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과거를 재단하던 법조인이 미래를 제대로 논할 수 있을까?"
최근에 만난 검찰 고위직 출신의 한 인사가 '총선' 바람과 맞물려 여의도로 향하는 법조인들을 보고 꺼낸 말이다. 그도 현직에 있을 때 정치 입문을 권유받았다고 했다. 물론 저런 이유로 단박에 거절했단다.
그는 특히 법조인 중에서도 현직 판·검사의 '출사'를 더욱 우려했다. 그들이 맡아서 처리한 사건과 판결을 둘러싸고 벌어질 공정성 시비를 떠나 법을 다루는 '율사'라는 직업 특성이 정치와 태생적으로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판·검사는 법조인 중에서도 과거 사건이나 사고를 평가하고 판단하며 나아가 시비와 선악을 가리는 데 특화된 대표적인 직업군이다. 과거 발생한 사건, 사고에 대한 분쟁 해결과 정리 자체가 직업적 소명이다.
입직 이후 한평생 과거를 바라보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순간 미래를 설계하고 의견이 다른 상대방과 타협하면서 조율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일은 절대 만만치 않다. 대화와 협의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풀어야 한다. '똑' 부러지는 시비 구분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당연히 모든 판·검사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의의로 정치인에 어울리는 자질을 지닌 인물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여의도에서 맹활약한 율사 출신 정치인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여러 방면에서 갖가지 활동을 통해 사고의 유연함을 키울 수 있는 변호사와 비교해도 분명 차이가 있다.
법조계와 정치권 안팎의 소식을 종합하면 법무연수원 이성윤·신성식 연구위원, 김상민 대전고검 검사 등 현직 검사들이 몇몇이 잇따라 사의를 표명하고 출마를 준비하거나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법원에서도 전상범 의정부지법 부장판사와 심재현 광주지법 목포지원 부장판사가 사직했다. 법원 정기 인사를 앞두고 이례적 시기에 사표가 수리된 점에 비춰 볼 때 출마를 예상하는 시각이 많다. 전 부장판사는 국민의힘에 영입된 상태다.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겠지만, '출마의 변'을 내놓은 또는 내놓을 이들의 발언을 꼼꼼히 뜯어보자. 미래 설계를 위한 담론이 담겼는지. 과거 자신의 은원 관계를 풀고자 하는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당장 청사진을 내놓지 못할망정 여전히 과거에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 말이다.
최근 정치는 '팬덤' 현상과 '편 가르기' 진영 논리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증오 정치로 야당 대표가 습격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현직 판·검사라는 타이틀만으로 혹은 진영 논리를 앞세워 당선을 기대하고 나온다면 정치의 매운맛만 보지 않겠는가.
예전에 법원·검찰 인사철이 되면 "공직자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앉은 자리는 잠시 빌린 자리일 뿐이다"라는 고위직 인사들의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말을 그대로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지만, '자리'를 노리는 선거판을 향해 떠나는 현직 판·검사들을 보니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