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일진의 크기' '중고거래' 작가이자 웹툰 아카데미 강사·멘토로 활동 중인 주명 작가. 김민수 기자 2013년 카카오웹툰(다음웹툰)에 첫 연재된 '일진의 크기'는 당시 매주 연재와 동시에 실시간 검색에 오를 정도로 커다란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학교 폭력 가해자였던 일진 학생이 키가 작아지는 희귀병에 걸려 반대로 학교 폭력 피해자가 된다는 줄거리의 이 웹툰은, 지금은 일진 학원물이 넘쳐나지만 당시 메이저 플랫폼 중심으로 웹툰 시장이 급성장하며 대표 웹툰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주명 작가(본명 이주명)는 일찌감치 만화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현 만화콘텐츠스쿨)로 진학했다. 본격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도 대학 때였다. 수많은 만화가 지망생들과 연을 쌓으며 스토리와 콘티를 짜고 작품을 만드는 일이 즐거웠다.
능력 있고 운이 좋은 친구들은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플랫폼에 진출해 연재 기회를 얻었다. 주명 작가도 2009년 다음웹툰에 응모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6위에 입상했지만 연재 기회는 1, 2등에게만 주어졌다. 하지만 만족했다. 스스로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성취감 때문이었다.
2010년 졸업 후 친구인 송래현 작가(작품 '리턴', '천지전능')의 제안으로 웹툰 작가팀인 '풍경'에서 작품 준비를 하다 인기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훈(HUN) 작가 눈에 들어 차기작 '해치치않아' 어시스트 작가로 일했다.
"훈 작가님이 작업실을 크게 옮기면서 스토리 작가인 윤필 작가도 같이 와서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같은 공간에서 만나게 됐죠. 함께 있다 보니까 서로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웹툰으로 만드는 작업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졌어요. 크고 작은 단편 공모전에 나가면서 수상도 몇 차례 했죠. 윤필 작가님은 이미 다른 작품을 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장르를 해보고 싶어 했어요. 서로 합이 잘 맞는구나 싶어 바로 '일진의 크기'를 기획했죠."
웹툰 '일진의 크기' '중고거래' 작가이자 웹툰 아카데미 강사·멘토로 활동 중인 주명 작가. 김민수 기자주명 작가는 협업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각기 자신의 작품을 그리고 만들지만 같은 공간 안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데는 대화만큼 중요한 것이 지론이다. 회사는 아니지만 데뷔 전부터 여러 작가들과 따로 또 같이 일하는 시스템이 긍정적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만화인들의 터전인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다른 두 명의 작가와 함께 작업실을 쓴다.
'일진의 크기' 이후 2020년 스릴러 미스터리 '중고거래'를 연재했다. 언뜻 휴재기간이 많아 보였다. 작가들에게 휴재는 사실상 백수와 다름없다.
"휴재는 완벽하게 백수가 된다는 얘기죠. 수입이 끊깁니다. 그래서 마감의 부담 이상으로 연재 종료에 대한 부담도 크죠. 차기작을 준비했는데 연재를 못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관심사가 다양해서 작품 기획을 꾸준히 못했던 것 같아요. 제가 기계나 AI, 프로그램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실제 많은 작가들도 하지만 생계형 반, 관심사 반으로 웹툰 작업에 필요한 배경이나 리소스 작업물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고, 블로그 리뷰,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도 개설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있어요. '연재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자꾸 미루게 되네요."
실제 그는 미래 작가들을 위한 강연 활동에도 열심이다. 카카오페이지 멘토작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아카데미 강사, 서울경제진흥원(SBA) 아카데미 웹툰 강사, 서울웹툰아카데미(SWA) 멘토 작가 등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아는 사람은 안다'는 그의 실력을 다시 볼 수 있는 차기작은 언제쯤 나올까.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내 그의 작업실에서 올해 다작을 준비 중이라는 주명 작가를 노컷뉴스 [만화인]이 만났다.
주명 작가의 웹툰 '일진의 크기' '중고거래'. 카카오페이지 갈무리 연재도 중요하지만 '크리에이터'로서의 삶도 즐겨
- 인기작 '일진의 크기'와 후속작 '중고거래' 이후 연재가 뜸하다.= 큰 인기를 얻었던 '일진의 크기'는 2013~2017년까지 연재했고, '중고거래'는 3년 뒤인 2020~2021년 연재했으니, 최근 2년 정도 공백이 있는 것 같다. 신작에 대한 준비는 늘 한다. 그림을 안 그린다기 보다 다양한 크리에이터 활동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작품 구상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IT 제품이나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많아 리뷰도 하고, 웹툰에 필요한 배경이나 캐릭터 등 리소스를 만드는 일도 했다. 코로나 이후에는 웹툰 작가를 양성하는 여러 아카데미에서 강사와 멘토로 활동하면서 작품 연재 기회를 놓쳤던 부분이 없지 않다.
