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지난달 10일 오전 대회의실에서 수백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의 필로폰 74kg을 국내로 대량 밀반입해 일부 유통한 한국,중국,말레이시아 3개국 국제연합 마약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현직 고위 경찰(경무관)이 일선 경찰서의 마약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타 기관을 최대한 예우", "스스로 침 뱉기" 등의 말로 수사에 사실상 외압을 넣은 사실이 드러났다.
경무관은 행정안전부 인사관리상 고위공무원으로 분류되며, 2023년 7월기준 경찰관 13만 1046명 중 80명, 상위 약 0.06%에 속하는 경찰 계급 중 네 번째 상위 계급이다.
1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5일과 14일 당시 서울경찰청 소속이었던 A경무관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소속 B형사과장과 두 차례 통화했다. B과장의 계급은 경정으로, 경무관보다 두 단계 낮다.
A경무관은 본인의 소속을 밝히면서 B과장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조직원 마약 밀반입 관련 세관 직원들의 연루 의혹' 사건에 대해 얘기했다. A경무관은 서울청으로 발령되기 직전 인천국제공항단장을 지냈다.
특히 두 사람간 첫 통화는 2023년 국정감사를 5일 앞둔 시점에서 이뤄졌다. 당시 말레이시아 조직원들의 마약 밀반입 사건에 세관 직원들이 연루됐다는 사실은 아직 세간에 공개되기 전이다.
A경무관은 "인천 세관장이 아마 관세청장과 여러 번 통화를 한 것 같다. 국감을 앞두고 있어서"라며 "제가 서울청으로 오기 전에 공항경찰단장을 해서, 거기서 나에게 협조 요청이 왔다. 언론 보도 부분에서 관세청장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A경무관은 "국감을 앞두고 있어 기관(세관)의 부담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며 "그래서 내가 '경찰이 타 기관과 관련해, 특히 국감(상황)이고 관세청이나 경찰청이나 정부의 일원이므로 타 기관을 최대한 예우하면서, 부담 없도록. 왜냐하면 스스로 침 뱉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무리하게 안할 것이다'고 했다"고 은연히 수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러면서 "제가 또 영등포경찰서 서장도 했었다"며 "(지인이) B과장이 (사건을) 담당한다고 해서 직접 전화를 해보고, 그 상황에 대해 'B과장이 기관과 충분히 협의를 했으면 됐겠다'고 생각해 인천 세관장에게 '충분히 내부적으로 협의해서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하는 것 같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끝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심지어 A경무관은 B과장의 수사지휘체계에 속한 인물도 아니다. B과장을 비롯한 수사팀은 해당 통화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B과장은 "세관 직원 연루 의혹은 수사팀이 지난 7월부터 단순 투약자, 중국 유통책, 운반책 등을 차례로 검거하면서 첩보를 쌓아 수사에 돌입한 것"이라며 "일면식도 없는 고위 경찰관이 전화해서 '같은 정부 일원', '무리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이야기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경무관은 해당 통화가 부당한 외압이라는 지적에 대해 "오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기관 간 협조 차원에서 언론 브리핑에 세관 직원 관련 내용이 포함되는지 여부만 확인하려 했을 뿐, 수사에 개입할 의도도 여지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A경무관은 "사건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 세관이 국정감사 예상 질의를 준비하기 위해 기관 협조 차원에서 언론 브리핑에 대해 확인을 요청해왔다"며 "B과장이 '서울청과 (브리핑) 협의를 했다'고 말해, 서울청과 협의해서 하면 전반적으로 균형감 있게 하시겠다 싶어 '잘하셨다'라고 하고 끝난 일이 전부"라고 해명했다.
이어 "첫 통화 당시 영등포서가 서울청과 이미 브리핑 관련 협의를 완료한 상태여서 애초 수사에 관여할 수 없는 상태였고, 밀수 등에 관한 사안인 것도 잘 모르던 상황이었다"며 "이후 언론 브리핑이 다 진행된 후 과장에게 전화가 와서 두 번째 통화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아무래도 국감 직전이었기 때문에 브리핑에 대해 (세관에서) 부담을 느낀 것 같았다"며 "사건의 세부 내용 등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인천공항본부세관 측은 CBS노컷뉴스에 A경무관과 통화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당시 언론 브리핑 내용에 대해 질문했고, 마약 관련 브리핑임을 확인한 뒤 다른 내용 없이 통화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브리핑에서 삭제된 '세관'…서울청 "신중 수사 위한 기본적 지휘"
A경무관과 B과장 첫 통화 후 지난 10일 영등포서에서는 '말레이시아 밀반입 필로폰 대량 국내 유통시킨 국제연합 범죄조직 검거' 브리핑이 열렸다.
당시 취재진에 배포된 보도자료에는 92만 6천 명이 동시투약할 수 있는 시가 834억 원 상당의 필로폰 27.8kg을 수거하고, 말레이시아 조직원 2명을 포함해 국내외 마약사범 26명을 검거했다고 적혔다. 하지만 공식 브리핑과 보도자료에는 세관과 관련한 내용은 등장하지 않았다.
반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확인한, 영등포서에서 최초 작성했던 보도자료 초안에는 세관 관련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다.
최초 작성된 보도자료에는 말레이시아 조직원들이 필로폰을 대량으로 국내에 들여오는 수법에 대해 '조직원 신체 부착 42kg 및 화물편 32kg, 총 74kg 국내 밀반입된 것을 확인하였다'고 적혀있지만, 최종 자료에는 삭제됐다.
또 향후 수사계획과 관련해 '필로폰 국내 반입 시 입국심사 및 통관 과정에서 문제점은 없었는지 살펴보는 한편'이라고 명시됐던 문구도 서울청 검토 과정에서 삭제됐다. '조직원 신체 부착하여 반입한 필로폰 42kg'이란 표현도 최종 보도자료에는 '인편으로 반입된 필로폰 42kg'으로 수정됐다.
모두 인천공항 세관과 연관된 내용인데, 최종 보도자료에서 삭제되거나 수정된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해 서울청은 세관 관련 내용을 보도자료에서 제외하거나 표현을 바꾼 것은 수사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기본적이고 통상적인 수사지휘'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서울청 관계자는 "향후 수사가 세관으로 향할 것이라는 점을 보도자료에 담는 것이 오히려 부적절하다. 그러면 세관에서 이미 수사에 대한 대비를 할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심지어 세관 직원 연루 의혹에 대한 수사는 초기 단계이기도 해, 신중하고 은밀한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사의 방향성이 그쪽(세관)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게 적절한 수사가 아니"라며 "최종 보도자료는 최종적으로 영등포서와 서울청이 협의해 결정한 것인데, 이제와서 왜 부당한 지시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