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픈 더 도어' 장항준 감독. ㈜컨텐츠랩 비보 제공※ 스포일러 주의 햇수로 32년, 대학생 때부터 우정을 쌓아온 연예계 대표 단짝이자 대표 만담 듀오가 소속사 대표와 소속 감독으로 인연을 확장하더니 이제 감독과 제작자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컨텝츠랩 비보의 첫 스크린 도전이 장항준 감독 손에 맡겨진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야심 찬 도전을 함께한 장 감독과 송은이 대표를 만나 '오픈 더 도어'에 관한 가감 없는 오픈 토크를 함께했다. 두 사람은 제작자와 감독으로서도 그야말로 '척하면 척'이었다. [편집자 주]
장항준 감독과 제작자 송은이 컨텐츠랩 비보 대표의 첫 영화는 의외라면 의외고, 예상대로라면 예상대로라 할 수 있는 '심리 스릴러'다. 그것도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오픈 더 도어'는 미국 뉴저지 한인 세탁소 살인 사건 이후 7년, 비밀의 문을 열어버린 한 가족의 숨겨진 진실을 그린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로, 과거 미국 교민 사회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요즘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민자의 삶을 장항준 감독은 스릴러라는 장르에 더해 다소 실험적인 전개 방식으로 그려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장 감독이 이러한 이야기를 그려야만 했던 이유와 이를 가능하게 해준 송은이 대표에 대한 감독의 신뢰를 담아봤다.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컷. ㈜콘텐츠판다·㈜비에이엔터테인먼트·㈜컨텐츠랩 비보 제공 왜 장항준은 이민자의 이야기를 선택했을까
2021년 배우 윤여정이 '최초' 타이틀과 함께 오스카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거머쥐게 한 '미나리'부터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영화이자 역시나 양자경에게 아시아 배우 '최초'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리고 올해 국내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은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공통점은 '이민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는 점이다.
수년 전부터 전 세계 영화계가 관심을 갖는 공통적인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이민자'다. 장항준 감독이 컨텐츠랩 비보와 함께한 첫 영화 '오픈 더 도어' 역시 이민자의 삶과 실제 사건에서 시작한 영화다. 장 감독은 미국 교민 사회의 '특수성'에 주목했고, 이 이야기야말로 지금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라고 봤다.
그는 "한국은 시간이 변하며 가치관도 변화했지만, 80년대 이민 간 사람은 80년대 한국적인 사고에 머물러 있다. (그 시대) 조국의 모델에서 출발한 분들이기 때문"이라며 "미국 사회에 와서 적응하고 뿌리를 내리기까지 엄청난 고난이 있었을 텐데, 그분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 가족의 끈끈함은 지금의 한국 사회와 완전히 다른 운명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극단적인 형태로까지 진전될 수 있는 거 같다"는 이야기다.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컷. ㈜콘텐츠판다·㈜비에이엔터테인먼트·㈜컨텐츠랩 비보 제공장 감독은 영화의 모티프가 된 사건을 대하면서 가족 사이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부딪힐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나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과 그때 미국은 다를 바 없는 것 같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그는 "다만 교민 사회라는 특수성에서는 더욱 도드라지게 보일 수밖에 없다. 폐쇄적이니까. 그렇기에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바탕에서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장 감독은 '문'에 관한 생각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그는 "우리가 살면서 최소한 문을 1만 번 이상씩은 여닫을 것이고, 그 문의 숫자도 엄청날 것이다. 어딜 가든 많은 문을 직면하게 된다"며 "이 문들은 간혹 우리 인생의 선택의 문이기도 하다"고 했다.
"어떤 순간에는 선택 자체가 내 인생을 바꾸기도 해요. 영화 속 문은 때론 열지 말았어야 하는 문이기도 하고 열 수밖에 없었던 문이기도 하죠. 그런 욕망의 문을 열었을 때 파멸의 길로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컷. ㈜콘텐츠판다·㈜비에이엔터테인먼트·㈜컨텐츠랩 비보 제공'오픈 더 도어'를 보다 특별하게 만든 연출
'오픈 더 도어'는 욕망의 문을 다루는 방식을 조금은 독특하게 설계했다. 문, 전화, 제안, 도망, 기타라는 각각의 소제목을 가진 다섯 장으로 구성해 챕터에 따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플래시백 구조를 취한다. 그렇기에 '오픈 더 도어' 첫 번째 챕터는 일반적인 영화의 '절정'(작품에서 사건의 발전이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단계)에 해당한다.
