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상대로 지상전에 돌입하며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이 일자 석유와 LNG(액화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에너지 수요가 몰리는 동절기를 앞두고 '역마진 구조'에 갇힌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적자 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외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에 지상군을 투입하며 본격 전선을 넓히고 있다. 하마스의 기습 공습으로 촉발된 전쟁 초기만 해도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중재로 양측의 충돌이 잠잠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상군이 투입되며 사실상 장기전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전쟁으로 인한 충격은 즉각 에너지 시장에도 반영되고 있다. 현지 시간으로 30일 기준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4.45달러, 두바이유는 89.88달러 등을 기록하며 꿈틀대고 있다. 지난달 중순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의 감산 발표 이후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지만 진정 국면으로 돌입하는 분위기가 흘렀다. 이 와중에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공습으로 이스라엘과 충돌하면서 국제 유가는 재차 상승세로 돌아섰다.
전력 생산과 난방용 에너지로 사용되는 LNG 가격도 요동치고 있다.
동북아시아 LNG 시장 기준인 일본·한국 가격지표(JKM) 현물 가격은 백만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양)당 지난 27일 기준 약 17.8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초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과 함께 국제 에너지 원자재 수급난으로 인해 지난해 8월에는 50달러 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재 마련과 유럽 겨울의 이례적 이상고온 현상 등으로 인해 지난해 11월 33달러를 기록하며 점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LNG 수요가 적은 계절적 영향으로 지난 6월에는 9.2달러까지 내려갔지만, 지난달 28일 14.7달러, 지난 19일 18.2달러 등으로 우상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기, 가스 등 겨울철에 필수적인 에너지 원자재를 사실상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선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문제는 수입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소매 전기‧가스요금은 동결하거나 소폭 인상에 그치며 '역마진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한전과 가스공사 등은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부채가 201조원에 달하는 한전은 현재 가격 구조를 유지할 경우, 올해 말 누적 적자가 50조원을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가스공사 역시 사실상 부채에 해당하는 미수금이 15조원을 초과한 상태다. 올해 안에 요금인상을 단행하지 않을 경우, 채권 발행 한도 초과 등으로 인해 한전과 가스공사는 전력 및 가스를 도매시장에서 구입할 자금 조달도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 윤창원 기자
이 때문에 올해 국정감사에서 김동철 한전‧최연혜 가스공사 사장 등 에너지 공기업 수장들은 일제히 요금 인상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 악화를 우려한 정부‧여당 내부에선 요금 인상에 부정적인 기류가 흐른다.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공공 요금상승을 자극해 연쇄적인 물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출이 대폭 감소한 상황에서 에너지 수입액 급증으로 인해 '불황형 흑자'가 지속될 경우, 우리 경제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며 가격 인상을 통한 '소비 절약'과 '원가주의 회복'을 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총선이나 선거는 단기적인 것이지만, 에너지 문제는 오랜 시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폭이라도 가격을 올려 장기적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도 통화에서 "국제 분쟁 변수로 인해 LNG 가격은 당분간 계속 오를 것"이라며 "본격 위기가 오기 전에 정부가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