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 문화평론가"'무빙'은 '오징어게임'에 대한 디즈니의 대답이다."(할리우드 리포트)
"'무빙'은 당신이 들어본 적 없는 올해의 '오징어게임'이다."(장르 전문 미디어 IGN)
외신들은 디즈니+(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을 '오징어게임'에 비유해 이런 의견들을 내놨다. 아마도 K콘텐츠의 글로벌 입지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작품이 '오징어게임'이기 때문에 굳이 그 작품에 비유했을 게다.
'무빙'은 그만큼 '오징어게임' 이후 해외에서 주목하는 K콘텐츠가 됐다. 미국에서 디즈니+가 아닌 48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갖고 있는 OTT 훌루(Hulu)를 통해 공개된 '무빙'은 이렇다할 홍보도 없이 입소문만으로 훌루에서 가장 많이 시청한 K드라마로 떠올랐고, 첫 화면 '트렌딩' 카테고리에 들어갈 정도로 화제가 됐다. 특히 디즈니+에서는 아시아권에서 디즈니의 전통적인 오리지널 시리즈들보다 더 많이 본 시리즈로 떠올랐다. '무빙'의 무엇이 이런 반향을 가능하게 한 걸까.
우선 독보적인 스토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원작 웹툰을 그린 강풀이 직접 쓴 대본은 다양한 장르들을 비빔밥처럼 잘 섞어낸 바탕 위에, 글로벌 서사로서의 슈퍼히어로물과 로컬 서사로서의 한국적 현실을 절묘하게 엮어낸 완성도를 보여줬다. 이를 한 장면으로 묘사하면, 몸에 딱 맞는 슈퍼히어로 수트가 아닌 평범한 점퍼나 정장 차림을 하고 작전에 투입되는 슈퍼히어로라고나 할까.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제작진과 출연 배우들. 류영주 기자하늘을 나는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 점퍼 차림에 고글 하나 정도를 하고 비행기 옆으로 달라붙어 있는 장면은 너무나 '한국적인' 슈퍼히어로의 냄새가 묻어난다. 이런 한국적 색채는 고스란히 스토리로도 꽉꽉 채워져 있다. 입시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고3학생들이 그렇고, 이들의 생계를 책임지려 치킨집, 돈가스집, 고서점 같은 자영업을 하는 부모들이 그렇다. 게다가 부모 세대의 청춘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면 안기부가 맹위를 떨치던 80년대 한국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겹쳐진다.
부모 세대의 초능력자들이 안기부의 특수부서에서 관리되고 키워져 대북 작전에 동원되기도 하는 이야기는 남북 분단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상황이 아니면 그려낼 수 없는 내용이다. 즉 '무빙'이 그리고 있는 초능력의 세계는 남북한 대치 상황에서의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벌어진 무력을 통한 도발과 반격이라는 한반도의 역사적 서사들을 밑그림으로 담고 있다.
KAL기 폭파사건이나 김일성 사망, 남북정상회담,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같은 한반도에서 실제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은 실제로도 안기부의 위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즉 남북간 긴장이 고조될 때 안기부의 존재가치고 높아졌다는 것.
'무빙'이 이 안기부의 위상이 바뀌는 과정들 속에서 초능력자들이 이용되고 버려지는 상황들을 그리고 있고, 나아가 이 부모 세대 초능력자들이 역시 그 능력을 물려받은 아이들이 자신들 같은 삶을 살지 않게 하기 위해 숨고 도망치다 결국은 싸우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그래서 부모 세대들이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인 사투는 자식 세대가 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 해온 민주화 운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디즈니플러스 제공또한 슈퍼히어로물에 청춘멜로와 가족드라마, 스파이물과 느와르까지 K콘텐츠가 가진 다양한 한국적인 장르적 색채를 더해놓은 것도 신의 한 수가 됐다. 그래서 '무빙'은 무려 20부나 되는 장편이지만, 몇 편씩 서로 다른 장르를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됐다. 이로 인해 시리즈물이지만 진입장벽이 낮춰졌고 중간부터 본 사람도 앞부분을 챙겨 보고픈 욕망을 갖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오징어게임'에 비견되는 '무빙'의 가치 중 중요한 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한국적' 콘텐츠가 가진 힘이 글로벌하게도 통할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이 증명했다는 점이다. 슈퍼히어로물이라고 하면 마블이나 디씨를 떠올리게 되는 현실 속에서, 그들과는 너무나 다른 한국적 색깔로 재해석한 슈퍼히어로물이 오히려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무빙'은 보여줬다.
지구를 구하고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미국적 슈퍼히어로의 범람이 주는 피로감을, 가족을 지키고 생계를 걱정하며 나아가 생존을 위해 초능력을 쓰는 한국적 슈퍼히어로가 오히려 신선할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이 증명해 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