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글 싣는 순서 |
①'노인 지옥' 죽거나 죽이거나…흉기로 변한 빈곤 ②평균 퇴직 49.4세…'죽음의 계곡' 떠밀리는 나라 ③"안녕하세요, 신입입니다. 71살이고요" ④'月60만원' 쥔다는데…'연금'보다 '연장' 중한 까닭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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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올해 고령사회로 진입했고 불과 8년 후인 2026년에는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연금수급개시연령은 단계적으로 상향되어 2033년에는 65세까지 늦춰질 예정이어서 고령자의 급격한 소득단절이 우려됩니다. 따라서 초고령사회에 대비하여 고용이 연장될 수 있도록 법·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018년 펴낸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의 입법영향 분석' 보고서가 던진 과제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사이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 진입은 1년 더 당겨졌고(2025년 예상), 내년 '노인 1천만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月60만' 쥐고 생계유지?…자발적 일하는 노인들
통계청에 따르면,
공적·사적 연금을 통틀어 2021년 기준으로 1개 이상의 연금을 받는 노인은 776만 8천 명으로 65세 이상 인구의 90.1%에 달한다. 수급률이 매해 오른 것은 고무적이나,
이들이 손에 쥐는 돈은 월평균 60만원 정도다.
연금을 '용돈'으로 치부해도 되는 일부 고소득층이 아니라면
노후 최소 생활비(124만 3천원, 국민연금연구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에 만족할 이는 없다.
실제로 현재 연금을 받고 있는 고령층 50%(390만여 명)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 인구비율)이 40.4%로 압도적 1위인 한국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연금수급 노인 3명 중 2명 이상(61.6%·479만여 명)은 일자리를 원하고 있는데, 생계 유지(31.9%·248만여 명)가 최대 목적이다.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은 지난 7일 연금연구회 세미나에서 "이제 이 노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살 길은 '배·벌'이다. 배우며 벌며, 살아야 한단 것"이라며 "하루에 800~900명씩 쏟아져 나오는 은퇴자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 건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기특하게도
우리나라의 노년층은 (자발적으로) '일하겠다'고 한다. (그럼) 일할 자리를 만들어주면 된다"며 "정부가 언제까지 노년일자리의 최대 고용주 노릇을 할 텐가"라고 말했다.
경사노위 김덕호 상임위원의 발제자료 중 일부. 연금연구회 제공주 회장은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익활동 사업 일자리를 들어
"(월) 27만원짜리 일을 지금도 해야 하나"라며
"거기에 줄 서는 우리 노년층을 볼 때 정말 눈물 난다"고 하소연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흔한 시대의 60대는 과거의 60대와 분명 다르다. 늘어난 기대여명과 건강수준에 더해 윗세대보다 경제적 여유도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 출생)가 2020년대 본격적으로 노인기에 접어들면서, 노동수요는 더 급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근로자가 일정 연령에 이르면 노·사 양측의 의사와 관계없이 직장에서 물러나도록 정한 나이. '정년(停年) 60세'가 시행된 지 7년 만에
정년연장 논의가 재점화된 배경이다. 도화선은 윤석열 대통령이 '3대 개혁'으로 칭한 연금개혁이다.
'소득공백' 우려에 미뤘지만…연금 수급개시연령↑ 불가피
'합계출산율 0.78명'의 초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는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보험료를 낼 생산가능인구는 줄고 급여 수급인구만 늘어나니, 청년세대의 부양부담 증가는 정해진 미래다.
올초 5차 재정추계시 연금 재정수지 적자 전환(2042년→2041년 예상) 및 기금고갈 시점(2057년→2055년 예상)이 더 빨라진 것을 확인한 정부는
'수급개시 연령 상향'을 개혁카드로 뽑아들었다.
올해 기준 63세에서 2033년까지 65세 상향이 예정된 가운데 추가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달말 발표된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의 밑그림이 된 연금재정계산위원회 보고서는 수급개시연령을 66세·67세·68세로 각각 늦추는 안(案)을 제시한 바 있다.