- '일진의 크기'가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웹툰계에서 휴재는 백수를 의미한다는데, 책으로 출판도 하고 수입이 괜찮았던 모양이다.= 데뷔라는 의미에서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엔 직업 작가로서 만화를 그릴 수 있다는 성취감을 빼면 연재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지금처럼 별도의 수익배분(RS)이 없던 시절이어서 원고료 월 180만원을 스토리 작가와 둘이 나누면 생활비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출간된 만화책은, 일본과 달리 국내 출판 시장에서 만화 장르의 입지가 적다 보니 초판(2천권) 정도만 나갔던 것 같다. 그래도 데뷔작으로 여러 성과를 낸 상징성이 있는 작품이다.
아울러 많은 작가들이 휴재기간 또는 전문 작가로 많이 하는 일인데, 웹툰 제작에 필요한 리소스 파일들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관심사가 다양하다 보니 신작을 기획하고는 연재할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2022년부터는 여러 웹툰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경제적인 부분은 조금 보탬이 됐다. 작품 연재에 대한 꿈은 모든 작가들이 가지고 있지만 생태계가 넓어지면서 플랫폼 연재 이면에 작가들의 생태 활동도 다양해졌다.
웹툰 '일진의 크기' '중고거래' 작가이자 웹툰 아카데미 강사·멘토로 활동 중인 주명 작가. 김민수 기자 - 인기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 훈 작가와 같은 작업실에 있었다고 들었다. 데뷔는 어떻게 하게 됐나? = 2009년 다음웹툰 공모전에서 6위에 올랐지만 신인에게는 메이저 플랫폼 연재 기회 문턱이 매우 좁다. 그때도 1, 2등 정도만 연재 기회를 줬던 것 같다. 2010년 늦깎이 졸업을 하고 친구인 송래현 작가의 권유로 만화진흥원에 입주해 있던 웹툰 작가팀 '풍경'에 잠시 있다가 작업실 윗층에 있던 '은밀하게 위대하게' 훈(HUN) 작가님이 함께 일해보자고 하셔서 어시스트 작가로 1년 정도 일했다. 그때 참여한 작품이 '해치지 않아'였다.
훈 작가님이 작업실을 크게 옮기면서 스토리 작가인 윤필 작가님을 만났다. 함께 크고 작은 단편 공모전에 나가면서 수상도 몇 차례 했다. 윤필 작가님은 이미 여러 다른 작품을 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장르를 해보고 싶어 했다. 서로 합이 잘 맞는구나 싶어 바로 '일진의 크기'를 기획하고 다음에 연재할 수 있었다. 특히 훈 작가님 작업실에서 함께하는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의 스승님이시다.
- 작가 데뷔 후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직업 만화가라는 길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부모님이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신데 만화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그저 내가 좋아한다고 하니까 반대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셨다. 제가 좋아하니까 지금까지도 응원해주신다. 어릴 때 '드래곤볼' 같은 출판 만화를 보던 세대인데, 대학에 진학할 즈음 만화판은 웹툰으로 흐름이 완전히 바뀌어가던 상황이었다. 웹툰을 그리는 태블릿이 막 나오고 있었는데, IT 기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 호기심이 커졌다. 채색 프로그램과 포토샵도 써보고 온라인에 그림도 많이 그리면서 푹 빠져버렸다. 대학 전공이 만화창작과인 만큼 주변 친구들이 만화를 그리니까 만화가가 되는구나 생각했다. 대학 친구인 송래현 작가가 그때 다음 만화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제대 후에 나도 대상을 타야겠구나 하는 야심이 커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젊은 호기였던 것 같다.
- 여러 웹툰 아카데미에서 강사와 멘토로 활동 중이다. 10년 전 데뷔 당시와 지금 다른 점이 있나?= 예전에는 '만화가는 엉덩이로 그리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만큼 기본적이고 열심히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도 공감한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도 웹툰을 만들면 여러 이유로 완성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스토리텔링과 작화의 기본기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강생들에게 옛날처럼 '엉덩이로 그리라'고는 하지 않는다. 요즘 작가 지망생들은 트렌드 분석과 정보 습득이 매우 빠르다. 유튜브 쇼츠 등 흥미로운 콘텐츠와 소재 발굴에도 뛰어나다. 예전에 만화가는 정도를 걷는 사람의 이미지였다면 요즘은 '콘텐츠 크리에이터' 같은 다재다능한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수강생, 작가 지망생들과 이야기해 보면, 자신만의 작품을 그리는 독립 작가나 연재 작가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과거보다 경제적인 수입 면에서 현실화된 측면도 있겠지만, 스토리 작가나 그림 작가, 전문 보조작가, 콘티나 스케치 전문 작가, 관련 기업에 취직을 원하는 경우도 많다. 웹툰 작가라는 것을 정형화 하기 힘들다. 선택지가 다양해졌다. 모두 존중 받는 전문 영역이 되어가는 추세다.
