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배우 신구, 박정자, 박근형, 김학철, 김리안(왼쪽부터). 연합뉴스배우 신구(87), 박근형(83), 박정자(81), 김학철(63) 등 연기경력 228년에 달하는 배우들이 뭉쳤다.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2월 19일부터 내년 2월 18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대표작이다. 에스트라공(고고)와 블라디미르(디디)라는 두 방랑자가 실체 없는 인물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야기다. 1953년 파리에서 초연했고 국내에서는 임영웅(극단 산울림 대표)의 연출로 1969년 처음 공연한 이후 50년간 1500회 무대에 오른 스테디셀러 작품이다.
새 프로덕션을 이끄는 오경택 연출은 9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고도를 기다리며' 간담회에서 "임영웅 연출이 50년간 끌고 온 프로덕션을 보면서 연극 연출의 정석을 공부했다"며 "심리적으로 부담되고 잘해야 본전일 수 있지만 연극은 배우의 예술인 만큼 선생님들 믿고 해보겠다"고 말했다.
'고고' 역의 신구와 '디디' 역의 박근형 등은 원캐스트로 두 달간 이어지는 공연을 책임진다.
신구는 "항상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지만 '무대 동선을 따라다닐 수 있을까' '그 많은 대사를 기억할 수 있을까' 싶어 주저했다"며 "하지만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고 전부 토해낸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과욕을 부렸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형은 "출연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지만 기회를 못 잡고 잊어버리다시피 살았는데 운 좋게 얻어걸렸다. 제가 추구해온 연기와 다른 자유분방함을 표현하려 한다"고 했다.
신구와 박근형은 TV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호흡을 맞춘 적 있지만 연극을 함께 하는 건 처음이다. 박근형은 "예능할 때처럼 이번에도 합이 잘 맞는다. 연출이 제시한 부분에 디테일을 맞추며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신구, 박정자, 박근형(왼쪽부터). 연합뉴스'고도를 기다리며'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조리극이다. 신구는 "실체가 없는 대상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고는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채워지지 않지만 희망이 있기 때문에 계속 사는 것"이라고 했다. 박근형은 "디디처럼 우리도 고도를 기다리며 희망을 갖고 살지만 결국 아무 것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학철은 권위적이고 멋 부리기 좋아하는 '포조', 박정자는 포조의 짐꾼이자 노예인 '럭키'를 연기한다. 고도의 심부름꾼인 '소년' 역은 김리안이 출연한다.
여성 배우가 럭키 역을 맡는 건 이례적이다. 박정자는 "작품이 올라간다는 소식을 듣고 손을 번쩍 들고 내가 럭키를 하겠다고 했다. 연극은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인만큼 어떤 역할을 맡을 때 배우의 성별이 중요하지는 않다"며 "이번에 럭키를 연기하면서 기다리던 고도를 만난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