현행 타임라인대로 65세에 도달한 이후 추가로 5년마다 1살씩 늦춰 2048년에는 68세부터 연금을 받게 하자는 제안이다. 보험료 인상과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만으로는 재정안정화를 달성할 수 없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이같은 시나리오들이 정부안으로 담기진 않았다. 정년은 60세 그대로 두면서 수급연령만 높이기엔
'소득 크레바스(절벽)'에 대한 우려가 너무 큰 탓이다.
정부는 "수급개시 연령 추가 조정은 은퇴 후 소득공백 확대를 감안해 고령자 계속고용 여건이 성숙된 이후 논의하겠다"고 결정을 유보했다.
수급개시연령 조정은 전 국민의 수급액을 일률적으로 깎는 결과를 낳기에, 계속고용 확대를 통한 고령층의 소득 확보가 먼저라는 것이다.
계속고용이란 재고용, 정년연장, 정년폐지 등의 방법으로 정년이 된 노동자의 고용상태를 유지하거나 새로운 조건으로 고용계약을 맺는 것을 이른다.
통계청 조사상 55~64세 연령층이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을 떠날 때 나이는 평균 49.4세(평균 근속기간 15년 8개월)인 반면, 계속 근로를 희망하는 고령층이 정한 마지노선은 평균 73세였다. 실제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평균 연령도 10년 전부터 OECD에서 가장 높다.
정부는 65세 이상 고용률이 34.1%(2020년 기준)로 OECD 평균(14.7%)에 비해 높은 수준임을 내세우지만,
대부분은 임시·일용직(36.4%)을 전전하는 실정이다.
결국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노인의 경제활동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노·정 '연금수급-퇴직연령 맞추기' 공감에도…해법은 딴판
정부와 노동계는
실질적으로 근로현장을 떠나는 나이와 연금 수급개시 연령이 일치해야 된다는 전제에만 동의하고 있다.
전자는 재고용 등을 통해 계속고용을 구현해야 한다고 보지만, 후자는 65세로의 정년 연장을 주장한다.
당초 정부는 연내 계속고용 법제화에 대한 로드맵을 내놓겠다는 계획이었다. 지난 7월 말에야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초고령 계속고용 연구회'를 꾸렸는데, 정권의 '노조 탄압'을 이유로 노동계가 불참을 선언하면서 전문가 위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계속고용연구회는
정년이란 개념이 적용되는 직장은 대기업 등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해 6월 기준 전체 사업장 중 직원 수가 300명 이상인 기업은 94.3%(2991곳 중 2820곳)가 정년제를 도입했지만 300명 미만인 기업은 21.9%(156만여 곳 중 34만여 곳)만이 시행 중이란 게 근거다. 노조의 유무(有無)도 이를 가르는 기준 중 하나다.
'초고령 계속고용 연구회'의 좌장을 맡고 있는 경사노위 김덕호 상임위원이 지난 7일 연금연구회 세미나에서 '계속고용 현안과 쟁점'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계속고용연구회 좌장인 경사노위 김덕호 상임위원은
"정규직이면서 노조가 있는 대기업인 곳은 7.2% 정도다. (이곳들은) 그렇지 않은 쪽과는 근로조건과 사회보험 가입률 등에 있어서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년을 연장하게 되면
10% 안팎의 사람들만 환호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규모 기업의 비정규직이 절대다수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년이 존재하는 직장은 대개 20·30대가 원하는 일터인 만큼
근로연한을 늘리는 것은 청년채용 감소로 번질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최근 비슷한 취지의 보고서를 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윤석명 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OECD 중 노동 이중구조가 가장 심각하다 보니 한쪽에선 임금도 오르고 복지 혜택도 좋아지는데, 다른 쪽에서는 계속 최저임금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당장) 정년이 오르면 사회통합이 아닌 사회 갈등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근속연수에 비례해 임금이 오르는
연공서열식 임금체계 역시 장벽으로 꼽힌다. 김 상임위원은 "한국은 은퇴 시기 즈음 (생산성과 무관하게) 가장 많은 임금을 받는다"며 이같은 구조가 '취업 빙하기'에 놓인 청년들이 보기엔 전혀 공정하거나 합리적이지 않다고 짚었다.
