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제공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올 추석 연휴는 6일간 이어지게 됐다. 그러나 '추석 황금연휴' 기간이 활동지원사의 보조를 받아야 하는 중증장애인들에게는 오히려 두렵고 버텨내야 하는 힘든 시간이다.
명절마다 '그림의 떡' 활동지원서비스…부담스러운 비용, 찾기 힘든 지원사
24시간 호흡기를 착용하며 활동지원을 받아야 하는 뇌병변 장애인 최진영(45)씨는 긴 연휴가 "불안하고 무섭다"고 호소했다. 활동지원사도 추석에는 대부분 명절을 쇠러 가고, 이 기간만을 위한 대체 인력을 따로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을 구하더라도 엿새간의 긴 연휴 동안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기존에 지급받은 바우처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니 최씨는 어쩔 수 없이 추석 연휴 동안 밤에는 혼자 있기로 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중증장애인에게 보건복지부가 장애 정도에 따라 매달 47~480시간씩 제공하고, 지자체가 추가로 지원한다. 서울시의 경우 한 달 100~350시간씩, 바우처 금액으로 환산하면 월 155만 7천 원에서 545만 원까지 지원한다. 활동지원서비스로만 사용하도록 장애인 당사자를 거치지 않고 활동지원사 임금으로 바로 지급되는 돈이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수가는 야간(오후 10시~다음 날 6시)이나 휴일·공휴일에는 평일의 1.5배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평일은 하루 28시간, 휴일은 36시간을 장애인 당사자의 바우처에서 차감하는 셈이다.
최씨는 복지부에서 400시간, 서울시에서 추가로 200시간을 지급받아 한 달 총 600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24시간 활동지원사의 도움이 필요한 최씨는 매월 200여 시간이 부족하다. 추석 연휴 기간 임시공휴일까지 더해지면서 부담은 더욱 커졌다.
언어장애를 가진 최씨의 옆에서 의사소통을 도운 활동지원사 김현정(40)씨는 "월말에는 항상 시간이 부족해서 (최씨가 기초생활수급비를 아껴 모은) 사비로 치를 때도 있다"며 "사정이 되는 지원사들이 대가 없이 도와주는 등 타협하거나, (서비스 시간이 끝나도) 최대한 늦게까지 남는 등 지원사들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씨는 매년 반복되는 연휴 기간 복지 공백에 대해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계속 공백이 이어지니 이제는 우울하기까지 하다"며 "(걱정 없이) 24시간 활동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연휴처럼 임시공휴일을 지정한 경우에는 늘어난 부담만큼 비용을 보전하는 등 긴급 지원책도 제공되지 않는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령상 법정 공휴일이 휴일과 겹쳐 정해지는 대체공휴일은 장애인활동지원 이용시간을 추가 지원하지만, 정부가 따로 지정한 임시공휴일은 대체공휴일과 달리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서울 응급알림 가입 중증장애인 고작 7%…정부, '독거 중증장애인' 현황조차 파악 안 해
김씨는 "공백이 생겼을 때 '대타'가 빨리 안 구해진다"며 "추석 연휴에 관공서도 다 쉬는데 갑자기 (최씨의) 호흡에 문제가 생기면 위험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어 "(최씨가) 119안심콜서비스에 등록돼 동사무소에서 안부 전화는 오지만,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자동알림이 가는 장치는 없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화재·낙상 등 응급상황을 감지해 자동으로 119와 응급관리요원에 알리는 '독거노인·장애인 응급안전안심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 대상자가 직접 신청하는 방식이라 지난 7월 30일 기준 전국에서 장애인 1만 31명, 이 가운데 서울의 경우 1673명만 등록됐다.
국민연금공단이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실에 제출한 '지역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수급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 기준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 가운데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은 14만 223명, 이 가운데 서울 이용자는 2만 4954명이다. 이들 중 약 7%만 서울 응급안전안심서비스에 등록된 셈이다.
심지어 당국은 '독거 중증장애인'에 관한 현황은 따로 파악하고 있지도 않고 있다. 복지부가 김영주 의원실에 제출한 '중증장애인 1인 가구 현황'에 따르면 복지부는 전국 중증장애인 1인 가구를 26만여 명으로 '추정'할 뿐이다. 이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 등록 장애인 중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98만 4천여 명에, 2020년 기준인 '장애인 실태조사'의 1인 가구 비율 27.2%를 단순 적용한 추산치에 불과하다.
두 다리가 마비된 지체 장애인 조모(54)씨가 바로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다. 조씨도 추석 연휴가 시작된 지난달 28일부터 4일간 활동지원사 없이 홀로 지냈다. 지자체 지원 없이 복지부에서만 월 240시간의 활동지원 바우처를 받으니 긴 연휴 기간 1.5배 높은 수가를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조씨의 활동지원사도 명절을 쇠러 갔기 때문에 '버티기 전략'을 택한 것이다.
