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오는 15일 미 공화당의 대선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시작으로 미국도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든다.
아직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각종 여론조사 결과 전·현직 대통령 간 '리턴 매치'가 벌어질 가능성이 큰 가운데 한국으로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바이든 행정부가 연장될 경우 큰 틀에서의 정책 변경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시 변화의 폭은 상당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추가 관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축소 등의 경제문제는 물론 한반도 비핵화와 한미 동맹 등 대한반도 정책에서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 관측이 아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유세와 최측근들의 입에서 나오는 '재집권 시나리오'를 근거로 한 것이어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추가 관세 10%, IRA 대폭 수정…72조 대미 투자한 韓기업 영향은?
먼저 대미 통상 등 경제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선될 경우 추가 관세를 확대하고 친환경 에너지 지원책을 대거 폐기하겠다"고 공언했다.
여기다 IRA 수정도 예고해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국내 완성차 및 배터리 회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시 모든 상품에 부과하겠다고 밝힌 '10% 보편적 관세'는 기존 관세에 추가로 10%가 적용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태양광 패널, 세탁기, 철강, 알루미늄 등 광범위한 수입품에 이른바 '트럼프 관세'를 부과해 동맹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미국은 세계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제조 강국이 될 것"이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말처럼 추가 관세는 외국 기업과 경쟁하는 일부 미국 제조업체들에게는 혜택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다만 '보복 관세' 등으로 통상환경이 악화돼, 결국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더 큰 비용이 전가될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트럼프측은 FTA를 체결한 국가들은 추가 관세 부과의 예외로 할 지에 대해 아직 이렇다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재집권시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경제 정책인 IRA를 대거 정비해 화석연료 생산을 극대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도입된 IRA는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 대규모 세제·보조금 혜택을 지원하는 내용이 핵심으로, 트럼프측의 '전 정부 뒤집기'에 IRA가 타깃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될 경우, 세제·보조금 혜택을 기대하고 미국에 대거 투자를 한 한국 기업들의 피해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 백악관은 최근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IRA, CSA(반도체지원법) 법제화 등에 힘입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2천억달러(약 260조원)의 대미 투자가 이뤄졌다고 밝힌 바 있다.
이중 한국 기업의 투자 규모는 전체 아·태지역 투자의 4분의 1을 넘는 555억달러(약 7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IRA로 인한 투자·고용 효과가 공화당 우세 지역에 집중돼 있고, IRA 폐기를 위해서는 의회 승인을 얻어야하는 절차가 있어 전면 폐기는 어려울 것이는 관측도 나온다.
부분적인 손질 등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북미 최대의 배터리 양극재 공장을 착공한 LG전자 신학철 부회장도 "IRA 입법 정신은 중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배터리 공급망을 초당적으로 막아보자는 것이었고, 지금 여기서 후퇴한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에 정치 변화 상황이 오더라도 근본적으로 크게 바뀌는 것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한미 정상 간 '워싱턴 선언'과 한미일 3각 협력은 지속될까?
북핵 문제 등 대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정권 교체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국무부, 국방부, 중앙정보국(CIA) 등 외교안보라인 요직에 충성파를 기용해 외교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을 요구한 바 있어,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임기 첫해인 2025년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방위비 협상'이 한국에게는 험난한 고비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지난해 7월 발간한 '공화당 재집권 정책 제안 보고서'에서도 "미국의 국방 전략에서 비용 분담을 핵심적 부분으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비용 분담 논의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감축을 협상 카드로 쓸 가능성도 다분하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안보 정책을 담당했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고록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 "한국과 일본에서 분담금을 더 받아내려면 미군 철수로 위협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예전부터 한국과 일본을 묶어 대표적인 안보 무임 승차자로 지목해왔다.
윤석열 정부가 최대 외교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워싱턴 선언'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워싱턴 선언은 지난해 4월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시 양국 정상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지 공약을 강화한다'는 약속이었다. 핵심은 미국의 핵 확장 억제 공약이었다.
실제로 한미 양국은 올해 한미연합훈련부터 '핵 작전 시나리오'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달 15일 제2차 한미 NCG(핵협의그룹) 회의차 워싱턴DC를 방문한 자리에서 "그전에는 북한 핵 공격시 미국이 알아서 보복을 한다는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한미가 처음부터 같이 생각하고, 준비하고, 연습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한미연합훈련을 취소한 적도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3각 협력을 강조한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도 반대하고 있다. 대신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을 직접 상대할 가능성이 크다.
불발로 끝났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아찔한 순간이었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과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모험수'가 성사 직전까지 갔기 때문이다.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도 아니다. 최근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북핵 동결'을 조건으로 대북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방안을 구상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결국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한·미·일 3각 협력, 대북 제재 강화, '핵 작전 시나리오'가 포함된 한미연합훈련, 전략자산 수시 전개를 통한 대북 압박 등 바이든·윤석열 행정부가 차곡차곡 쌓아온 안보탑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는 것이다.
'불확실성' 제거 위해 경제·안보 주요 이슈부터 '매조지'해야
이처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국 경시 등 '돌출 행동'을 우려하는 시각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트럼프가 중시했던 가치들이 추후에 평가받는 일들도 있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무역전쟁을 불사하면서 이끌어낸 대중국 프레임 전환은 바이든 정부에서도 대중국 첨단기술 제재 강화 등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고나서 '유럽의 자발적 무장'을 강조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옳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물론 '트럼프 2기'의 불확실성을 간과할 수는 없기에, 한국은 미국과 진행중인 경제·안보 주요이슈에서 확실한 '매조지'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가까운 예가 안보 분야에서 '확장억제 체계 구축'을 완료하는 일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달 "한미 양국이 2024년 중반까지 핵전략 기획·운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통해 오는 6월쯤 확장억제 체제 구축을 완성키로 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기존의 '확장 억제 약속'을 파기할 수 없도록 만들겠다는 타임 테이블인 셈이다.
추가 관세, IRA 수정 등의 경제 이슈에서도 FTA 체결국의 호혜성과 대미 투자 확대의 이점 등을 적극적으로 주장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트럼기 1기 행정부가 악의적 관세를 부과했을 때, 한국은 이를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미국 수출에 대한 보복을 자제했지만 이제는 상대의 '선의'에만 기대는 환상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