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대법원이 연장근로시간 계산법에 대해 기존 해석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리면서 연장근로를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근로기준법 입법 취지를 무시한 판결이라는 비판도 나오는데요.
정말 법 테두리 안에서 노동자들의 과로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판은 없는 것일까요? 이 내용 취재한 사회부 양형욱 기자에게 자세한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양 기자 어서오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대법원이 해석한 연장근로시간 계산법, 어떤 겁니까?
[기자]
노동시간을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살펴보면 노동자는 1주 5일 동안 40시간 넘게 일할 수 없고, 하루 근로시간은 8시간을 넘길 수 없습니다.
다만 노사 합의를 거쳐 1주 최대 12시간까지 더 일할 수는 있다, 이렇게 40 더하기 12시간으로 흔히 말하는 주52시간제인 거죠.
그런데 대법원은 노동자가 일주일 간 일한 시간을 모두 더한 다음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뺀 값으로 연장근로시간을 계산하라고 해석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일주일 동안 48시간을 일했다면 하루에 얼마나 몰아서 일했든 상관없이 연장근로시간은 8시간이니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단 겁니다.
연합뉴스[앵커]
이게 기존 해석과 다르다는 건데,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법원이나 정부에서 연장근로시간을 어떻게 계산했습니까?
[기자]
지금까지 정부는 하루에 8시간을 넘겨 일하면 그때부터 연장근로라고 보고, 일주일 동안 추가로 일한 시간을 더해서 계산했습니다.
제가 월요일에 10시간을, 수요일에 10시간을 일했다면 연장근로시간은 각각 2시간씩 총 4시간인 겁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 싶으실 텐데요.
하루 단위로 계산하면 예를 들어 단 하루라도 임의로 밤샘 근무를 시킨 경우 근로기준법을 어겼다고 보고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 단위로 연장근로시간을 계산하면 하루에 얼마나 일하든 일주일의 총량만 맞추면 되니까 주52시간제 안에서 이틀 연속 밤샘 근무까지도 허용됩니다.
[엥커]
주52시간제 논란 당시에도 장시간 노동이 필요하다며 온갖 복잡한 유연근무제를 어떻게 도입할 것이냐 논란이었죠. 그런데 대법원 판결대로라면 당장 사업주가 이런 유연근무제를 고민할 것 없이 바로 노동자들에게 밤샘근무를 지시해도 되는 겁니까?
[기자]
이론상 가능합니다. 대법원 계산법대로면, 노동자는 하루 최대 21시간 30분까지 일할 수 있습니다.
현행법상 24시간 일을 할 때 휴게시간을 2시간 30분씩 부여하도록 했거든요.
이렇게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 연속으로 날밤 새워 일하면 총 근로시간은 43시간이니까 남은 요일 동안 9시간 이내로만 일하면 된단 겁니다.
[앵커]
그럼 정말 사업주 마음대로 잠도 못자고 일하도록 시킬 수 있으니 노동자들의 건강이 큰 걱정인데요. 노동자들의 과로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없나요?
[기자]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행법에는 안전장치가 없습니다.
그동안 정말 긴급히 장시간 노동이 불가피한 경우에 대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선택적 근로시간제 같은 제도적 장치를 뒀는데요.
이 제도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예외적인 상황이고, 그만큼 노동자 과로 문제가 우려되니까 '11시간 이상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등 안전장치도 제도 안에 따로 뒀습니다.
그런데 정작 유연근무제도 아닌 일반적인 주40시간 기본 근무형태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밤샘근무가 허용되는 모순이 발생한 겁니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하루 근로시간 상한선을 두고 11시간 '연속' 휴식제를 도입하는 등 입법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합니다.
[인서트]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입니다.
=대법원이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해석을 했으니까 그것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고 그럼 입법을 손봐야 되니까요. 그래서 하루 8시간제를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했을 경우에 그것을 합산해서도 12시간을 넘지 못하게 명확하게 본문으로 규정을 해야 될 것 같고요.
서울 시내 한 사무실에서 불을 밝히고 야근하는 직장인들 모습. 연합뉴스[기자]
또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기존 행정해석에 따라 사업장들을 단속해왔는데, 대법원 판결로 정부가 단속할 법적 근거를 잃게 되면서 노동자 건강권을 지킬 방법이 사라진 꼴입니다.
[앵커]
그래서 어제 고용노동부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전문가와 의논해 행정해석을 변경하겠다고 발표했잖아요.
이미 대법원 판결은 내려졌지만, 부작용이 없도록 이제라도 정부가 더 세심하게 신경써야 할 텐데요.
[기자]
국회가 관련 입법 보완에 나서고 정부도 노동자 건강권을 지킬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건 기본일 겁니다.
더 나아가 대법원에서 이러한 판결이 나오게 된 배경, 즉 우리의 노동시간에 대한 사회 담론에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볼 때란 지적도 나옵니다.
현행 법정근로 40시간 더하기 연장근로를 포함한 일명 주52시간제에 아까 말씀드린대로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 자체가 애초 이런 노동 형태에서는 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그래서 안전장치를 따로 둘 필요까진 없다는 입법 취지가 반영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이런 장시간 노동을 허용한 판결이 내려진 건 애초 오늘날 우리 사회가 연장근로라는 초과노동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인서트]샛별노무사사무소 하은성 노무사 얘기 들어보시겠습니다.
=52시간이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고 봐요. 우리가 주52시간제 이렇게 얘기하지만 한 번도 우리는 주 52시간제를 한 적이 없고요. 주 40시간제인 거예요. 이런 노동부의 주장들을 대법원 판결이 인용해준 꼴이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 이런 해석은 없었거든요. 사실은 오히려 정치적 판결이지 않나…
[기자]
지금과 같은 저출산 시대에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희생하고 업무 효율도 떨어지는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이제는 정말 바꿔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양형욱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