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0일 농경지가 침수됐던 대전 대덕구 용호동. 지난 10월 말 찾은 용호동 농경지의 모습. 김미성 기자지난 9월 20일 갑자기 내린 비에 10개 농가, 15개 필지 약 2ha가 침수됐던 대전 대덕구 용호동.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취재진이 용호동을 찾았을 때도 수해 흔적은 여전한 상태였다.
주민 이씨가 취재진에게 자신의 컨테이너 내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컨테이너 내부는 지난 9월 집중 호우 당시 수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김미성 기자주민 이민우(83)씨의 밭은 물이 들어찬 뒤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팥, 콩, 배추, 고구마 등을 농작하는 이 씨는 "다 썩었어. 고구마가 숨을 못 쉬어서 다 죽은거야"라고 하소연했다.
밭에 있던 컨테이너 일부도 물에 잠겨 내부는 처참했다. TV와 냉장고 등 집기류에는 흙탕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다른 주민들의 농경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황폐화된 농경지에는 돌덩어리와 썩어버린 농작물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나마 타 농작물에 비해 키가 큰 벼는 다른 작물보다는 상황이 나았지만, 지난해에 비해 1/3 수준만 탈곡됐다는 게 주민들 설명이다.
주민들은 이번 사태가 갑자기 내린 비의 영향보다는 용호동과 인접한 군 부대에서 2m 높이의 수문 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인재(人災)'라고 주장한다.
박희서 이장은 "태풍이 왔던 7월에는 호우 특보도 있던 상태라 군에서 수문을 열어놨기 때문에 피해는 없었다"면서도 "이번에는 비도 (상대적으로) 많이 안 오고, 수문을 (완전히) 열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군이) 수문을 제대로 열어 놓지 않았고, 풀, 농기계 배관, 이물질 등이 수문을 막으면서 물이 용호천으로 흐르지 않았다"며 "결국 댐 역할을 한 수문이 옆으로 터졌고, (농경지가 침수되며) 피해를 본 상황"이라고 했다. 수문이 댐 역할을 하자 수문 옆으로 이어진 부대 철조망 역시 모두 쓰러졌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 마을의 수해는 지난 2018년 여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밭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냉장고와 집기류. 김미성 기자하지만 군 부대 측은 "기상 예보에 맞춰 수문을 개방하고 있었지만, 당시 (호우) 특보는 없었고, 기준에 맞춰 개방했다"며 "비가 갑자기 많이 와서 긴박하게 갔지만, 이미 접근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2018년 수해 이후 쇠사슬을 수동으로 잡아당기는 수문에서 전기식 버튼을 누르면 개방되는 것으로 개선했고, 수문 개방 시스템도 더 업그레이드 시키려고 알아보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군에 따르면, 수문 개폐 기준은 시간당 강우량 10㎜ 미만일 경우 수문을 1/3 개방하고, 호우 주의보가 내려지면 절반 개방, 호우 경보인 경우 전부 개방한다.
수해 발생 이후 군 측은 3일 동안 220명의 군 인력을 동원, 벼 세우기와 부유물 제거 작업 등을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CBS 취재 결과, 군의 설명과는 다른 부분이 확인됐다.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대전 지역의 호우 주의보는 오후 3시 40분에 발효됐다. 약 4시간 뒤인 오후 7시 30분에는 주의보가 호우 경보로 격상됐다.
군의 기준대로라면, 이미 이날 오후 3시 40분에 수문이 절반 열렸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호우 특보가 없었다"던 이 부대는 이때까지도 시간당 강우량 10㎜ 미만의 기준에 맞춰 수문을 1/3 정도만 열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군은 이후 오후 4시쯤 다시 확인했을 당시에도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문제가 된 시간은 오후 6시~7시 사이. 이날 오후 7시 28분 기준으로 대덕구 장동 지점의 시간당 최대 강수량은 31.5mm였다. 기상청은 2분 뒤 오후 7시 30분 호우 경보를 발표했다.
수문에 부유물이 끼고, 순간적으로 비가 쏟아지며 바로 옆 농경지가 침수됐을 땐 이미 완전 개방을 하기도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그 결과, 군에서 수문을 완전 개방한 시간은 호우 경보가 내려지고 1시간 30분 뒤인 오후 9시로 확인됐다.
기상청은 군에서 수문을 완전 개방한 오후 9시 호우 경보를 호우 주의보로 변경했고, 오후 10시 호우주의보를 해제했다.
육군 관계자는 "수문 접근로가 범람해 수문으로의 접근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고, 반대편 산으로 어렵게 접근해 수문을 완전 개방했다"면서도 인재(人災)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대덕구청 전경. 대덕구 제공
문제는 또 있다. 대덕구청의 대응 역시 주민들을 더욱 분노케하고 있다. 당일 현장을 찾았던 최충규 대덕구청장은 주민들에게 "군부대에서 수문 관리를 잘못해서 벌어진 일로 다 배상해 드릴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대덕구청 안전총괄과 관계자는 CBS와의 통화에서 "명확하게 자연재해다, 인재다라고 말하기 어렵다"라며 "비가 많이 오긴 했고, 수문이 다 열리지 않아서 피해가 있던 상황도 맞다"고 말했다. 수해 당시 최 구청장이 주민들에게 한 말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게다가 대덕구 측은 군의 수문 개폐 기준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수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군이 제때 수문을 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할 기준이지만, 대덕구 측은 "군에 확인해봐야 할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책을 논의했지, 자연재해인지, 인재인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또 "군사시설이라 군에서 관리를 다 하고 있고, 구청에서는 순찰을 도는 등 예방 활동을 했다"며 "군과 국방부와 피해 보상이 잘 될 수 있도록 방법을 찾고 있다. 군, 소방 연계 비상연락망 구축 등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