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1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는 모습. 오른쪽은 병원 전공의들. 연합뉴스이른바 '빅5'를 포함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잇따르는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전국 수련병원 221곳을 대상으로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한다고 19일 밝혔다. 의료법 제59조 2항에 근거한 조치로 현행진료 체계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진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해당 조항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집단 휴업·폐업으로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또는 이같은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복지부 장관과 지자체장이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또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전날 '집단행동 중단'을 촉구한 한덕수 총리의 담화를 "겁박"이라고 지칭하며 거세게 반발한 데 대해
"국민 생명을 협박하는 반(反)인도적 발언"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의 조치를 '의사에 대한 도전'이라 하고, 의대생·전공의들의 자유의사에 기반한 행동을 처벌하려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의료 대재앙을 맞을 것이라 했다"며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표현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이러한 인식을 갖고 환자를 치료한 것인지 참으로 충격적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 이는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며 의협이 국민 건강은 안중에 없이 '후배' 격인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17일 집단행동을 이유로 면허가 취소되는 전공의 등이 한 명이라도 생길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일찌감치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명령을 내린 정부는 이를 사실상 '집단행동 교사'로 보고 법적 조치를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
연합뉴스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이날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에서 근무 중인 인턴·레지던트 전원이 이날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 부로 병원을 나가겠다고 예고했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등 일부 진료과는 당장 이날부터 근무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힌 상태다.
의대 졸업 후 의사면허를 따고 전문의 자격 취득차 종합병원 등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들은 여러 진료과를 순환하는 인턴(1년), 특정 과목을 정해 수련하는 레지던트(3~4년)들을 이른다. 개원의 단체로 병·의원이 대부분인 의협과 달리 상급병원의 필수의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이들의 사직·파업은 '의료 공백'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빅5의 전체 의사 중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서울대병원 46.2% △세브란스병원 40.2% △삼성서울병원 38.0% △서울아산병원 34.5% △서울성모병원 33.8% 등에 달한다. '펠로우'라 불리는 전임의와 대학 교수들이 최대한 빈자리를 메운다 해도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상당한 진료차질이 예상된다.
정부는
일단 이날부터 진료유지명령 관련 현장점검에 착수하기로 했다. 점검 결과는 현황이 파악대는 되로 신속·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방침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중증·응급 치료가 거부되는 등 실제 피해를 입은 국민 사례에 대한 상담·법률 지원(법률구조공단 연계)을 수행하는 피해신고 지원센터도 본격 운영한다. 관련 상담 및 법률소송 지원을 원하는 국민은 국번 없이 '129'로 전화하면 된다.
정부는 "불법적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처할 방침임을 재확인했다"면서도 전공의의 사직·휴진 철회 등 의료계의 자제를 거듭 호소했다.
박 2차관은
"정부는 젊은 의사들이 집단행동 전면에 나서서 위기로 내몰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흰 가운은 환자에게 생명과 희망"이라며 "집단행동이 아닌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가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중수본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6시 기준으로 전공의 수 상위 수련병원 100곳 중 23곳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715명이다. 다만, 정부의 방침에 따라 사직서가 수리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한 총리 주재로 '의사 집단행동 대응 관계장관 회의'를 연 정부는
의료대란에 대비한 비상진료체계 운영방안을 논의했다.
우선 소방청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중증도에 따른 환자 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송지침을 적용한다. 응급환자의 신속·정확한 전원을 위해 중앙응급상황실을 20일부터 확대 운영하는 한편, 올 5월부터 개소 예정이었던 광역응급상황실 4곳도 내달부터 조기 가동할 계획이다.
집단행동 기간 응급의료기관의 24시간 응급실 운영 및 비상진료체계 유지 여부도 철저히 점검한다.
전공의가 특히 많이 근무하는 대형병원들은
병원별 비상진료대책에 따라, 응급·중증 수술, 중환자실과 투석실 등이 최대한 정상 가동될 수 있도록 진료체계를 전환한다. 경증·비응급 환자는 종합병원 등으로 연계·전원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의 평일 진료시간을 확대하고 주말·공휴일 진료도 실시한다. 12개의 국군병원 응급실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필요 시 보건소 연장 진료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집단행동 기간에는 의료접근성 보장을 위해 병원급을 포함한 '모든 종별 의료기관'에서 대상환자 제한 없이 비대면진료를 전면 허용한다. 상황이 장기화돼 진료상 심각한 차질이 우려될 경우엔 공중보건의와 군의관 인력도 주요 의료기관에 지원 배치한다.
중수본은 빅5를 중심으로 일부 암환자의 수술이 연기되는 등 전공의 사직 여파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을 놓고 "아직까지는 수술 등이 무기한 연기되거나 진료에 큰 차질을 빚는 정도는 아니라고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2차관은 "비대면진료를 상급병원의 중증환자 수술 등에 (적용)하겠다는 대책이 아니다"라며 "중증은 현 상급병원에서 가급적 진료를 받도록 하고, 나머지 비중증·비응급, 외래 등을 2차 병원이나 연계된 병원으로 부담을 나누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