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윤한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지난해 8월 한국인 최초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받은 윤한결(30)이 오는 9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라벨,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서울 롯데콘서트홀)을 지휘한다. 수상 이후 첫 국내 무대다. 스트라빈스키 '풀치넬라 모음곡'과 '불새 모음곡', 라벨 '피아노 협주곡'과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인다. '라벨 스페셜리스트' 장-에프랑 바부제가 협연한다.
윤한결은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예전에 이 대회에 나갔던 사람만 봐도 수준이 높아서 저는 참가조차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까지 좋아 기쁘다"며 "이제 원하지 않는 대회에 안 나가도 된다는 안도감도 느꼈다"고 말했다.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은 젊은 지휘자의 등용문으로 꼽히는 국제 대회다.
윤한결은 지휘와 작곡을 겸한다. 어릴 적 피아노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작곡을 시작한 그는 서울예고(작곡 전공)를 중퇴하고 독일 뮌헨 국립음대에 입학해 작곡과 지휘, 피아노를 전공했다.
"독일로 건너간 후 오랫동안 작곡에 집중하다가 2018년 초부터 지휘에 전념했어요. 20대 초반에 참가했던 바렐 작곡 콩쿠르와 제네바 콩쿠르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못 거두니까 (작곡에 대한) 목표의식이 사라졌죠. 대신 좋아하는 지휘에 올인했어요. 작곡을 통해 제 꿈을 괴롭게 키워가고 있었다면 피아노와 지휘를 통해 제 삶이 행복해졌죠."
지휘자로서 입지가 점점 탄탄해지고 있다. 2019년 그슈타트 메뉴인 페스티벌에서 역대 최연소로 네메 예르비 상을 받은 그는 같은 해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캠퍼스 지휘'에서 3위에 올랐다. 2021년에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주최한 제1회 KNSO 국제지휘콩쿠르에서 2위와 관객상을 수상했다. 오는 8월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하며 공식 데뷔 무대를 갖는다.
2022년 지휘자 정명훈이 소속된 기획사 아스코나스 홀트와 전속계약을 맺은 윤한결은 "젊은 지휘자의 경우 큰 무대에 서거나 좋은 오케스트라와 협업할 기회가 적다"며 "KNSO 국제지휘콩쿠르 수상 이후 연주 요청이 많이 들어와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늘었다. 덕분에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받기 전 이미 소속사를 찾았다"고 말했다.
지휘자 윤한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예나 지금이나 지휘는 즐겁다. 그는 "지휘자는 소리 내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변화를 준다는 점이 좋다. 단원, 매니저와 소통하는 것도 재밌다"고 웃었다. "작곡은 아침에 뭔가 떠올랐는데 저녁에 생각이 안 나거나 '아 이거다' 싶었는데 다음날이 되면 너무 별로인 때가 많아요. 이것도 과정의 일부이지만 보이는 결과가 없으니까 힘들죠. 반면 지휘는 이미 완성된 작품을 연주하고 동작 한 번으로 멋진 소리가 나오니까 바로 느껴지는 게 있어요."
그가 꿈꾸는 지휘자상은 "지휘자에게 인정받는 지휘자"다. 지휘자의 여러 자질 중 특히 지휘 테크닉을 중요하게 여긴다. "테크닉과 음악의 퀄리티가 꼭 비례하지는 않지만 말하지 않고도 음악가들에게 지시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지휘자의 테크닉은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저는 지휘할 때 30~40%는 테크닉에 집중하고 있어요."
윤한결이 꼽은 '지휘 테크닉이 가장 좋은 지휘자'는 카를로스 클라이버(1930~2004)다. 그는 "동작만으로 미세한 템포와 소리를 조절했다고 들었다. 자세 하나만으로 소리와 음악의 흐름을 바꾸는 미법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지휘자로서 목표에 대해서는 "브루크너 교향곡,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레퍼토리로 삼고 싶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하기 힘든 말러의 곡에도 계속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음악적 뿌리인 작곡을 내려놓은 건 아니다.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자신의 신작을 직접 지휘한다. 2021년 '그랑드 힙합' 이후 3년 만의 신작이다. 윤한결은 "주최 측에서 현대곡을 하나 지휘해 달라길래 '내가 하나 쓸까?'라고 했는데 다음날 바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며 "두 달간 매달렸는데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10마디 썼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