조씨는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다면 (혼자 있을 때) 거의 수분 섭취를 안 한다"며 "화장실 갈 수 있는 원인 자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식사 횟수를 하루 두 끼 먹었다면 (연휴 기간에는) 한 끼로 줄이고 양도 줄인다"며 "처음엔 어려웠고, 지금은 슬프지만, 적응하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혼자 살며 지역의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지원센터 사무국장도 맡고 있는 조씨는 "남들은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지만 저는 혼자 지내야 하니까 생활하기도, 심리적으로도 명절 연휴가 길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며 "중증장애인 가운데 1인 가구가 많다. 명절 때만큼은 한시적으로라도 활동지원체계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복지부·연금공단·사보원 등 관련 기관들이 독거 중증장애인의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관심 부족"이라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 중증장애인들을 지원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공공돌봄으로 공백 메꿔야" 지적에도…거꾸로 가는 尹정부 복지 정책
스마트이미지 제공목 아래로는 스스로 신체를 가누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 김준우(48)씨는 "추석 등 연휴 때 대부분 활동지원사도 명절 쇠러 가기 때문에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저한테 오시는 활동지원사 7명 가운데 4~5명이 집에 내려간다고 해서 2~3명으로 6일 일정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해도, 장애인 당사자가 활동지원사와 '알아서' 일정을 개별적으로 조율하며 전전긍긍하고, 조율이 어려울 때 비로소 민간 지원기관에 다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복지부는 지난달 25일 각 지자체에 보낸 '2023년 추석 연휴 대비 장애인활동지원 돌봄 강화 협조 요청' 공문에서 "활동지원사의 연휴, 개인 사정으로 공백이 발생할 경우 활동지원기관과 미리 협의해 대체인력 등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기 바란다"고 전달했다. 또 모범사례로 "야간·연휴 시 활동지원기관 자체 당직 전화 운영으로 예상치 못한 활동지원 서비스 필요 발생 대비, 연휴 대비 대체 인력풀 운영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CBS노컷뉴스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연휴 기간 활동지원 공백에 대한 긴급 지원책 등이 마련돼 있느냐는 질문에 "서울시에서 별도로 (긴급 지원책 마련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활동지원기관에 소속된 활동지원사와 장애인이 직접 계약하고, 장애인 이용자나 활동지원사가 2~3개 기관에 중복 등록돼 (이용에) 큰 문제가 없다"며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활동지원기관에 비상연락망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서울시가) 사실 사회복지시설은 아니고 지도·감독에 있어서 한계가 있는 부분이지만, (한국 사회복지서비스 자체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응당 대가를 받는 체계"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직접 공급하는 대신 민간 기관에 위탁하고 이를 지원·관리하는 역할에 머물러 매년 돌봄 공백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운수노조 오대희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장은 "전국에 활동지원사가 10만여 명인데, 공공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저를 포함해 40명이 전부"라며 "(민간 지원기관의 경우) 이용자가 고스란히 (돌봄 공백을) 고민하고, 활동지원사가 대체 인력을 직접 알아보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오 지부장은 공공 활동지원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서울시사회서비스원 같은 경우 이용자에게 바우처로 돈을 받지 않는 월급제 형태여서 활동지원사의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고, 정규 인력이 대체 인력으로 투입되니 장애인 이용자도 공백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서비스원(사서원)은 '공적 돌봄'을 강화하기 위해 2021년 관련 법이 제정되면서 경북을 제외한 각 광역 시·도에 설립됐다. 그러나 2024년 예산안 가운데 사서원에 대한 재정 지원은 기획재정부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서울에서 사서원이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재가센터는 성동과 노원 두 곳뿐인데, 이마저도 지난해 10월 성동센터로 통폐합하면서 장애인활동지원사 정원도 55명으로 줄였다.
전문가들은 사회서비스 '시장화' 기조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공공 주도 돌봄 기능을 축소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백인혁 정책국장은 "휴일 장애인 돌봄 공백 등을 방지해 장애인 이용인과 활동지원사가 연결되도록 사서원을 설립했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서 사서원의 주요 사업을 폐지하거나 '직접 돌봄' 기능을 '민간 지원'으로 180도 전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김진석 교수도 "한국의 사회서비스는 30년 넘게 민간에 의존하고 있다"며 "공급 계획과 사례 관리를 포함한 전반적인 계획 없이 개인 간 계약 관계를 통해 (돌봄 정책이) 이뤄지기 때문에 일상적인 돌봄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한 이유도 공공이 고용 관계의 안정성을 제공해서 돌봄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노동 환경을, 이용자에게는 양질의 돌봄 노동을 제공하자는 것"인데도 "장애인 활동지원 수가를 바우처 방식으로 제공하는 역할만 국가의 책임으로 선을 긋고, 돌봄 시장 안에서 활동지원사와 장애인이 계약 관계를 맺고 운영하는 내용은 사실상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