장 감독은 "왜 우리는 욕망했나, 그들은 어떤 관계였나,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됐나 등 과정이 훨씬 중요했기에 상업적으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상황은 배제했다. 그래야 관객이 '왜'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역순으로 간 것 역시 가족들이 원래 어떤 사람들이었는지가 중요하다고 봤고, 그게 비극성을 높이는 데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오픈 더 도어' 스틸컷. ㈜콘텐츠판다·㈜비에이엔터테인먼트·㈜컨텐츠랩 비보 제공영화의 중요한 소재이자 은유인 '문' 중에서도 마지막 챕터의 문만이 유일하게 열려 있다. 이 역시 장 감독의 안배다. 그는 "그 문은 선택이 아니다. 그 시절 행복했던 순간은 문이 열려 있음에도 갈 수 없다"며 "영화의 모든 기준은 거기로 향했고, 그게 안타까울수록 조금 더 비극성이나 인물, 상황에 대해 관객이 오래 기억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이야기했다.
카메라 워크 역시 역동성을 줄이고 마치 영화 속 인물들을 엿보는 듯한 느낌에 주안점을 뒀다. 챕터와 챕터 사이를 매개하는 신도 넣지 않고, 어떤 챕터에서는 연극적이라는 분위기마저 나게 연출했다. 그렇기에 배우들은 '오픈 더 도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장 감독은 연극 경험이 많은 이순원, 서영주, 김수진, 강애심을 캐스팅했다.
그는 "배우들과 그분들이 어떤 심경이었을지 이야기도 굉장히 많이 하고 같이 고민했다"며 "배우들에게 이건 표현하는 게 아니라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받아줘야 한다고 했다. 대사는 좀 틀려도 상관없으니, 상대 이야기를 듣고 반응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롱테이크로 담아낸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들을 순식간에 몰입시키며 영화로 이끈다.
영화 '오픈 더 도어' 장항준 감독. ㈜컨텐츠랩 비보 제공영화감독 장항준의 '꿈'
장항준 감독은 '오픈 더 도어'를 연출하면서 무엇보다도 상업 장르 영화의 공식을 벗어나고 싶었다.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1996) 각본으로 시작해 영화 '라이터를 켜라'(2002) 연출로 첫 데뷔한 장 감독은 '불어라 봄바람'(2003) '기억의 밤'(2017) '리바운드'(2023)의 연출과 '끝까지 간다'(2013)의 시나리오 각색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길을 구축해 왔다. 이번 작품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또 다른 길을 가고자 한 결과물이다.
그는 "그동안 직관적인 이야기는 많이 해본 거 같다. 그런데 문을 나서는 순간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이야기는 많이 안 해본 거 같다"며 "그것이야말로 나이 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조금 더 남들이 잘하지 않는 방식, 하지 않는 장르를 같이 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점에 있어서는 관객의 심판을 기다리긴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항상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대로 부모님 말씀도 안 듣고 살아서 결국 그게 오늘날까지 내려온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이러한 점에서 송은이 대표는 최고의 제작자이자 최고의 파트너였다. 그는 "회사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너가 어떤 사람이냐,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말단 사원까지도 회사에 동화되기 쉽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게 콘텐츠 제작과 매니지먼트에도 똑같은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나와 작업할 때도 회사의 선한 영향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기분 좋은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영화 '오픈 더 도어' 제작사 컨텐츠랩 비보 송은이 대표와 장항준 감독. ㈜컨텐츠랩 비보 제공
유명한 광고 카피 중 "남들이 모두 예스(yes)라고 할 때 노(no)하겠다"라는 말이 있다. 장항준 감독이 바로 '노'를 외치는 사람이다. 주류의 길이 아닌 비주류의 길을 선택해 온 까닭이다. 이를 두고 장 감독은 "난 체질적으로 유행을 싫어한다. 반골 기질이 있다고 해야 하나. 무의식중에 주류와는 다른 길을 선택한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영화는 시대의 반영인데, 재미와 자극을 위해 이율배반적인 메시지를 던지지 말자고 여기고 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장항준 감독은 오늘도 자신만의 꿈을 꾸며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간다.
"대학 때 특강 오셔서 한 배창호 감독님의 말씀이 잊히지 않아요. '영화는 낮에도 꿀 수 있는 꿈'이라고 하셨죠. 어떤 형태의 꿈이든, 그 꿈을 계속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관객이 원할 때까지. 투자자가 허용할 때까지."(웃음)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