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2024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통해 기존 사업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래먹거리 발굴을 본격화한 '투트랙' 전략을 구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종희·경계현 '투톱' 유임…부담 줄이고 R&D와 시너지
2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날 스마트폰과 가전 분야를 총괄하는 한종희 부회장과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경계현 사장의 '투톱' 체제를 유지하는 인사를 발표했다.
역대 최악 수준의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인적 쇄신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삼성전자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지정학적 리스크 등 불확실한 경영 환경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경영 안정'을 선택했다. 부당합병과 회계부정 혐의를 받는 이재용 회장의 1심 선고가 내년 1월에 나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표면적으로는 투톱이 유임됐지만, 구체적으로는 사업 전문성을 강화했다.
삼성전자 경계현·한종희. 연합뉴스 한종희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DX(디바이스경험)부문장으로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과 생활가전사업부장을 겸임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TV 전문가이지만 스마트폰과 가전 분야를 총괄하며 1인 3역을 맡았다.
하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DX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용석우 부사장이 사업부장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한 부회장의 부담을 줄였다. 한 부회장은 정체된 생활가전사업부 실적 개선에 전력투구할 수 있게 됐다.
경계현 사장은 SAIT(옛 종합기술원)원장을 겸임한다. SAIT는 삼성그룹의 신기술 R&D(연구개발) 조직으로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미래기획단 신설…힘의 분산 통한 '쇄신'
삼성전자는 또 미래의 산업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신사업 발굴을 위해 부회장급 전담 조직인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했다.
단장은 삼성SDI 이사회 의장인 전영현 부회장으로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을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풍부한 경영 노하우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바탕으로 삼성의 10년 후 패러다임을 전환할 미래먹거리 발굴을 주도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2017년 해체된 미래전략실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는다. 삼성 안팎에서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꾸준히 나오는 시점에 탄생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의 외부감시 기구 수장인 준법감시위원회 이찬희 위원장도 효율성과 통일성을 위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미래사업기획단의 역할이 신사업추진단과 같다고 선을 그었다. 2006년 신사업추진팀으로 탄생한 신사업추진단이 삼성의 '바이오' 사업을 발굴한 것처럼, 미래사업기획단은 향후 로봇과 AI(인공지능) 등 새로운 분야에서 삼성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사업을 찾는 게 목적이란 설명이다.
다만 미래사업기획단이 지난달 회장 취임 1년을 맞은 이재용 회장의 '투트랙 전략'에서 핵심이 될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한종희·경계현 투톱' 체제를 유임하면서 미래먹거리 사업 발굴을 위한 '별도의 조직을 신설'했다. 즉 표면적으로는 '업무 분담'이지만, 기존 '힘의 분산'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환기해 쇄신을 추구했다는 해석이다.
1970년생 사장 첫 등장…세대교체 빨라지나
이번 인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용석우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부사업부장(부사장)의 사장 승진이다. 용 사장은 1970년생 TV 전문가로 삼성전자 사장단에서 첫 번째 1970년생 사장이다.
기존 삼성전자 사장단의 가장 젊은 사장은 지난해 승진한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장으로 1968년생이다. 삼성 전체 계열사에서도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을 제외하면 1970년대생 사장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이는 이재용 회장이 젊은 인재를 전면에 내세운 '세대교체의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조만간 진행할 부사장 등 임원인사에서 그 속도를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 인사가 2025년 큰 폭의 인사를 앞둔 '징검다리 인사'라는 해석도 나온다.
2025년 3월 △경계현 대표이사 △노태문 MX사업부장 △박학규 경영지원실장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등 4명의 사내이사 임기가 끝난다. 따라서 내년 말 인사가 대규모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CXO연구소 오일선 소장은 "2024년까지 현재 이사회 체제로 가고, 2025년 인사에서 대폭으로 물갈이하기 위한 징검다리 유형의 인사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1970년생 사장 탄생도 1960년생에게 자연스럽게 퇴장해달라는 암묵적인 메시지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