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을 목에 거는 오상욱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구본길. 사진=황진환 기자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들끼리 결승전을 벌이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때마다 타국 선수와 대결을 능가하는 진검승부가 펼쳐진다. 따뜻한 동료애에서 비롯되는 훈훈한 장면도 빠지지 않는다.
지난 2018년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사격장에서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양궁 리커브 개인전 결승전에서 김우진과 대표팀 후배 이우석이 만났다.
당시 이우석은 상무 소속이었다. 입대 6개월 만에 아시안게임 무대에 나섰다.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병역 혜택이 주어진다. 이우석이 금메달을 딸 경우 조기 전역이 가능했다. 두 선수의 승부에 관심이 쏠렸다.
한국 양궁의 품격은 질이 달랐다. 두 선수의 승부는 마지막 한 발 싸움에서 결정됐다. 이우석이 먼저 9점을 쐈다. 김우진의 마지막 화살에 많은 것이 걸려 있었다. 김우진은 최선을 다했다. 10점 과녁에 화살을 꽂아 치열했던 명승부를 마무리했다.
김우진은 냉정하게 승부를 펼쳤다. "병역과 관련된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외적인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우석이 많이 아쉽겠지만 더 좋은 선수가 되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우석도 동의했다. "양궁은 선발전부터 투명했고 개인 실력으로 올라온 것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그만큼 부족했기 때문에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이라고 결과를 받아들였다.
5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들끼리 연출한 명장면이자 한국 양궁의 위상을 널리 알렸던 스토리다.
펜싱 남자 사브르의 간판 구본길과 오상욱도 그랬다.
두 선수는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개인전 결승에서 만났다. 구본길이 15-14로 승리해 아시안게임 3연패를 달성했다. 구본길은 오상욱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오상욱은 괜찮다고 답했다.
당시 구본길은 "단체전에서는 개인전보다 더 모든 것을 쏟아부어 꼭 금메달을 따겠다"고 오상욱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 두 선수는 남자 사브르 단체전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함께 올랐다. 오상욱은 환호했고 구본길은 마음의 짐을 덜었다.
그리고 두 선수는 5년 만에 다시 아시안게임 결승 무대에서 만났다. 예상대로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고 이번에는 오상욱이 이겼다. 구본길의 아시안게임 4연패 도전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구본길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진심으로 오상욱의 우승을 축하했다. "오상욱이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자카르타에서 딴 금메달보다 오늘의 은메달이 더 값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