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아냈다. 재판부가 이 회장을 포함한 피고인 14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검찰이 제출한 대부분의 증거능력까지 탄핵하자 사실상 검찰 수사가 '완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 측근인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당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과 진행한 사건이다.
검찰의 완패… 삼바공장 바닥 증거는 활용도 못 했다
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는 전날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과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앞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 원을 구형했지만, 결국 피고인 14명 전부 무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재판부는 선고 초반부터 검찰이 수집한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탄핵하며, 위법 증거인 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특히 2019년 5월 7일,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공장에서 찾은 증거를 두고 재판부는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수사팀은 삼바 공장 바닥을 뜯어내고 숨겨진 회사 공용 서버와 직원들의 노트북 등을 대거 확보했다며 수사 성과로 삼았다.
황진환 기자하지만 법원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절차를 지키지 않은 위법 증거는 재판에 쓸 수 없다고 탄핵했다. 재판부는 "증거은닉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가 은닉한 저장매체와 저장된 전자정보가 임의제출된 경우에도 수사기관은 전자정보에 대한 탐색·복제·출력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유관증거만 선별해 복제·출력하고, 혐의사실과 관련 없는 전자정보의 임의적인 복제를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은 위법하고 위법한 압수수색으로 취득한 증거와 2차 증거들도 모두 유죄 인정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당시 검찰이 범죄 혐의와 관련 없는 정보들에 대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다른 증거인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의 휴대전화 내 문자메시지에 대해서도 "전자정보에 대한 선별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전자정보 상세목록을 교부하지 않았다. 범죄혐의와 관련성이 없는 정보의 삭제·폐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수사기관이 압수 수색영장에 기재된 범죄 혐의사실과 관련된 정보 외에 범죄 혐의 사실과 관련이 없어 압수의 대상이 아닌 정보까지 영장 없이 취득한 것일 뿐만 아니라 범죄혐의와 관련 없는 정보에 대한 삭제·폐기·반환 의무를 사실상 형해화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어서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의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불법승계·부당합병·시세조종… 모두 인정 안 돼
연합뉴스이번 사건의 핵심은 2015년 이뤄진 제일모직(삼성에버랜드)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조직적인 부정거래 행위와 시세조종, 회계부정 등 위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다. 하지만 재판부는 합병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1 대 0.35'로 제일모직 가치가 삼성물산의 3배에 달했다. 당시 제일모직 주식만 갖고 있던 이 회장은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됐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받기 위해 부당한 합병을 했고, 회계 부정까지 저질렀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합병이 승계작업이라는 유일한 목적만으로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고 검사가 들고 있는 문건들은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찰의 기소 논리부터 문제 삼았다. 이어 "경영권 강화와 그룹 승계만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삼성물산의 사업적 목적 또한 이 사건 합병 목적이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즉 합병에 합리적인 사업상 목적이 있는 한, 합병에 지배력 강화 목적이 수반됐다고 하더라도 합병 목적 전체가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불공정한 합병 비율로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및 주주의 이익이나 의사가 도외시된 바 없다"며 "합병을 통한 그룹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안정화는 삼성물산 및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들이 제일모직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추진 계획과 에버랜드 인근 개발 계획 등 '허위 호재'를 뿌리고, 이후 취소했다고 봤지만, 법원은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추진 계획은 이 사건 합병 훨씬 이전부터 진지하게 추진돼 왔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용인 개발 계획도 이건희 전 회장 지시에 따라 제일모직이 오랫동안 검토·추진해 온 계획"이라며 허위 계획을 공표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 대통령 등이 지휘한 삼성 불법 승계 의혹 사건은 기소 후 약 3년 5개월동안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지만, 재판부를 전혀 설득하지 못하고 완패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애초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음에도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를 밀어붙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날 이 회장에게 무죄가 선고된 이후 검찰은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란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