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태영건설이 신청한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강석훈 산업은행장에 이어 이복현 금감원장까지 '태영그룹의 자구계획'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는데요. 비판의 핵심은 자구 계획이 미흡하니 SBS 지분을 매각하든지 아니면 지주회사인 티와이홀딩스의 지분을 내놓든지 하라는 겁니다.
권영철 대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기업 스스로 자구책을 내놓지 않고 도움만 요청하는 꼴이니, 오너 일가 살리기 아니냐. 이런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게 태영그룹 최대 자산으로 꼽히는 SBS입니다. 그 지분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나요?
◆권영철> 태영에서 지금까지 내놓은 자구계획에서 SBS 지분 매각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태영그룹이 3일 채권단 설명회에서 내놓은 자구계획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자금, 폐기물 처리 기업 에코비트 지분 매각, 골프장 운영 계열사 블루원 매각, 양곡화물 사업 기업 평택싸이로 지분 담보 제공 등을 통해 총 1조 5천억~1조 6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겁니다.
윤세영 창업회장이 직접 설명에 나섰지만, 윤 회장이 인정한 우발채무 2조 5천억원에 한참 못미치는 자구안이어서 채권단의 분위기는 싸늘했다고 합니다.
알짜기업으로 평가되는 SBS 지분 매각이나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양윤석 티와이홀딩스 전무는 채권단 설명회 직후 언론 브리핑에서 SBS 지분 매각 가능성과 관련해 "채권단이 말씀을 주시면 충분히 검토하겠다"면서도 "매각에는 방송법상 제약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정다운> '검토는 하겠지만 방송법상 제약이 많다'는 건 안 팔겠다는 의미로 봐야겠죠?
3일 오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신청 관련 채권단 설명회가 열린 서울 산업은행 본점에 관련 안내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권영철>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채권단이 원하면 검토는 하겠지만 방송법상 제약이 많다는 건 SBS 지분은 매각하지 않겠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는 얘기죠.
티와이홀딩스 유종연 대표이사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지난달 28일 SBS 사내 공지를 통해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SBS의 경영과 미래가치에 영향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확고한 입장"이라며 "티와이홀딩스가 소유한 SBS 주식의 매각이나 담보제공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밝혔습니다.
방문신 SBS 사장도 같은 날 담화문을 통해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이 SBS의 경영 위험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없다"며 "티와이홀딩스가 소유하고 있는 SBS 주식의 매각 또는 담보 제공 가능성 또한 없다"고 분명하게 언급을 했습니다.
◇정다운> SBS 지분을 매각하는 게 어려운건 사실인가요?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본사. 박종민 기자◆권영철> 방송법 제8조에 소유지분 제한 규정을 두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지상파 방송사업자로 참여하는 사업자는 최대 40%까지 지분을 소유할 수 있지만, 자산 총액 10조원 이상의 기업 집단은 지상파 지분 소유가 10% 이하로 제한됩니다.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의 지분은 30%까지만 소유할 수 있고요. 신문이나 뉴스통신사업자의 경우도 마찬가지 제한이 있습니다.
이 조항으로 인해 울산방송(UBC) 최대주주인 에스엠그룹(삼라)과 SBS의 최대주주인 태영(티와이홀딩스)은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초과 지분 매각에 관한 시정 명령을 받았거나 시정 명령을 앞두고 있습니다. 삼라는 울산방송 지분의 30%, 티와이홀딩스는 SBS 지분의 36.92%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인데, 두 사업자 모두 지난해와 올해 자산 총액 10조원 이상의 대기업으로 분류됐습니다.
SBS의 지분을 매각할 경우 방통위에서 최대주주 변경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SBS 최대주주 지분을 매입하려는 기업은 자산규모 10조원 미만이어야 합니다. 여기에 SBS의 자산규모를 감안할 경우 7조원 이하의 기업이어야 하는데 SBS를 매입할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존재합니다.
◇정다운> SBS의 시장가치는 어느 정도인가요?
◆권영철> 시장에서의 추정치는 5천억원 안팎에서부터 조단위는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있습니다만, 지상파 방송사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합니다.
SBS의 지분매각과 관련해서는 보도전문채널인 YTN의 매각추진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방통위가 막판에 YTN 최다출자자 변경에 대한 의결을 보류하면서 중단된 상태입니다만 방송사 가치 평가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진그룹은 YTN 지분 30.95%를 3199억 원에 인수하겠다는 의향을 밝힌바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2천억원 정도가 적정가격이라는 분석이 많았는데 유진그룹에서 예상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YTN은 코스닥 시가총액이 3200억 원이었습니다.(1월 5일 기준 시가총액은 2491억원) 주식가치의 3배 이상입니다. YTN의 2023년 매출은 1500억원 규모인 걸로 알려졌습니다.
SBS는 4일 상한가를 기록했지만 5일 다시 하락하면서 시가총액이 6372억 원이었습니다. 티와이홀딩스의 SBS의 지분이 36.9%니까 주식가치는 2351억 원 입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SBS의 자산 총계는 1조 3462억원으로, 태영그룹 핵심 계열사인 태영건설(4조 9014억원), 애코비트(1조 7865억원)에 이어 세 번째로 큽니다.
여기에 지상파 경영권 프리미엄과 방송사의 영향력 같은 무형의 자산까지 포함하면 얼마까지 상승할까요?
우선 매출규모에서 YTN과 SBS는 비교가 안 됩니다. SBS는 2021년(1조 490억원)과 2022년(1조 1737억 원) 매출 1조원을 넘겼고 2023년 광고침체 속에서도 매출 1조원(1조 190억원)을 넘긴 걸로 추정됩니다.(YTN은 1500억원 안팎) 지난해 영업이익 잠정치가 감소하긴 했지만(2022년 1860억 원에서 2023년 620억원) 흑자 기조를 이어갔고 부채비율도 안정적입니다.
