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도피' 논란을 일으킨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발언하고 있다. 인천공항=박종민 기자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귀국했다.
이 대사는 당초 다음 달말쯤 열릴 정례 공관장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방산 관련 회의가 확정되며 귀국을 앞당겼다.
지난해 방산 관련 화상회의를 한 사례는 있지만 특정국 대사들만 서울로 부르는 대면 회의는 드물어 총선을 앞두고 여론 수습 목적으로 이 대사 조기귀국을 위한 회의가 급조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주된 쟁점은 이 대사가 출국 11일 만에 귀국하게 된 이유인 '방산 관련 공관장 회의'의 계획과 관련된 사항이다. 또 그가 회의를 나흘이나 앞두고 급거 귀국한 데 대해서도 지적이 잇따르고 있지만 외교부는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대사는 21일 오전 싱가포르를 거쳐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기자들과 만나 "제기됐던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해서는, 이미 수 차례에 걸쳐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렸다"며 "체류하는 기간 동안 공수처 일정이 잘 조율돼 조사받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시 귀국한 것은 방산협력 관련 주요국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고, 향후 일정과 관련해서는 방산협력 관련 업무로 상당히 일이 많을 것 같다"며 "그 다음주는 한-호주간 계획돼 있는 외교·국방장관 2+2 회담 준비와 관련된 업무를 많이 하게 될 것이고, 이 두 가지 업무가 전부 호주대사로서 해야 할 중요한 의무이다. 그 의무에 충실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외교부는 전날 오전 보도자료를 내고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 주관으로 "오는 25일부터 주요 방산 협력 대상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카타르, 폴란드, 호주 등 6개국 주재 대사들이 참석하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임수석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그간 연례적으로 개최된 전체 공관장 회의 기간 중에도 방산 부문을 다루는 별도 세션을 개최한 바 있다"며 "제한된 시간과 많은 참여 인원으로 인해서 심도 있는 협의가 거의 불가능했던 상황이고, 방산 부문 소그룹 공관장회의를 별도 개최해야 한다는 방침이 미리 정해져 이번 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외교부가 각 대사들을 서울로 불러 특정 분야에 대한 공관장 회의를 개최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지난해 외교부와 국방부 차관을 공동위원장으로 출범한 '권역별 방산수출 네트워크 회의'는 유럽 지역 공관장들이 화상으로 참여했다.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4강(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과 유엔(뉴욕) 주재 대사를 불러 공관장 회의를 진행한 사례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2017년 당시에도 4강 대사 등만 따로 불러 공관장 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여론을 수습할 목적으로 이 대사 조기 귀국을 위해 회의를 급조했다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외교부는 회의 일정이 언제 최종적으로 결정·통보되었는지에 대해 "본부와 참석 대상 재외공관들의 일정·협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됐다"며 사실상 설명을 피하고 있다.
'해외 도피' 논란을 일으킨 이종섭 주 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인천공항=박종민 기자
이 뿐만이 아니다. 이 대사는 25일부터 열리는 공관장 회의보다 나흘이나 앞서 귀국했고, 호주로 다시 돌아가는 날짜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대사 스스로 공관장 회의와 함께 '2+2 외교·국방장관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목적이라 말하긴 했지만,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주재국에 파견된 대사가 반드시 본국에 돌아와서 장관회담을 준비해야 한다는 설명은 납득이 쉽지 않다.
외교부 당국자는 21일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준비할 업무의 분량이 상당히 많다. 유관부처간 입장을 조율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신규 사업을 발굴한다든가, (이 대사의) 전문 분야인 국방·방산 분야 신규 사업 발굴, 주요 계약 체결 이행 등 구체적인 사항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대사가 귀국하기 위해서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외교부에 따르면 공관장 회의는 '공무 수행 목적의 귀국'으로 취급되며, 입출국 일정 등을 고려해 앞뒤로 하루 정도씩 숙소를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건강검진 등 개인적으로 필요한 일정이 있으면 한국 체류 기간 연장 자체는 가능하지만, 숙소는 지원되지 않는다.
즉, 이 대사의 일정 가운데 '공무 목적 귀국'에 해당하는 날에 대해서는 국민 세금으로 숙소가 지원된다. 이번에 이 대사가 참여하는 '방산 관련 공관장 회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외교부가 이 대사의 국내 일정 가운데 어느 부분이 '공무'에 해당하고 그렇지 않은지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의 잇따른 질문에 "공무 외의 목적으로 귀국하는 경우 '일시귀국'이라고 표현하며, 이 경우 예규('공무이외 목적의 일시귀국 및 제3국여행에 관한 지침')에 따라 장관의 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면서도 "정부가 (이 대사의) 개별적인 일정까지 공개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