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 발표를 마친 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지난주 발표된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은 앞으로
'얼마나 내고 받을지' 등 구체적 대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맹탕'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이같은 지적은 재정안정론과 소득보장 강화론, 양측에서 모두 나왔다.
보건복지부 산하 전문가 자문기구인 연금재정계산위원회에서 전자의 입장을 대표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윤석명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은 3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어렵더라도 최소한 (현 9%인) 보험료율을 12%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안을 정부가 내놨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정계산위원회는 복지부에 제출한 최종보고서에서 보험료율을 12%·15%·18%로 각각 올리는 방안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다만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당위성을 명시한 점을 고려해 "(F학점이 아닌) D 정도는 줄 수 있을 거 같다"면서도 "국회에서 여태까지 25년간 국민들이 싫어한다고 1%p도 못 올렸다. (내년 4월) 총선이 있는데 이걸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27일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에서 보험료율·소득대체율 등 구체적 모수(母數)가 반영된 개혁방안을 제안하지 않았다. 재정계산위의 24가지 시나리오 중 특정안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단지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연기금 고갈 예상시점이 2055년으로 더 빨라진 점을 감안해
보험료율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또 세대 간 형평성을 위해
연금 수급이 얼마 남지 않은 중장년층은 인상률을 더 가파르게 적용하고, 청년 세대는 장기간 천천히 요율을 올리는 방식을 제언했다.
윤 연구위원은 이같은 '연령대별 보험료율 차등인상' 등을 두고 "'듣보잡'이라고 굉장히 비판을 많이 하시는데, 우리 현실에서
그나마 사회적 수용성이 있다 싶으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연금개혁은 결국 '더 내거나'(보험료율 인상), 급여를 '더 적게 받는'(소득대체율 인하) 길로 정해져 있다고도 봤다. 윤 연구위원은 "(이런 측면에서)
젊은층은 '연금개혁 한다면서 우리는 그렇게 고통분담을 많이 하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무슨 고통분담이 있느냐'는 불만을 굉장히 많이 제기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간 복지부가 대학생·직장인·프리랜서 등 다양한 계층의 청년들과 간담회를 거친 후 내린 결론이 이번 안(案)이라는 것이다. 윤 연구위원은 "나이 든 연령층에서 '우리도 고통을 조금 더 분담할 테니 당신들도 이런 충정을 좀 이해해 달라'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제안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보험료를 똑같이 5%p를 부담한다고 했을 때 나이 든 분들은 보험료를 낼 기간이 짧지 않나. 5년 만에 매년 1%p씩 내라 (하고) 보험료 낼 기간이 많은 젊은층은 똑같은 보험료를 20년 동안 나누어 내란 것"이라며 "제대로만 작동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 합리성은 있다"고 부연했다.
연금 재정수지에 집중해 기금 소진시점을 부각하는
재정안정론을 '공포 마케팅'이라 비판하는 보장강화론 측 주장에 대해선 "('더 내고 더 받자'는 보장강화론이야말로) '포퓰리즘 마케팅'"이라고 반박했다.
윤 연구위원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국민들이 좋아한다고 계속 그 제도를 하자는, (바로) 그게 포퓰리즘"이라며
"정부도 (재정안정론에 입각해) 던지고 싶은 내용은 있었을 텐데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 포퓰리즘 마케팅이 득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소득대체율 인상을 통한 보장강화 방안이 개혁안에 담겨야 한다고 주장한 남찬섭 동아대 교수·주은선 경기대 교수는 공청회를 앞두고 재정계산위 보고서에서 해당 내용이 누락되자, 이에 항의하며 사퇴했다.
두 학자가 주축이 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에서 지난 26일 내놓은 대안보고서는 '더 내고 더 받는(2025년 소득대체율 50%로 일시인상)' 안을 골자로 하고 있다.
윤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재정계산위 보고서의) 핵심은
소득대체율을 40%로 (현행대로) 낮추고 보험료를 15%로 올리고, 연금 받는 연령을 3년 연장한 68세 늦춰도 재정 안정이 달성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보험료율 인상·수급개시연령 상향에 더해) 복지부 장관께서 발표하신 것처럼 우리가 샌프란시스코에 (기금운용본부) 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노력을 많이 해서 기금투자 수익률을 1%p 더 올리겠다, 구체적으로 매년 0.6%p씩 더 올려야 재정 안정 달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왜 무지막지한 숫자를 가져다가 자꾸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느냐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1000조원이 있다 해도
국민연금에서 지급하기로 약속한 액수 대비 부족분(分)인 미적립 부채는 1825조원"이라며 "1인당 한 85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단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연구위원은 '그럼 어느 정도 내고, 언제부터 얼마를 받아야' 연금제도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보험료를 최소한 15%p까지 6%p 올리고, 당장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68세까지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혹은) 수급연령을 올리지 않고 65세(2033년 예정)부터 받되 자동안정장치를 작동시키면 수급(개시)연령을 3년 연장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어느 쪽이든) 일단 최소한 보험료는 15%까지 올려야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