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 챗GPT 회사 오픈AI. 연합뉴스 새로운 생성형 AI(인공지능) 기술이 산업 전반에 파고들면서 출판 등 창작 산업에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미 국내외에는 AI를 이용해 웹소설 창작을 도와주는 도구들이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독자와 작가들은 AI 창작물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네이버의 북미 웹소설 플랫폼으로 전 세계 9천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왓패드(Wattpad)는 최근 미국의 18세 이상 독자 1천 명과 작가 250명을 대상으로 '소설의 미래'(The Future of Fiction)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에 따르면 Z세대 성인 중 65%, 밀레니얼 세대의 71%가 웹소설·전자책·웹툰을 선호하는 반면, X세대와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답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기술에 친숙한 Z세대, 밀레니얼세대 대부분은 책, 영화 등 여러 엔터테인먼트를 선택할 때 다양성을 중요하다고 보면서 기존 문학 장르 외에 로맨스·판타지·SF·공포 장르 선호 현상이 뚜렷했다. Z세대 29%는 LGBTQ 장르를 재미로 읽는다고 답했다.
왓패드의 콘텐츠 및 창작자 개발 책임자 닉 우스코스키(Nick Uskoski)는 "젊은 독자들일수록 디지털 형식의 소설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Z세대와 밀레니얼세대의 경우 SF·판타지·로맨스 장르를 선호하고, 성소수자(LGBTQ)가 등장하는 콘텐츠를 노골적으로 찾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소설의 미래 설문조사. 왓패드 갈무리 AI가 출판계의 뜨거운 주제인 반면, 대다수 독자들(92%)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 인간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봤다.
작가의 경우 대부분 창작 과정에 AI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응답하면서 이중 43%는 AI가 창작자의 수익 창출과 출판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절반 안팎은 AI가 작품 완성 시점의 편집 작업이나 책 표지 아트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오늘날 콘텐츠 취향과 큐레이션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업계가 이를 고도화하기 위해 AI나 알고리즘 추천 방식을 적극 도입하고 있지만, 정작 응답자의 20%만이 이를 선호하는 데 그쳤다. 반면 Z세대(72%)와 밀레니얼세대(68%)는 틱톡의 책 추천·리뷰 서비스인 북톡(BookTok)과 책을 주제로 하는 영상콘텐츠를 말하는 북튜브(BookTube)의 추천을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X세대(68%)와 베이비부머 세대(70%)는 주로 친구나 가족의 추천을 선호했다.
왓패드, 굿리드(GoodReads)와 같은 웹소설 플랫폼, 도서 추천 플랫폼의 영향을 받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Z세대의 경우 38%, 밀레니얼세대는 48%에 그쳤다.
이는 기술적 관여보다 사람이 직접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공유하는 추천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실제 매년 신뢰성 논란을 낳고 있는 도서 추천 소셜 플랫폼 굿리드의 우수 도서 선정 '굿리드 초이스 어워드'에 대한 북튜버들의 실험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지난해에 유명 북튜버 17명이 모여 굿리드 선정 위원회가 선정한 후보 도서가 실제 독자들의 지지를 받을 만한지 실험한 결과에서 다수의 책들이 우수 도서로 추천되기에 미달했다. 아마존이 2013년 굿리드를 인수한 뒤 거대 기업의 '흑심'이 들어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국내의 경우에도 유튜브나 방송을 통해 공감을 얻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다.
작가들 대부분(79%)은 창작 과정에 AI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54%)이 AI가 캐릭터의 진정성이나 다양성과 같은 포괄적인 스토리텔링 요소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응답자의 23%는 AI가 문화적 정확성이나 존중이 필요한 스토리에 편견을 개입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지난해 할리우드 작가 1만여 명이 소속된 미국작가조합은 148일간 초유의 파업을 벌였다. 맷 데이먼, 제니퍼 로런스 등 유명 배우들까지 동참하며 할리우드 제작 지연을 초래한 이 파업에서 작가들은 "작가·배우 동의 없이 작품에 AI를 활용할 수 없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AI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산업계와 인간의 일자리와 저작권 침해 문제가 가져올 파장을 우려한 창작자간 상징적인 충돌로 기록됐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바둑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로 잘 알려진 AI 회사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무스타파 슐레이만은 최근 AI 시대를 전망한 저서 '더 커밍 웨이브'(The Coming Wave)에서 "과거 바퀴와 전기의 발명이 인류 역사 궤적을 완전히 바꿨듯이 앞으로 30년 안에 그와 비슷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유사 이래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상을 들여다보면 AI 기술의 물결에 대한 억제는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다가오는 물결이 초래할 결과를 따라가다 보면 분명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그 사실은 바로 모두를 위해 억제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작자들은 대체로 AI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하면서 AI가 보조적이고 협업적인 수단으로서 사용될 수 있다는 측과 인간의 참여가 있는 순수 창작물을 지향해야 AI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측으로 양분되는 모양새다.
SF 장르를 써 왔던 개미의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얼마 전 인터뷰에서 "AI가 결국 문학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를 이용해 결과적으로 복제하는 방식의 창작은 결국 독자들의 외면으로 도태되고 모방하는 작가도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봤다. AI 등장은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오히려 작가들로 하여금 더 독창적이고 더 과감한 글을 쓰게 하면서 문학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이를 통제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희구 작가는 콘텐츠산업포럼에서 "AI가 창작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을 보며 솔직히 두려움을 느꼈다"며 "드라마 대본을 쓰고 책을 쓰는 창작자 입장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업계 사람이라면 모두가 느끼는 두려움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플랫폼에 작품을 연재 중인 웹소설 작가 A씨는 CBS노컷뉴스에 "지난해 네이버웹툰에서 AI를 이용한 웹툰 작화 논란이 일면서 웹툰계에서는 본격적으로 AI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독자들의 강한 거부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면서 "반면 활자 기반의 작화인 웹소설에서 AI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 지 사실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작가 B씨는 "웹소설이 전통적 소설이나 문학과 다른 요소는 문장·국어 파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도의 문학적 기교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소재와 재미만 있다면 얼마든지 온라인에서 글 쓰듯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며 "대다수 독자들도 이를 알고 수용하고 있지만, 비슷한 장르와 소재, 스토리 전개를 가진 수천 편의 웹소설 중 창작 과정에서 AI 사용과 순수 창작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 시인은 모 신문 칼럼에 AI와 경쟁하거나 오히려 지배받는 사회가 영화처럼 올 수도 있다며, 이를 멈출 수 없는 '설국열차'에 비유하기도 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기술과 인간의 삶을 상상으로 그려낸 고전 SF소설이 현실로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