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학기, 배우 배해선, 장현성, 설경구, 방은진, 작곡가 김형석, 유리상자의 박승화, 가수 루카, 크라잉넛의 한경록(왼쪽부터)이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열린 학전 어게인(AGAIN) 프로젝트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창립 33주년인 내년 3월 폐관을 앞둔 학전 소극장의 정신과 DNA를 이어나가기 위한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가 시작한다.
학전 출신 문화예술인들은 5일 서울 강서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KOMACA홀에서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가수 박학기, 박승화(유리상자), 한경록(크라잉넛), 루카(여행스케치), 작곡가 김형석, 작사가 김이나, 배우 설경구, 배해선, 장현성, 감독 방은진이 참석했다.
'아침 이슬' '상록수'의 김민기가 1991년 3월 15일 개관한 학전은 '소극장 공연의 메카'로 불리며 대학로를 지탱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김민기의 건강 문제가 겹쳐 폐관을 결정했다.
학전과 인연을 맺은 배우·가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프로젝트에 동참할 뜻을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박학기(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는 이날 간담회에서 "학전은 첫 발을 내딛게 해준 꿈의 장소였다. 이곳을 통해 우리는 가수와 배우로 뿌리내리고 성장했다"며 "김민기는 바위처럼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형님이) 나이도 먹고 힘든 일을 혼자 감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민기와 학전에 진 마음의 빚을 갚고 싶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가수·배우가 마음을 모은 프로젝트가 없었다고 한다. 김민기라는 존재의 힘을 느꼈다"고 했다.
학전은 김광석, 동물원, 윤도현, 크라잉넛, 유리상자 등 가수들이 노래하고,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린 설경구, 조승우, 황정민, 장현성, 김윤석 등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줬다. 학전의 대표작인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4천회 이상 공연하며 7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특히 김민기는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우리는 삼총사' 등을 제작하며 아동극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설경구는 "배우로서 출발점이 학전이다. 포스터를 붙이다가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초연에 출연했다. 노래를 잘 못했지만 저를 내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김형석은 "서정성을 잃지 않는 김민기의 음악 덕분에 위로받았다. 이번엔 형님이 위로받을 차례"라고 했다. 박학기는 "학전에서 뻗어나간 공연 문화가 BTS, 블랙핑크 등 K팝의 뿌리가 됐다"고 했다.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는 내년 2월 28일부터 3월 14일까지 이어진다. 가수와 배우가 함께 꾸미는 무대, 김광석 다시 부르기, 김민기 트리뷰트 등을 계획하고 있다. 박학기는 "학전 공연장이 180석 정도 된다. 전석 매진되어도 수익금은 많지 않겠지만 모은 돈은 모두 재정상 어려움에 처한 학전의 새 출발을 위해 쓰겠다. 크라우드 펀딩, 굿즈 판매 등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전 공연장 앞 김광석 노래비. 연합뉴스 이들은 학전의 정신과 DNA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박학기는 "학전이라는 이름만 남아 있는 건 의미가 없다. 학전의 정신과 DNA가 유지돼야 한다"며 "학전 공연장 이관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방은진은 "폐관 시기는 김민기가 존재하지 않는 학전이 어떻게 흘러갈지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한 것 같다"며 "(김민기가) 건물이 바뀌더라도 학전 앞뜰 벽에 새긴 김광석 부조는 남겨두길 원한다"고 했다.
학전의 공연은 계속된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12월 31일까지), 제2회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2024년 1월 6일), 아동극 '고추장 떡볶이'(2월)가 관객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