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태영그룹이 자구 노력 차원에서 태영건설에 지원하기로 채권단과 약속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잔여액 890억 원을 8일 투입 완료했다. '태영건설 정상화를 위한 채권단의 지원을 원한다면 자구 약속부터 제대로 이행하라'는 정부와 채권단 차원의 전방위 비판에 결국 뒤늦게 백기를 든 모양새다. 다만 채권단 입장에선 최소한의 약속이 가까스로 이행된 모양새여서 오는 11일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 작업) 개시 여부를 낙관적으로 보기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날 "오전에 (태영건설 지원 약속액 잔여분) 890억 원 입금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태영그룹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지원을 비롯한 나머지 기존 자구안도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채권은행 산업은행은 밝혔다.
앞서 채권단과 정부는 태영그룹이 태영건설에 대한 대규모 금융 지원을 바라면서도 정작 자구 약속 이행엔 소홀한 이기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태영그룹의 행보를 두고 '자기 뼈 대신 남의 뼈를 깎는 노력'이라는 고강도 비판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됐다.
특히 태영그룹이 계열사 매각 대금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이를 어기고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 살리기에 나섰다는 논란은 이런 비판의 주요 근거로 작용했다. 애초 태영그룹은 계열사인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1549억 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겠다는 자구 약속을 내놨다. 이 액수는 매각 대금 가운데 윤세영 창업회장의 아들 윤석민 회장(416억 원)과 티와이홀딩스(1133억 원) 몫을 합친 것이다.
태영그룹은 이후 이 약속을 이행했다며 659억 원은 태영건설 협력업체 공사대금과 현장 운영자금에, 나머지 890억 원은 티와이홀딩스 연대 채무 상환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연대 채무는 태영건설 때문에 발생한 것이므로 지원이 이뤄진 셈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채권단과 당국은 이런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890억 원이 태영건설에 직접 지원되지 않고, 티와이홀딩스 리스크 해소에 쓰였기에 약속 이행액은 659억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태영그룹이 시급한 상황에서조차 이런 석연치 않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핵심 계열사인 SBS 최대주주이자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부터 지키려는 의도 아니냐는 물음표까지 제기됐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태영그룹의 행보를 "오너 일가 자구계획"으로 보는 채권단의 입장을 언급했던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결국 코너에 몰린 태영그룹이 논란의 890억 원을 뒤늦게 태영건설에 직접 투입하면서 워크아웃 개시에 미온적이었던 채권단의 분위기가 반전될지 주목된다. 기존 자구 약속 이행은 기본이며, 지주사 지분 담보 제공과 사재출연 규모 확대 등 태영 오너 일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부실 경영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아 아직은 워크아웃 성사를 낙관하긴 어렵다는 얘기도 금융권에서 나온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 당국 수장들은 이날 오전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열어 "(태영그룹이) 충분하고 구체적인 추가 자구안 제시 등을 통해 채권단의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다는 점에 견해를 같이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