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22대 총선 공약개발본부 출범식에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공천 약속은 없다'는 발언이 당내 파장을 낳고 있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에 치우친 공천을 우려하는 당내 기류를 다잡기 위한 발언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한편에선 한 위원장이 등판과 동시에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제기됐던 '대규모 물갈이' 전망이 일부 수정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교한 공천 작업이 요구되는 배경에는 '김건희 여사 특검', '제3지대' 신당의 등장 등이 깔려 있다. 단일대오에서 이탈하는 현역 의원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당내 민심을 다독여야 하는 한편, 새로움을 요구하는 일반 민심을 위해선 과감한 인적 쇄신 역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공천=당선' 공식이 적용되는 영남권 등 텃밭에는 현역 의원과 신인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옥석을 가려야 하는 당 지도부와 공천관리위원회의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 위원장은 15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당내 3선 의원들과 오찬 회동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천' 관련 언급에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그는 중진 의원들의 의견 중에서 그간 강조해 온 '헌신(불출마)'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지 묻는 질문에 "이런 자리에서 헌신을 요구할 건 아니지 않나. 정치 경험이 많지 않아 좋은 경험을 전수해달라고 했다"고만 답했다.
앞서 전날 충남 예산에서 열린 국민의힘 충남도당 신년 인사회를 마친 뒤엔 "지역에서 '내가 공천을 받게 돼 있다'고 말하는 인사가 많다"는 질문을 받자,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니는 분들의 말은 믿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잘라 말했다.
공천과 관련된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역대 총선에서 옛 친이(친이명박)계에 의한 친박계 학살, 이후 친박계에 의한 '진박 감별' 등 계파에 치우친 공천과 관련된 논란은 당에 치명타를 입혔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총선의 경우에는 더 전략적인 섬세함이 요구된다. '현역 물갈이' 드라이브를 세게 걸었다가 자칫 당내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들이 추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른바 '쌍특검' 재의결 표결 시점에서 '물갈이 희생자'는 곧 '이탈 표'로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 최근 들어 거대 양당에서 이탈해 몸집을 키우고 있는 제3지대 신당(新黨) 세력들은 노골적으로 낙천한 인사들에 대한 '이삭줍기'를 공언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 지도부는 험지인 수도권부터 컷오프를 진행하고, 텃밭인 영남권(TK, PK) 등에선 최대한 공천 시점을 미룬다는 계획이다. 수도권은 상대적으로 현역 의원들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교체의 부담이 덜한 측면이 감안됐다.
발언하는 한동훈 비대위원장. 연합뉴스반면 영남권은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이기 때문에 다수의 경쟁자가 몰리고 있고, 지도부 입장에서도 공천 작업이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된다. 텃밭에서 일정 부분의 특혜를 누린 현역 의원들의 헌신과 양보를 요구하면서 이탈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현역 의원이 포진한 지역에 도전장을 내민 대통령실과 정부 출신 인사들의 경쟁 결과가 주목된다. 예비후보로 등록한 대통령실 비서관급, 정부 부처 장‧차관급 인사들 중 다수가 영남권에서 뛰고 있다.
TK에선 대구 북구갑(현역 양금희)에는 전광삼 전 시민사회소통비서관이 출마를 준비 중이고, 경북 상주‧문경(임이자)에는 한창섭 전 행정안전부 차관이, 영주‧영양‧봉화‧울진(박형수)에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이 뛰고 있다. 경북 구미 을(김영식)의 경우 강명구 전 국정기획비서관과 허성우 전 국민제안비서관 등이 출사표를 던져 3파전을 예고하고 있다.
PK 역시 윤석열 정부 핵심 인사들이 출마를 노리고 있다. 현역인 하태경 의원이 자리를 비운 부산 해운대 갑에는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과 박성훈 전 해양수산부 차관(전 국정기획비서관) 등이 나란히 출마 예정자로 거론된다. 중구‧영도구엔 옛 현역인 김무성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조승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예비후보로 나선 상태다.
윤 정부의 핵심들과 경쟁하는 현역 의원들은 '인재 영입' 사례가 아닌 이상 '공정한 경선'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영남권의 한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신당 세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당에 상당히 위협적인 건데, 원칙도 없이 경선 기회도 주지 않고 현역을 날리면 가만히 있겠나"라며 "대통령실 등에서 온 사람들이 '공천받았다'고 말하고 다니는 건 그들만의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영남권 의원 역시 "한 위원장의 말은 경선에 무게를 싣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라며 "대선 출마 등 앞으로 한 위원장 자신의 정치를 위해서도 공천 리스크 관리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공천관리위원회는 16일 첫 회의를 열고 당무감사 내용을 보고받는다. 앞서 당무감사위는 당협위원장 204명 중 46명(전체의 22.5%)에 대한 컷오프를 권고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최종적인 현역 교체율은 43.5%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