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윤창원 기자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면서 대법원장 공백 사태 장기화는 끝내 현실화됐다. 이 후보자와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막판까지 '읍소' 전략을 펼쳤지만, 더불어민주당 기류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7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국회는 전날 열린 본회의에서 찬성 118명, 반대 175명, 기권 2명으로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대법원장 후보자가 낙마한 건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7월 정기승 후보자에 이어 두 번째로, 35년 만이다.
이 후보자는 낙마 직후 취재진을 만나 "어서 빨리 훌륭한 분이 오셔서 대법원장 공백을 메워 사법부가 빨리 안정을 찾는 것이 바람"이라며 "사법부가 속히 안정을 찾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더 드릴 말씀이 없고 빨리 사법부가 안정을 찾아야 국민이 재판을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번 부결로 대법원장 공백 사태는 장기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전임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미 지난달 24일 임기를 마쳤다. 통상 대법관 인선 절차가 천거와 검증, 제청까지 약 3개월 정도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최소 두 달 이상 장기화할 수도 있다.
후보자 임명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 정기국회에서 예정된 다음 본회의는 11월 9일이지만, 10월 빼곡한 국정감사 일정 때문에 그 전에 인사청문회를 마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대법원은 수장 공백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지만, 딱히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사법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 후보자 부결 소식이 전해진 뒤에도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고 구성원들의 동요가 없도록 내부 안정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법원을 중심으로 한 법조계에서는 전원합의체(전합) 심리를 비롯해 상고심 지연, 대법관 임명 제청을 비롯한 법관 인사 문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한대행을 맡은 안철상 대법관을 중심으로 공백을 메워야 하지만, 권한대행의 역할은 '현상 유지' 수준에 그칠 뿐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크거나 종전 판례 등을 변경할 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합 심리를 열어야 하지만 대법원장 궐위시에는 전합이 불가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법원조직법에서 전합 재판장 자격을 대법원장으로 규정한 점 등에 비춰볼 때 권한대행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전합 결론이 기존 법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경하거나 새롭게 창설할 경우 '통상적 업무만 대행할 수 있다'는 권한대행 업무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
더구나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안 대법관이나 민유숙 대법관도 내년 1월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후임 인선 절차도 진행할 수 없다. 대법관에 대한 임명 제청권은 헌법상 대법원장의 권한인 만큼 권한대행이 이를 행사할 수 있는지 불명확하다. 법원장을 비롯한 기관장 인사, 신임법관 임명, 직급 변경 인사 등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안 대법관은 전날 퇴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공백 사태가 빨리 해소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의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면서 전원합의체 심리나 법관 인사 등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 권한대행은 "(전합 심리 등과 관련해) 예년 대행 체제 하에서도 사례가 있다"며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는 언제든지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앞으로 검토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법관 제청이나 법관 인사 여부에 대해서도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겠지만, 필요성과 긴급성 상당성에 의해 결정돼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관) 재임용 같은 경우 재임용이 안 되면 당장 재판을 못 하게 되는데 그런 사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런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0회 국회(정기회) 제09차 본회의에서 대법원장(이균용) 임명동의안이 재적298인, 총투표수295표, 가118표, 부175표, 기권2표로 부결되고 있다. 윤창원 기자
한편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새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상황이 이렇게 됐기 때문에 사법부 공백을 메우고,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임자를 찾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차기 후보자를 미리 찾는 작업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새 후보자를 (표결 전에) 미리 찾아보려는 노력은 적절하다고 할 수 없겠다"라며 "우리로선 최선의 후보를 찾아서 국회에 임명동의 요청을 하고 그것을 기다리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은 "반듯하고 실력 있는 법관을 부결시켜 초유의 사법부 장기 공백 상태를 초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며 "그 피해자는 국민이고 따라서 이는 국민의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개인 입장임을 전제로 "오늘 대법원장 인준 부결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국민께서는 다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진짜 이유는 소위 말하는 사법부 길들이기나 범죄 혐의자에 대한 방탄 같은 민주당에 정치 역학적인 전략적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명분 없는 이해타산 때문에 사법부가 혼란을 갖게되고 그로 인해 국민이 피해 보는 것이 안타깝다"며 "국민도 공감하시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