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7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귀성길에 오르고 있다. 박종민 기자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6일 모두 쉬는 것이 '당연'한 추석 황금연휴. 그러나 어떤 이들은 추석이라도 '일'이 간절하다. 또 어떤 이들은 명절 하루라도 '쉼'이 고프다.
연휴 앞둔 인력시장 "일 있으면 당장이라도 갈 것"
추석 연휴를 단 하루 앞둔 27일 새벽 4시.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찾은 서울 구로구 새벽인력시장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면 실외 작업이 어렵기 때문에 일감이 줄어드는 데다 연휴를 앞두고 쉬는 건설현장이 많기 때문에 인력시장은 평소보다 덜 붐볐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백 명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감을 구하러 이곳을 찾았다.
27일 서울 남구로역 새벽 인력시장. 민소운 기자작업복을 입고 모여든 이들은 코앞으로 다가온 추석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 우산을 쓰고 차를 마시며 줄을 서서 일감을 구하기만을 기다렸다.
구로구청 공공근로자는 "평소에는 이 시간에 1천명에서 1500명 정도가 오지만, 오늘은 비도 오고 명절 직전이라 사람들이 적게 나온 편"이라며 "이번에는 추석 연휴가 길어서, 6일 쉬면 (일용직 노동자들의)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20년째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는 이재석(62)씨는 "추석에는 현장 자체가 쉬기 때문에 우리도 일할 수가 없다"면서 "추석 때라도 일이 있다면 당연히 하고 싶다.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니냐"며 헛웃음을 지었다.
6일에 달하는 황금연휴를 앞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이씨는 "큰일 났다"면서 "돈도 없고, 일은 없고 아작 나는 거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고 말했다.
이씨는 "추석 때 일감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가겠다"면서 "지금 당장 먹을 라면 하나도 없어서 걱정"이라며 "(추석 때 일을 쉬면) 피해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당장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일용직 노동자 김모(53)씨도 "추석 때는 일이 없으니까 쉬어야 한다"면서도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이 있으면 하고 싶은 마음인데, 그런대로 살아야지 뭐 어떻게 하겠냐"고 말했다.
김씨는 "가뜩이나 용역비 10%를 떼고, 세금 떼고 4대 보험과 차비를 떼고 나면 하루 일당이 얼마 되지도 않는다"면서 "아무도 노동자를 대변해주지 않는다"며 일용직 노동자의 고충을 토로했다.
일감을 구하러 온 정모(49)씨 또한 "노후 대책을 해야 할 것 아니냐"면서 "추석 6일을 쉬면 돈을 못 버니까 생활비가 없어서 힘들다"고 말했다.
정씨는 "명절이면 조금 신나게 놀아야 되는데 그럴 수 없고 (경제적) 타격이 당연히 크다"면서도 "그런데 버텨내야지 어쩌겠냐"고 말하며 길게 늘어선 인력시장 줄에 합류하러 떠났다.
쿠팡 택배노동자들 "6일 중 딱 하루 쉬어요"
일이 간절한 이들이 있는 반면, 쉼이 간절한 이들도 있다. 바로 쿠팡CLS 택배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쿠팡CLS 택배기사 A(37)씨는 이번 6일 연휴 중 추석 당일 딱 하루만 쉴 수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 쉬는 날에도 강원도에 있는 가족들을 보러 다녀오기는 곤란하다. 추석 당일 전후로 강도 높은 업무를 하기 때문에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이 갈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A씨는 "다른 노동자들이나 다른 택배사들도 추석 때는 다 쉬는데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게 있다"면서 "다른 때도 아니고 추석, 가장 큰 명절인데 그때는 다 쉬게 해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A씨는 "최소한 추석 연휴에는 라우트(배송구역) 수행률과 무관하게 다른 택배사들처럼 가족들과 같이 보낼 수 있게 6일 다 쉴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가 '쿠팡CLS의 추석 당일 휴식보장 촉구, 추석당일 하루 휴무투쟁 선포 회견'을 열었다. 민소운 기자추석 연휴를 앞두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는 쿠팡 측에 추석 때 당일 하루만이라도 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고 촉구해왔지만, 쿠팡은 이를 거부해왔다.
'계약 당시 백업 기사를 두도록 했고, 쿠팡 친구도 있기 때문에 쿠팡 택배노동자들은 원할 때 쉴 수 있다'는 것이 쿠팡 측의 입장이지만, 노조는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실제 한 쿠팡CLS 대리점이 택배노동자와 맺은 계약서를 공개했다. 해당 계약서 제16조 4항에는 '공휴일, 명절 등 특수 요일에도 라우트(배송구역) 수행률을 지켜야 한다'며 공휴일, 명절 근무가 명시돼 있다.
또한 5항에는 '공휴일이라 하더라도 추가 휴무 없이 기존 주1회 휴무 그대로 주6일 근무를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러한 계약서를 두고 노조는 "쿠팡 택배노동자들은 원할 때 쉴 수 있는 게 아니라 공휴일과 명절과도 관계없이 주6일 근무를 사실상 '강요'받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실제 대다수 영세 사업장에는 백업 기사가 거의 없고, 수행률이 떨어질까봐 원해도 쉴 수 없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에 따르면, 송파5캠프의 경우 몸이 아파 4일을 쉰 택배노동자가 260만 원의 용차비(대체 기사 비용) 폭탄을 맞는 일까지 발생했다.
A씨 또한 "우리 대리점은 '백업 기사' 자체가 없고, 없는 대리점들이 많다"면서 "내가 쉬더라도 쿠팡 친구든 누구든, 누군가는 내 자리에 와서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주장하는 건 그 누구도 일하지 않고 온전하게 다 쉬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쿠팡CLS 택배기사 B(35)씨 또한 추석 연휴 첫날 딱 하루만 쉬고 나머지 5일은 일을 하게 됐다.
B씨는 "남들처럼 연휴를 전체 다 쉬면 좋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쿠팡은 구조적으로 추석 연휴에도 배송이 야간이고 주간이고 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다른 택배사처럼 다 같이 쉴 수 있으면 좋을텐데, 쿠팡은 그게 안 되니까 다른 동료 택배기사들도 많이 아쉽다고 토로한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조 측은 과로사 위험으로부터 쿠팡 택배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쟁의권 발동 등 모든 방법을 통해 추석 당일 휴무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다.
전문가들 "노동자 휴식권 보장해야"
전문가들은 추석 때 쉼을 바라는 이들의 휴식이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택배노조 한선범 정책국장은 "쿠팡은 자신들이 제시하는 라우트 수행률이나 배송률을 지키지 못하면 배송구역을 회수해버리는데, 구역을 회수하면 택배기사는 그냥 해고되는 것"이라면서 "그게 무서우니까 택배기사들이 강도 높은 노동을 계속 하고, 추석 근무나 명절에의 근무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노사정 합의를 통해 마련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준수하고, 생활물류법이 명시하는 계약 갱신 거절 및 해지 사유를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일용직 노동자들처럼 추석마저도 일하기를 원하는 이들의 휴식권 또한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일용직 노동자라도 2~3개월 이상 꾸준히 한 곳에서 일하는 이들이 많다"면서 "그런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의 지속성을 인정해서, 소득보전 지원을 하고 정부가 휴가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추석 때 일하지 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선택권을 주자는 것"이라면서 "사회보험료 등 일정 정도 소득을 보전해주면 '내가 하루 정도는 쉴 수 있겠다' 하는 선택의 기회가 생기는 것이니, 국가가 적어도 그런 선택의 기회를 제공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