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고(故) 방영환씨의 딸인 방희원씨가 3일 오후 서울 강서구청 인근 사거리에서 열린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처음 투쟁에 나서면서 결심했던 마음은 '우리 아빠, 진짜 억울했겠다', 이거 하나였거든요. 그냥 '있는 법'을 지켜 달라 한 거고 노동자들이 좀 더 편한 세상에서 일하길 바라신 건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어 처음엔 진짜 복잡한 생각으로 아빠를 원망한 적도 있었고요.
아빠가 (지난해) 추석 연휴 전 몸에 불을 붙이고 돌아가셨는데, 벌써 해가 바뀌고 (곧) 설날(구정)이에요. 남들은 세뱃돈·한복 준비할 텐데, 전 아직 아빠 장례도 못 치러드려서 설연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택시기사 고(故) 방영환씨의 딸인 희원(31)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는 3일 오후 서울 강서구청 인근 사거리 차도에서 열린 '방영환 열사 투쟁승리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발언자로 나서 이같이 말했다.
앞서 해성운수(모기업 동훈그룹)의 부당해고와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7개월 넘게 1인 시위를 벌였던 아버지 방씨는 지난해 9월 26일 회사 앞 도로에서 분신을 시도한 지 열흘 만인 10월 6일 숨졌다.
작년 3월부터 방씨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위협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해성운수 대표 정모(51)씨는 오는 15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검찰은 징역 5년을 구형했다.
희원씨는 "몇 주 만에 마이크를 잡는데, 그동안 너무 겁이 났었다"며 "(집회·시위를 하면) 차들이 막 지나가면서 제게 욕을 하고, 경찰들이 나서서 아빠 분향소를 철거하고 영정사진을 내팽개칠 때면 많이 힘들었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제가 아빠를 닮아 체구도 작고 여리여리하지만 '깡'은 있다. 아빠의 생전 투쟁(자취)을 밟아가는데 (아빠가) 너무 외로우셨을 것 같더라"며 "1인시위 200일째가 되던 날엔 동료들에게 같이 연대해주면 안 되냐고 물어보셨다는데, 그런 부탁이 진짜 힘드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다음주면 해성운수 대표의 재판 선고 날"이라며 "꼭 엄중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고, 아빠의 뜻을 이뤄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 2021년부터 서울시에서 택시월급제가 시행됐지만, 대부분의 택시 사업주들이 법을 어기면서 이름만 바뀐 기존의 '사납금제'를 유지했다고 지적했다. 또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시(市)가 이를 방조, 묵인했다고 비판했다.
또 택시월급제는 올 8월 전면 확대시행 예정임에도, 여전히 대다수 지역의 사업주들이 방씨에게 '불법'을 자행한 동훈그룹과 같이 사납금제를 고집하고 있는 현실도 짚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양경수 위원장이 3일 '방영환 열사 투쟁승리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대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그동안 택시노동자들은 사납금을 납부하기 위해 난폭운전, 총알운전을 강요받았다. 그 결과 일반차량의 8배에 달하는 교통사고와 사상자를 낳게 된 것"이라며 택시 완전월급제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해 시행된 제도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어 "방 열사 분신 이후에야 서울시는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고 고용노동부도 근로감독을 시작했다. 임금체불은 물론,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않은 범죄가 드러났지만, 해성운수는 사과조차 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악랄한 자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자본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근로기준법을 지키라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열사처럼, (방씨를) 분신하게 만든 잔인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꾸자.
이 투쟁은 택시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한 것이자 모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이라며 "이제라도 방 열사를 보내드릴 수 있도록 힘차게 싸워나가자"고 밝혔다.
2개 차로를 점거한 참석자들은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책임자를 처벌하라", "열사의 염원이다, 택시월급제 시행하라", "동훈그룹 최저임금 위반, 당장 처벌하라", "택시노동자 생존권을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연호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방씨의 이미지가 담긴 '가짜 상여'와 만장(輓章)도 준비됐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강서구청과 경동운수, 우장산역 사거리를 지나 동훈그룹 회장 자택 앞에 차려진 방씨의 분향소를 향해 행진했다.
주최 측은 당초 1천 명으로 집회인원을 신고했으나, 실제로는 더 많은 인원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했다.
민주노총과 집회 참석자들은 "정부당국이 '위장 사납금제'를 단속하지 않고 택시월급제 시행에 나서지 않으면 방영환 열사의 투쟁과 같은 투쟁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은지 기자한편, 이날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등은 특별조사위원회 설치 등을 골자로 한 특별법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며 서울시청 분향소에서 정부청사 쪽으로 행진했다.
이들은 "정부는 유가족의 바람인 '진상 규명'을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거부했다"며 "온라인상에는 다시 (유족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난무한다.
패륜을 방조하고 조장하는 것 또한 패륜"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