웹툰 '일진의 크기' '중고거래' 작가이자 웹툰 아카데미 강사·멘토로 활동 중인 주명 작가. 김민수 기자 - 웹툰의 인기로 작가 양성이 늘고 연재 작품들도 하루 수백 편씩 쏟아진다.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흔히 얘기하는 '압정형 구조'가 되고 있다. 플랫폼에서 웹툰 상위 작품들은 좁은 핀처럼 매우 적고, 중하위권 작품들은 넓은 머리부문처럼 많다. 핀 꼭대기에 올라가긴 더욱 힘들어지는 왜곡된 구조다. 네이버와 카카오 양대 메이저 플랫폼이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양하고 건강한 연재 플랫폼들이 생겨나야 한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네이버와 카카오가 더 노력해줘야 한다. 다양하고 건강한 플랫폼이 늘어나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도 좋다. 다만, 워낙 네이버와 카카오가 지배적 위치에 있다 보니 해결점을 찾기가 어려운 점은 아쉽다.
만화를 그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웹툰 하면 네이버라고 말한다. 카카오도 네이버와 함께 양대 플랫폼이고 다음만화로 먼저 시작한 측면도 있는데, 일반인 중에는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선한 경쟁구도 없이 특정 브랜드나 플랫폼에 편중되는 것은 시장 성장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상식이다. 경험적으로도 알지 않나. 풀어가야 할 고민점이다.
- 웹툰을 공급하는 에이전시가 급증하고 있는데, 공급 과잉 문제와 일반 독립 작가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에이전시가 작가들의 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작가들이 기업화 된 에이전시와 경쟁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양질의 작품이 만들어지고 독자들이 원하는 작품 수요에 특화돼 있는 것도 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개인 작가로서는 경쟁 상대가 안 되겠지만 작가 친화적이고 공생하기 위해 노력하는 에이전시들도 많다. 문제는 웹툰 인기에 우후죽순 에이전시가 만들어지면서 투자받고 웹소설 판권 사서 시스템적으로 만들고 사라지는 '떴다방' 같은 경우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피해 입은 작가들도 많지만 하소연할 데가 없다.
- 개인 작가들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을까?= 많은 작가들이 에이전시와 전속이 아니더라도 계약 작업을 많이 한다. 그 중에 MG(미니멈 개런티·Minimum Guarantee)가 있다. '최소보장금액'이라고 해서 참여한 작품의 미래 잠정 수익을 일부 먼저 받는 것이다. 웹툰 업계에서 자리잡은 수익방식은 아닌데, 연재가 당장 안 돼도 작업하는 동안 바로 바로 돈이 나오니까 소득이 필요한 작가들에게는 단물과 같다.
무일푼으로 연재 예정인 초기 10회 분량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플랫폼이 에이전시에게 10회 '세이브'(사전제작) 분량에 대한 MG를 우선 지급하는 시스템을 개인 작가들에게까지 확대한다면 제작비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하고 작품 제작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웹툰 '일진의 크기' '중고거래' 작가이자 웹툰 아카데미 강사·멘토로 활동 중인 주명 작가. 김민수 기자 - 차기작은 언제쯤 볼 수 있나?= 올해 단편과 장편 다작을 준비 중에 있다. 명랑 작가의 웹툰 작가팀 '명작크루' 작가들과 함께 재담미디어 '쇼츠'에 단편선 연재를 준비하고 있다. 상반기 중 공개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학원배틀물을 기획하고 있다. 히어로 아카데미물 같은 능력 배틀이 될 것 같다. 10화 정도의 단편이다.
단편 소설을 각색한 작품도 이르면 3월 선보일 예정이다. '호의'라는 문학 소설인데, 나의 호의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쳤는가, 그게 좋은 건지 오히려 민폐를 끼쳤는지를 생각해보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야기에 끌려서 웹툰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현재 콘티를 기획 중이다. 플랫폼 연재도 하반기에 준비하고 있는데, 개그 판타지물이다. 콘티와 시놉시스가 완성돼서 우선 컨펌을 기다리고 있다.
- 아직 못 이룬 꿈이 있다면?= 데뷔작 '일진의 크기'가 잘 됐기 때문에 시간이 한참 지났더라도 신작에 대한 부담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독자들과 만나고 평가를 받는 일이기도 하니까. 대박 작가는 누구나 꿈꾸는, 작가들 세계에서는 보편적인 꿈인 것 같다. 작가로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지만 후배들을 양성하는 강사의 일도 꾸준히 해나가고 싶다. 연재를 해야 현장 강사로서도 도움이 된다. 신뢰와 지혜를 줄 수 있는 웹툰 작가이자 웹툰 강사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