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노인 지옥' 죽거나 죽이거나…흉기로 변한 빈곤 (계속) |
2년 뒤인 2025년 우리 사회는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통계청의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025년 20.3%, 2060년에는 43.9%로 절반 가까이 이를 예정입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우리나라 은퇴연령층의 노인 빈곤율은 43.2%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이스라엘(20.6%)의 두 배 수준이죠.
80세가 넘는 기대수명, 빠른 은퇴까지. 60세까지 고용된 경우 적게는 5년부터 많게는 십수년까지 소득공백 속에서 버텨야 합니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고 밥벌이는 곧 끊기기에 정년연장은 남의 일이지만 내 일이기도 합니다.
노동계도 들썩입니다.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가 올해 임단협에서 현행 60세 정년을 64세로 연장하자는 핵심 요구안을 사측에 제시했고, 한국노총은 정년이 연장되지 않으면 퇴직 후 최대 5년간 소득 없이 지내야 한다며 법정 정년 연장을 위한 법률 개정 국민동의 청원을 시작했습니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정년연장에 찬성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CBS노컷뉴스가 여론조사 업체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달 18일부터 3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년연장에 64.6%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CBS노컷뉴스가 여론조사 업체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 18일부터 3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이 정년연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앤써치 제공 저출산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노인빈곤문제 등을 정년연장 찬성 이유로 꼽았습니다. 반면 나머지 25.6%는 청년일자리 감소 우려와 기업고용부담증가, 장기근로에 대한 부담을 지적했습니다.
이 숫자들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년연장 없는 혹은 노인들을 위한 지속적인 일자리가 없이 국민연금 수급일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숫자들이 말하는, 나와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상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나와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상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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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너무 많았고 대부분 가난했다.
작은 출판사에서 그나마 정년까지 다닐 수 있었다. 은퇴하던 날, 직원들이 탁상 시계와 펜을 선물했다. 석별의 정을 담은 노래도 불러주었다.
회사에 재계약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미 신청자가 너무 많다"는 게 이유였다. 노인일자리 참여사업에 이력서를 들고 구청이며 노인인센터를 돌아다녔다. 노인을 채용하는 기업들이 있었다. 노인 친화 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고 했다.
작은 회사지만 나를 받아준다니.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다. 하지만 노인 '친화'라는 뜻이 노인 '고문'이란 걸 알기까지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4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노인 탑승금지였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사원증을 태그 후 숫자를 누를 수 있었는데 내가 가진 출입증으로는 엘리베이터 태그가 되지 않았다.
4층 사무실까지 헉헉대며 올라가니 내 책상은 정수기 앞에 놓여 있었다. 우두커니 책상에 앉아있으면 옆에서 졸졸졸 물 따르는 소리와 "잘 버티네" 킥킥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계약은 1년만에 끝이 났다. 4층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보다 물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퇴사한 하루만큼은 아주 깊고 편하게 잠이 들었다.
정수기 자리 회사에서 나온 뒤 나는 화가 많아졌다. 조그만 일에도 나를 무시한다는 기분이 들면 불같이 화를 냈다.
노인 일자리 인사담당자는 이런 내 상태를 금방 알아챘다.
"고분고분하고 일에 목 매는 어르신은 쌔고 쌨어요."
직원한테 찍히자 취업은 어려워졌다. 결국 구청에 생활지원금을 신청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부족한 생활비를 채우려 아내와 함께 손수레를 끌고 무작정 다니기 시작했다. 동네 마트 근처는 손수레를 끌며 배회하는 노인들로 북적였다. 박스를 찾아다니는 좀비 꼴이었다.
운 좋게 옆 동네에서 박스를 발견했다. 서둘러 수레에 담는데 저 멀리서 리어카가 다가왔다. 입에 담지 못할 욕과 함께 이 구역은 자기 구역이며, 폐지도 자신 거라고 주장했다.
아내와 나, 그리고 그 남자. 2대 1이었지만 나는 박스를 내려놓았다. 우리는 작은 손수레였지만 그는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크고 더러운 리어카는 그가 이 구역의 폐지 '담당자'라는 걸 말 하지 않고도 말하고 있었다.
집에서만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지하철을 타고 바람을 쐬러 나가기도 했지만 아내가 몸이 안 좋아지면서 외출도 포기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으로 갈 수 있는 병원도 한정돼 있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시립병원은 예전에 소아과 '오픈런'때처럼 가난하고 아픈 노인들의 '오픈런'으로 대기가 길었다.
아내는 죽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나 역시 그랬다. 동네에 사는 내 또래 노인들은 대부분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얼굴로 집 앞 벤치나 놀이터 근처를 서성이곤 했다.
아내의 병증이 더 깊어졌다. 진통제 없이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약값으로 수급비의 절반 가량이 들었다.
아내가 불쌍하고도 미웠다. 매일같이 죽어야지 하면서도 죽지 못하고 눈을 뜨는 하루는 지옥 그 자체였다. 이제는 결심할 때였다.
사실 노인 부부가 함께 세상을 뜨는 건 이젠 기삿거리도 되지 않는다. 나도 이 오래된 '트렌드'에 동참할 것이다.
잠든 아내의 얼굴을 베개로 눌렀다. 앙상한 팔이 허공을 몇번 휘휘 졌더니 금세 툭 하고 떨어졌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부엌에서 가장 날카로운 걸 골라 나왔다. 맨정신에는 하지 못할 것 같아 소주를 입에 부었다.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성실의 대가는 아내를 살해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으로 끝나야 하는 건가. 무언가 내 안의 분노 버튼을 눌렀다. 이대로 나만 죽을 순 없었다.
손잡이를 고쳐잡았다. 몇 분 뒤 방향이 바뀐 흉기는 내 손목이 아닌, 거리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청년, 퇴근하는 직장인, 맛집 앞에서 줄 서던 사람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오늘 저녁 8시 30분쯤 서울 00구 00동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현장에서 붙잡힌 피의자는 62세 최모씨로, 검거 당시 음주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최씨 주거지에서 사망한 아내를 발견해 최씨가 생활고에 못 이겨 아내를 살해한 뒤 흉기 난동을 벌인 것으로 보고 정확한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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