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인천의 한 빌라에 사는 50대 A씨는 '젊은 집주인'이 이상하다.
지난해 9월 살던 집의 주인이 바뀌었다. 새 집주인은 2000년생 젊은 집주인이었다. 올 들어 집 누수 문제가 생겨 새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새 집주인은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바쁘다는 이유로 통화는 불가능했고 '부동산 관리인이 연락을 줄 것'이라고 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유일한 연락수단인 카카오톡을 통해 새 집주인에게 메시지를 계속 보냈지만 새 집주인은 메시지를 잘 읽지도 않았다.
'새 집주인' B씨는 불안하다.
지인으로부터 '건당 5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들었다. 홀로서야 하는 자립준비청년인 B씨는 일이 모두 끊긴 상태였다. 당장 월세와 생활비가 급했는데 '50만 원'이라는 금액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했다. 지인도 문제없이 했다고 해 다른 생각은 깊이 하지 못했다.
B씨는 '대표'라는 사람을 만났다. '대표'를 따라가 내미는 서류에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서류에 찍은 B씨 이름의 도장은 '대표'가 만든 것이었다. '대표'가 연 서랍 속에는 B씨의 이름 외에도 많은 이름으로 된 도장이 있었던 것으로 B씨는 기억한다.
이틀 동안 2건을 반복해 건당 50만 원씩, 모두 100만 원을 받았다. '대표'는 얼마 뒤 또 서류 몇 가지를 챙겨 보내달라고 했다. 몇 가지 서류를 보내고 30만 원을 받았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B씨는 '대표'에게서 "다른 소개할 사람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B씨와 비슷한 처지였던 동생, B씨의 지인도 같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고 잊고 지냈는데, 연락이 왔다.
인천에 사는 세입자라며 집수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이 모르는 지역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B씨는 3~4채의 '집주인'이 돼있었다. B씨와 같은 아르바이트를 한 동생과 지인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에게서 소개를 받은 '팀장'에게 문제를 알렸지만 해결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세입자들의 독촉은 심해졌다. B씨와 '팀장' 간에도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이후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뉴스를 보며 B씨는 자신이 한 아르바이트의 실체를 알 것 같았다.
B씨는 이름을 빌려주고 집 소유주가 된 명의대여자 역할을 한 것이다.
'젊은 집주인'의 실상은 '임대인'과 '임차인'의 뜻도 잘 모르는 상태였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청년은 본인의 이름으로 된 집들이 소득으로 잡히면서 수급비도 끊긴 상황이라고 한다.
황진환 기자·스마트이미지 제공
B씨 등은 늦게나마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 신고했다.
노숙인 등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이른바 바지사장, 즉 명의대여자로 이용되는 사례들이 보고된 가운데 청년들까지 동원되는 사례가 포착됐다. 이들 청년들은 자금 능력이 없는 상태다.
서류상으로는 엄연히 소유주인 명의대여자들은 전세사기 등 문제가 불거지면 책임을 떠안는 '꼬리 자르기'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또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특히 이 청년들이 계약한 집들이 아직 전세계약이 상당기간 남은 상황이어서 피해가 뒤늦게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크다.
'대표'의 서랍 속 많은 이름의 도장이 있었다는 것은 그 규모가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