저자의 회고록이다. 화제를 모으며 전 세계 16개 언어로 출간됐다.
빅토리아 벨림 지음 |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3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