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9일 안양시재향군인회는 안양시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아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안보현장 견학'을 진행했다. 독자 제공경기 안양시재향군인회의 현직 회장이 공적 지원금이 투입된 사업에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을 대거 동원하는 등 '부정 행위' 의혹에 휩싸여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조금 투입된 제주 견학, 회장 '가족·지인'이 절반
3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가보훈부 산하 공법단체인 안양시재향군인회 A(60대)회장은 지난 5월,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안보현장 견학'을 진행했다.
전적지 답사를 통해 현장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안보교육활동 강화' 프로그램 중 하나로, 안양시에서 300만 원(숙식비와 교통비 등)을 지원받은 지방자치단체 보조사업이다.
사업 계획서에 따르면 제주도 견학은 올해 상반기 서울전쟁기념관(현역 장병 대상) 방문에 이은 2차 견학으로, 참여 대상은 여성회원 등을 포함한 '향군회원'으로 정해져 있었다.
안양시재향군인회의 '안보교육활동 강화' 사업 계획서 내 전적지 답사 내용 중 제주도 견학(2차) 대상자는 '향군회원'으로 기재돼 있다. 독자 제공하지만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이 같은 조건과 사업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로 채워진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A회장의 가족과 지인 등이 다수 포함돼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당시 참여자 명단을 보면 총 19명 중 회장과 부회장, 직원 등 향군회원 8명 외에 나머지 11명은 '회장가족(1)·회장친구(5)·지인(3)·회원가족(2)' 등이다. 회장가족은 A회장의 배우자다. 인원의 절반가량이 회장과 사적 관계에 있는 인물들인 셈이다.
견학에 참여했던 한 향군회원은 "여행 내내 안보견학이 아니라 '회장 지인 견학'을 온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며 "너무 어이가 없었고 소외감마저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안양시재향군인회 제주도 안보현장견학 참여자 명단. 독자 제공이처럼 적절성 논란과 내부 불만이 불거지면서, 지난달 말 관련 민원이 관리·감독 주체인 지자체에 공식 접수돼 현재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시는 사업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대상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 여부와 경위 등 민원 제기된 내용들의 사실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지방보조금법상 지자체장은 보조사업자가 지원금을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한 사실을 적발하면, 지원을 중단하거나 반환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에 따라 국가보훈부장관이 재향군인회 임원의 부당 행위 등에 대해 징계나 해임 요구를 할 수도 있다.
안양시청 관계자는 "조건에 맞지 않는 대상자들이 참여하면 규정 위반으로, 상응하는 조치가 가능하다"며 "아직 기초적인 조사 단계여서 확정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동기생들 강사 초빙…불참에도 곧장 강사료 지급
A회장이 시재향군인회 사업에 지인을 동원한 사례는 또 있다.
그간 시재향군인회는 시 보조금에 자부담금을 더해 해마다 2차례(전·후반기)씩 안보강연인 '율곡강좌'를 열어 왔는데, 올해 강의에서 A회장은 자신이 제안한 인물들로 강사진을 채웠다. 두 강사 모두 A회장의 군동기생이다.
통상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산하 지역별 재향군인회들의 안보교육 진행을 돕기 위해 향군안보교수진들을 구성·운영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재향군인회는 상급단체인 경기도재향군인회에 전·후반기 각각 공문을 보내 교수 지원을 요청한 뒤, 강사지원 의사를 확인한 상태였다.
이미 검증된 전문 교수들을 섭외할 수 있었는데도, A회장의 지시에 따라 강사가 취사선택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8월 안보강의 관련 안양시재향군인회 지출결의서. 독자 제공더욱이 8월 9일로 예정됐던 후반기 강좌에서는 강사 B씨가 행사장으로 이동 중 교통사고가 나 강연을 못하게 됐다는 전화를 걸어오는 등 직접 강의를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A회장은 강사료 처리 방식에 대한 사무국 직원 질의에 B씨 은행계좌로 입금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체내역서에는 강사료 12만 5천 원이 B씨의 강의가 무산된 당일 오후 B씨 명의의 계좌로 송금된 것으로 적혀 있다.
안보강연이 시 보조금 사업인 가운데, 강의료는 시재향군인회 자비 부담이기는 하지만 강의를 하지도 않은 대상자에게 지급함으로써 단체 예산을 낭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금액과 행위의 반복성에 경중은 있을 수 있다"면서도 "강의가 열리지도 않았는데 수당을 지급한 행위는 업무상 배임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법카 규정 위반 의혹도…'수사 촉구' 진정서 경찰에 접수
안양동안경찰서 전경. 경기남부경찰청 제공이 같은 의혹들과 관련, 지난 21일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A회장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공식 접수한 뒤 최근 진정인 조사를 마쳤다.
진정 내용에는 강사료 지급과 제주도 견학 건 외에도, 주말 휴일 법인카드 사용에 따른 규정 위반과 사무국 직원 등에 대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등도 담겼다.
법인카드 부정사용 의혹의 경우, 지난 2021년 3월과 12월 등 주말 휴일에 법인카드를 사용해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정한 업무추진비 집행지침을 어겼다는 취지의 내용이다.
진정인은 A회장이 2021년 1월 회장에 취임하기 이전, 6년여 간 해당 단체의 사무국장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어 관련 규정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부하 직원들에게 수치심을 유발하거나 강압적인 발언을 한 어록 등이 증거자료로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배임 혐의 등으로 진정서가 공식 접수됐다"며 "고발인(진정인)에 대한 조사 내용을 토대로 사실 관계를 파악해 정식 수사(입건)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A회장 "회비도 모았고…강사 사정 고려해"
지난 5월 제주도 견학 단체사진. 독자 제공
이번 사안에 대해 A회장은 '부득이한 상황별로 융통성 있게 대응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A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계획된 인원이 확보되지 않아 개인당 회비 40만 원씩을 더 내서 가족과 지인 등이 견학에 함께 참여했다"며 "보조금만으로 진행된 게 아니고, 대한민국에 군번이 있는 사람과 그 가족들은 모두 우리 회원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밝혔다.
이어 "강의료 입금 지시를 한 건 맞다"면서도 "강사가 대형 교통사고로 결강해 제가 대신 강의했고, '회장이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내부 의견을 감안해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법인카드 규정 위반과 직장내 괴롭힘 의혹과 관련해서는 "회장이 활동비로 50만 원씩 쓸 수 있는데, 임원과 이사 등이 평일 퇴근 시간이 늦어 시간을 고려해 결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표현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른 것으로, 강압적 언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편, A회장은 시재향군인회 회장 선거 기간 입후보 조건(안양 내 6개월 이상 거주)을 총족하기 위해 위장전입(주민등록법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일부 정황은 의문이 들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검찰이 항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