티와이홀딩스는 SBS 주식 36.9%에 SBS미디어넷의 지분 91.65%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SBS미디어넷은 SBS 비즈, 스포츠, 골프 등을 방송하는 방송프로그램을 공급하는 계열사로 연 매출은 1600억원 규모 입니다.
SBS의 핵심 관계자는 "SBS 지분과 SBS 미디어넷, 자산 가치 등을 종합하면 시장가치는 2조 5천억원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다운> 채권단에서는 SBS 지분을 팔지 않고는 워크아웃 승인이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 아닌가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금융당국의 반응이 매우 강합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4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태영 측 자구안은 태영건설 지원이 아니라 총수 재산 핵심인 티와이홀딩스 지키기 또는 오너일가를 위한 자구계획이라는 의심이 드는 상황"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이 원장은 "오너일가가 자회사를 통해 수백억, 수천억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구안에는 '단 1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며, "호황기에 태영은 시공과 시행을 한꺼번에 도맡아 하며 1조원 넘게 벌었고 상당 부분은 총수 일가에게 돌아갔다"고 까지 언급했습니다.
자구계획이 '자기 뼈를 깎는 노력이 아니라 남의 뼈를 깎는 모양새'라며,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견리망의(見利忘義·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가 떠오른다"고 직격하기도 했습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신청 관련 채권단 설명회가 열린 3일 오후 서울 산업은행 본점에서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태영건설 상황은 기본적으로 태영건설 및 대주주의 잘못된 경영 판단에서 비롯됐다"면서, "대주주의 뼈를 깎는 충분한 자구 노력을 통해 사회적 경제적 피해가 최소화되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강 회장은 "태영건설 측이 문제해결 진정성 보여주지 않는다면 채권단의 원만한 협조와 시장 신뢰회복 이끌어낼지 우려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다운> 이복현 금감원장이 'SBS 지분을 내놓는데 제약이 있다면 지주회사인 티와이홀딩스 지분을 내놓으라'는 취지의 언급도 했다던데 어떤 의미인가요?
◆권영철> 일종의 최후통첩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티와이홀딩스(태영건설 모회사이자 태영그룹 지주사)는 상장법인인데다 상당 지분을 오너(총수 일가)가 갖고 있다"면서 "그 지분을 활용한 현실적인 유동성 제공이라든가 또는 티와이홀딩스 자체의 채무 부담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채권단이 요구하고 있는 지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원장은 기자들의 추가질문에 "본인들이 방송법상 제약을 핑계로 추가 유동성 안된다 얘기를 들었다. 제약이 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라고 전제하면서, "다만 채권단 입장에서는 그게 굳이 핑계와 명분이라면 홀딩스는 상장법인인데다 가치평가도 쉽고 오너들이 지분을 갖고 있으니 그걸 활용할 방법이 있지 않느냐? 채권단이 이렇게 생각한다고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채권단의 입장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언급을 했지만, 티와이홀딩스의 지분을 내놓으라는 건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을 담보로 내놓으라는 요구여서 고강도의 자구안과 오너 일가의 결단을 촉구하는 걸로 받아들여집니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 일가의 티와이홀딩스 지분(27.26%)을 담보로 태영건설이 돈을 빌리는 등의 방식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한편 태영건설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해 국민, 기업, 농협, 신한, 우리. 하나 등 7개 은행의 부행장들이 5일 채권단 회의를 열어 워크아웃 추진방향에 대한 논의를 했지만, SBS 지분매각이나 TY홀딩스 지분 매각 등에 대해 구체화된 고강도 요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채권은행들은 "태영그룹이 워크아웃 신청시 확약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중 미이행분 890억원을 즉시 지원할 것"을 촉구하고, 아울러 "총수일가는 기존에 제시한 자구계획을 즉시 이행하고 태영건설 정상화를 위하여 계열주와 태영그룹이 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방안을 진정성 있게 제시할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정다운> 그런데 채권단이나 시중의 요구와는 달리 태영그룹은 SBS 지분을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권영철> 그런 분석들이 나오는 게 사실입니다. 태영그룹이 제시한 자구계획을 분석한 관측들인데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태양건설은 포기해도 SBS는 포기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SBS는 그간 태영그룹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태영건설은 1970년대 도급 순위 600위권 밖에 머물렀으나 1980년대 45위권에 진입했습니다. 이후 SBS가 설립된 1990년 30위로 상승한 뒤, 지금은 16위에 올라 있습니다.
태영의 아파트 브랜드인 '데시앙'의 브랜드 가치가 높을까요? SBS의 브랜드 가치가 높을까요? 태영그룹이 SBS의 지분을 포기하면 중견 건설사의 위상만 유지하게 되겠지만, 태영건설을 포기하면 지상파 방송3사라는 영향력을 유지하게 되는 겁니다.
윤세영 창업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한 것도 SBS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윤 회장은 지난 2019년 3월 아들 윤석민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태영건설의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5년여 만에 다시 복귀했습니다.
SBS 출신이나 방통위 전현직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 '윤 회장이 SBS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정다운> 한마디로 전망하자면 SBS 지분을 팔 생각도 없지만 팔려고 해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거죠?
◆권영철> 그렇습니다. 방통위의 최다액출자자 변경 심사도 까다롭습니다.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 및 공익성의 실현가능성', '사회적 신용 및 재정적 능력', '시청자의 권익보호'를 비롯해 사업수행에 필요한 사항 등을 방송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방송법 15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