정부가
가장 가까운 모델로 참고 중인 나라는 일본이다. 1994년 일찌감치 60세 정년을 시행한 일본 정부는 2013년 65세 이상 고용을 의무화했다. 사측에는 △정년 폐지 △65세로 정년 연장 △계속고용제 도입 등 3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2021년 4월부터는 65~70세에 대해서도 고용을 위한 노력 의무를 부과했다.
'고용에 의한 조치'로는 70세로 정년 연장, 정년 폐지, 70세까지 계속고용이 적용되고 있다. 그 외 업무위탁 계약 같은 창업지원 등도 이뤄진다.
김 위원은 "'계속고용'이라 하면, 정년 연장인 줄 아는데 일본은 80% 이상 재고용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연구위원도 상한 연령에 근접할수록 임금을 삭감하되 정부 보조 등으로 월급의 약 70%는 보장하는 '퇴직 후 재고용'을 제언했다.
경사노위 김덕호 상임위원의 발제자료 중 일부. 연금연구회 제공'5만' 입법청원 달성 勞 "65세 정년상향으로 적정소득 보장"
반면 노동계는 연금으로 노후보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유일한 답은 정년연장이라고 말한다.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지난 8월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과 연계한 정년연장을 위한 고령자고용법 등 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을 시작하며 "소득공백으로 인한 노후불안 해소를 위해
최소 2033년까지 법정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또 주된 일자리 퇴직 후 질 낮은 일자리로의 이동 관행이 60대 비정규 노동을 확산시키고 있다며 "정년연장을 통해
퇴직을 늦춰 적정한 소득을 유지토록 하는 것이 인구구조 변화에 대비하는 최선의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은 국회 상임위원회 회부 기준인 '5만명'의 동의를 얻어 환경노동위원회로 넘어간 상태다.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사무실 안에 걸려있는 '법정 정년연장 5만 국민동의 청원' 관련 포스터. 이은지 기자향후 정년연장 공론화에 활용하기 위한 자료로 한국노총 단위노조 사업장을 전수조사한 황선자 한국노총중앙연구원 부원장은 "(화물·운수 등) 인력이 부족한 곳에선 계속 (고용을) 연장하는 등 업종별로 차이는 있다"면서도 "이와 같은
재고용은 근무시간이나 책임은 동일함에도 임금은 대폭 깎이는 등 매우 열악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도 60세를 넘겨 일하는 분들을 보면, (이들의 근로를) 장려한다고는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로 보는 '낙인효과'도 있다. 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라며 65세로 정년이 연장되면 이같은
인식 개선과 함께 60세 전후 고령층 재취업 확대 등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도 "재고용은 법적 보호장치 등이 없기 때문에 임금 등 노동조건이 너무 현격하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급적 정년연장 방식으로 가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경사노위에 참여할 계획은 아직 없다
고 했다. 이 대변인은 "노·사·정이 합의를 하면 입법에 더 유리하다고들 하고, 물론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결정한 거라면 더 (법제화가) 쉽기는 할 것"이라면서도 "지금 경사노위에서 논의하는 안은 재고용으로 정해져 있다. 굳이 (현 시점에) 들어가 요구 수준을 낮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최근 국민의 약 63%가 정년연장에 동의한다는 설문 결과를 발표하기도 한 한국노총은
내년 총선 전 입법을 목표로 국회를 최대한 압박할 방침이다.
CBS노컷뉴스·알앤써치 제공CBS노컷뉴스가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달 25~27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12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26.4%는 '정년연장 이후 기대되는 효과 및 부작용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관련 논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봤다.
'경사노위 등 사회적 논의기구 내 합의'(18.5%)와
'특수고용노동자·프리랜서 등 정년이 없는 직종에 대한 보호대책'(18.2%)도 중요한 포인트로 꼽혔다.
같은 달 10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4.6%는 정년 연장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