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 개인 소장. 리움미술관 제공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여성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한 대규모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오는 27일부터 6월 16일까지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선보인다. 한국, 중국, 일본의 불교미술에 담긴 여성의 번뇌와 염원, 공헌을 조명한다.
전시 제목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은 '숫타니파타'(석가모니부처의 말씀을 모아 놓은 최초의 불교 경전)에서 인용한 문구다. 불교를 신앙하고 불교미술을 후원·제작했던 여성들을 진흙에서 피되 진흙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연꽃에 비유했다.
전 세계 27개 컬렉션에서 불화, 불상, 사경과 나전경함, 자수, 도자기 등 불교미술 걸작품 92건을 한 자리에 모았다. 이중 한국에서는 국보 1건, 보물 10건, 시지정문화재 1건 등 40건, 해외에서는 52건을 출품했다. 이건희 회장 기증품 9건도 포함됐다.
석가탄생도. 혼가쿠지 소장. 리움미술관 제공석가출가도. 쾰른동아시아미술관 소장. 리움미술관 제공여성은 불교 안에서 어떤 존재였고, 무엇을 보았길래 불교에 열렬히 귀의했을까.
전시 1부는 불교미술 속에 재현된 여성상을 인간, 보살, 여신으로 나눠 지난 시대와 사회가 여성을 바라본 시선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 섹션 '여성의 몸'은 동아시아 불화 속 여성이 모성(母性)과 부정(不淨)의 양가적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석가탄생도'와 '석가출가도'에는 각각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과 석가모니의 부인인 구이가 등장한다. 15세기 조선 불전도 세트인 두 불화를 한자리에서 전시하는 건 처음이다. 반면 일본 '구상시회권'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집착과 정념의 근원으로 간주해 부정한 대상으로 묘사했다.
두 번째 섹션 '관음'은 본래 남성이되 모든 중생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는 뭇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관음보살의 응신들이 눈앞에 현현한 듯한 공간으로 꾸몄다. 고려 '천수천안관음보살도',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 고려 '수월관음보살도' 등 명작의 향연이다.
7세기 중반 제작된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백제의 미소'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1907년 부여의 한 절터에서 발견된 후 일제강점기 일본인에게 팔렸다. 문화재청이 42억 원에 매입해 환수하려 했지만 소유자가 150억 원을 제시해 협상이 결렬됐다. 일본인 소장자로부터 전시를 위해 빌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처음 전시한다.
게발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리움미술관 제공 세 번째 섹션 '여신들의 세계'에서는 승리의 여신이자 만복을 준다는 마리지천을 표현한 고려 '은제 마리지천 좌상', 아이를 잡아먹은 귀녀에서 불교를 수호하는 모성의 여신으로 변모한 귀자모 이야기를 담은 중국 '게발도' 등을 전시한다.
전시 2부는 불교미술 후원자와 제작자로 나서는 등 사회와 제도의 제약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으로 살고자 했던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 리움미술관 소장 중세 동아시아 여성들은 '여성의 몸으로는 성불(成佛)할 수 없다'는 교리에도 부처가 되기를 꿈꿨다. 첫 번째 섹션 '간절히 바라옵건대'에 전시된 고려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권1-7'과 고려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 발원문'은 여성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성불을 원했는지 보여준다. 성불에서 나아가 비구니와 하층민 여성을 비롯 500명이 넘는 시주자들이 왕생(往生)을 꿈꾸며 발원한 고려 '은제 아미타여래삼존 좌상'도 눈길을 끈다.
두 번째 섹션 '암탉이 울 때'는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했던 조선시대 왕실의 여성들이 발원한 불상과 불화를 통해 불교도이자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헤아린다.
조선은 불교를 엄격하게 통제했지만 '궁중숭불도'에서 보듯 왕실 여성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불교를 지지했다. 문정왕후(1501~1565)가 발원한 '영산회도'와 '석가여래삼존도', '약사여래삼존도'는 16세기 금선묘(金線描) 불화를 통해 한 시대의 불화 양식을 선도한 후원자로서 왕실 여성의 영향력을 살필 수 있다.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안에서 발견된 '금동 불감과 금동 석가여래삼존 좌상', '금동 불상군' 또한 15세기와 17세기 왕실 여성의 재정적 지원과 신앙심을 바탕으로 조성됐다.
세 번째 섹션 '여공'(女工)은 자수와 복식을 여성의 일이자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살핀다. 일본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는 부정하다고 여겨진 여성의 머리카락으로 부처의 형상을 구현했고 조선 '백지금자 불설아미타경'은 인목왕후가 불행하게 죽은 아들(영창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직접 필사하고 인목왕후를 모시던 궁녀가 자수로 표지를 꾸민 사경이다.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물. 송광사성보박물관 소장. 리움미술관 제공 조선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물' 일습은 나인 노예성이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인 경안군 부부의 장수를 바라며 불상 안에 봉안한 것이다. 저고리와 배자를 포함한 556점의 복장물을 13년 만에 모두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이승혜 큐레이터는 25일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시대와 지역, 장르 구분을 벗어나 여성의 염원과 공헌이라는 관점에서 불교미술을 조명했다"며 "새로운 접근을 통해 전통미술 속에서 동시대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