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용산참사 15주기 추모위원회가 연 용산참사 15주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2009년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이주대책을 요구하던 철거민 5명이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이른바 '용산참사' 15주기를 맞아 20일 용산역 광장 일대에서 '용산 다크투어'가 열렸다.
'용산 다크투어' 용산 지역 시민단체들이 이 참사를 기억하고 도시개발의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자는 취지로 마련한 일종의 추모제로 2022년 1월 참사 13주기부터 3년째 열리고 있다.
앞서 15년 전인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남일당 빌딩에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 관련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을 경찰특공대가 진압했다. 진압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
궂은 날씨에도 이날 다크투어에는 사전 신청한 시민 60여명이 참석했다. 30명씩 두 개 조로 나뉜 참가자들은 용산역 광장에서 모여 홈리스 텐트촌, 용산 정비창 부지, 전자상가 일대 등을 약 2시간가량 둘러본 뒤 용산참사 현장에서 15주기를 추모했다.
아내, 열한살 아들, 아홉살 딸과 함께 타크투어에 참석한 서울 강북구에 사는 정모(49)씨는 "용산사태가 벌써 15년 전 일이라 많이 잊고 지냈는데, 이 일을 가족과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용산역과 전자상가를 잇는 구름다리에서는 노숙인들의 홈리스 텐트촌이 내려다보였다. 2017년 인근의 호텔이 개장하면서 노숙인 20여명이 텐트촌으로 내몰렸다고 한다.
홈리스행동 안영진 활동가는 "밖에서는 이곳 텐트촌이 섬처럼 보인다"며 "공공이 소유하고 관리했던 장소가 민자의 이익과 결부됐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장소"라고 말했다.
정비창 부지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노숙인들은 이곳에서마저 퇴거조치될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축구장 70개에 달하는 50만㎡ 규모의 정비창 부지 앞에서는 이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 사업은 2007년 사업자를 공모하며 첫발을 내디뎠으나, 2013년 자산관리위탁회사가 채무 불이행으로 부도가 나면서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중단됐었다. 서울시와 정부는 2022년 다시 이곳을 매각해 국제업무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빈곤사회연대의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용산구 최저 주거 기준 미달 가구가 전체 주민의 20%에 달한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서울시 평균 7%인데 용산구는 3% 이하"라며 "그렇다면 용산에 어떤 게 더 필요한가. 이곳에는 임대주택이나 공적 시설물이 들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용산참사 15주기 다크투어에 참석해 묵념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용산참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본 것을 계기로 직장 동료와 함께 이번 투어에 참가한 남지하(28)씨는 "2009년 참사 당시 일들은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지만, 개발 이후로도 주민들이 소외된다는 사실은 잘 몰랐는데 이번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대학원생 오은재(27)씨는 "대로변에서 용산역 바깥의 화려한 모습만 보다가 뒤쪽 공간을 둘러보니 새롭게 느껴지면서도 과거 참사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며 "제가 사는 관악구에도 이런 도시 공간 이슈가 없는지 알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용산참사 현장인 옛 남일당 터에는 43층짜리 빌딩이 들어서 있었다. 참가자들은 '잊지 않은 우리들은 용산참사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을 요구합니다'라고 쓰인 팻말 주위에 국화꽃 한송이씩을 내려놓으며 헌화하고, 우산을 쓴 채 굳은 표정으로 묵념했다. 눈시울을 붉힌 참가자도 있었다.
이 위원장은 "참사 당일 농성 시작과 함께 새벽부터 철거 용역과 경찰이 함께 물대포를 쏘며 진압했고,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경찰 특공대가 투입돼서 강제진압을 했다"며 "철거민들이 건물을 점거했다는 이유만으로 특공대를 투입하는 계획이 세워졌다고밖에 볼 수 없고, 왜 그랬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참가자인 50대 김모씨는 "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죄없는 철거민들을 생각하니 슬프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더 이상 빈익빈 부익부로 인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