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7시 30분 성복중앙교회에서 '새벽만나'를 찾은 학생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박영규 인턴기자교통비를 비롯한 기본비용이 너나할 것 없이 오르는 고물가 시대, 허리띠를 졸라매는 청년들에게 식비는 큰 부담요소다.
지난 3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전국 48개 대학생 207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95.1%가 물가 인상을 체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가장 부담이 되는 지출 항목'을 묻는 질문에는 56.1%의 학생들이 식비라고 응답해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물가 상승에 따른 여파로 식비를 가장 먼저 줄였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77.2%에 달했다.
이처럼 고물가 시대 식비 부담에 허덕이는 대학생‧청년들을 위해 10년 넘게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특별한 교회가 있다.
23일 성복중앙교회 지하 1층 식당에서 '새벽만나'를 찾은 학생들이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박영규 인턴기자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27일 오전 7시. 이미 환하게 켜져 있는 성복중앙교회 지하 1층 식당에서는 위생마스크와 장갑을 낀 봉사자들이 학생들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윽고 후드티나 트레이닝복 등 제각기 가벼운 옷차림을 한 학생들이 하나둘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교회를 찾은 이유는 바로 '새벽만나'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먹기 위해서다.
2013년 2월 학교 인근에서 자취하는 대학생의 식사 부담을 덜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성복중앙교회의 아침식사 봉사 프로그램 '새벽만나'는 올해로 11년째를 맞았다. 방학을 제외한 매주 평일, 오전 7시부터 8시 10분까지 운영한다. 하루 평균 60~70명가량의 대학생‧청년들이 이곳에서 든든한 아침식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27일 성복중앙교회의 아침식사 메뉴. 계란프라이 얹은 카레라이스, 김치, 콩나물무침, 마늘장아찌 등 반찬에 귤도 후식으로 함께 제공됐다. 박영규 인턴기자이날 메뉴는 계란 프라이를 얹은 카레라이스, 김치, 콩나물 무침, 마늘장아찌 등 반찬에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귤도 함께 제공됐다.
식사를 위해 필요한 식권이나 키오스크는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모두 무료기 때문이다.
교내 입소문을 듣고 이날 처음 '새벽만나'를 방문했다는 자취생 이모(22)씨는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 식비 부담이 커져 끼니를 거르기 일쑤인데,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강모(20)씨 역시 "원래 항상 아침을 챙겨먹었는데, 이번 학기부터 자취를 시작하면서 아무래도 식비 부담이 커졌다"며 "무료인데다 학식과 비교했을 때 양과 질 측면에서 더 좋아 거의 매일 아침을 이곳에서 먹는 편"이라고 말했다. 같은 과 동기인 강씨와 함께 교회를 찾은 유모(21)씨도 "양이 항상 푸짐하고 봉사자분들이 친절하셔서 좋다"고 호평했다.
자취생 윤모(25)씨 역시 "맛도 좋지만 무엇보다 배식해 주시는 봉사자 분들이 항상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따뜻한 분위기에 일주일에 2~3번은 새벽만나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봉사자들은 모두 교회 성도들로 구성돼있다. 요일마다 4명씩 교대로 조리 및 배식 봉사를 진행하는데, 대부분 본업이 있어 봉사를 마친 후 각자의 직장으로 출근한다.
금요일마다 배식 봉사에 참여한다는 김모(58)씨는 2015년부터 9년째 새벽만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씨는 "본업이 있어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그나마 새벽"이라며 "어려운 시기에 청년들이 마음을 열고 열심히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새벽만나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늘 보장된 수준의 맛과 질을 자랑한다. 새벽만나가 시작된 이래 메뉴 기획과 조리를 전담해 온 김희정(62) 권사는 한때 요식업 종사자였다. 한식조리기능사와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증까지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훌륭한 요리 솜씨를 자랑한다.
하루 평균 100인분의 음식을 조리한다는 김 권사는 "고기 같은 단백질 음식을 꼭 메뉴에 넣으려고 한다"며 "많은 음식을 만들다 보면 힘을 들 때도 있지만,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새벽만나를 담당하는 성복중앙교회 김문진 목사는 "지방에서 올라온 자취생들이 식비에 부담을 느끼고 끼니를 거르는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이 한 끼라도 제대로 된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새벽만나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새벽만나'를 이용한 학생들의 감사 메시지. 성복중앙교회 지하 1층 식당 한켠에는 감사 메시지가 붙은 게시판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박영규 인턴기자아침식사를 위해 새벽만나를 찾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그러나 11년째 무료 아침식사 나눔을 이어오고 있는 '진심'에 학생들의 마음도 활짝 열렸다.
김 목사는 "한때 교회에 대한 시선이 사회적으로 안 좋은 시기도 있었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입장에서 (아침식사를 하러) 오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는데, 새벽만나를 꾸준히 진행하다 보니 교회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도 봉사자 분들께 음료 등을 전하거나 따로 재료비 후원을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물가가 오르면서 무료로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데 따른 부담도 분명히 있지만, 성복중앙교회는 새벽만나를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김 목사는 "새벽만나의 의미와 가치를 살리고자 교회 내부적으로도 예산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으며, 쌀이나 기타 공산품 등 후원도 일부 받고 있다"고 밝혔다.
무료로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교회는 성복중앙교회 뿐만이 아니다. 노량진에 위치한 강남교회 역시 23년째 노량진 지역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새벽밥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은퇴한 권사‧집사‧장로들을 중심으로 교회 내 식당에서 식사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약 90~100명의 수험생들이 이곳을 찾는다. 강남교회 역시 물가 상승으로 인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교회 내부 예산과 교회에서 과거 새벽밥을 먹었던 직장인 성도들의 후원 등을 통해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교회 구귀현 목사는 "지역사회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배고프고 가난한 소외계층을 향한 새벽밥 사역을 시작했다"며 "앞으로도 많은 영혼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