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댓글부대'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스포일러 주의
때때로 영화는 엔딩이 올라가고 영화관 밖을 나서는 순간,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일 때가 있다. 경계의 모호함을 취한 '댓글부대'는 영화의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돌아간 후 열린 결말이라는 자세를 취하며 관객들을 최종 목적지인 '의문'으로 인도한다.
실력 있지만 허세 가득한 사회부 기자 임상진(손석구)은 대기업 만전의 비리를 취재하지만 오보로 판명돼 정직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제보자가 찾아온다. 자신을 온라인 여론 조작을 주도하는 댓글부대, 일명 '팀알렙'의 멤버라고 소개한 제보자는 돈만 주면 진실도 거짓으로, 거짓도 진실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기자 출신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댓글부대'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오른 안국진 감독이 연출을 맡아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여기에 대세 배우 손석구를 비롯해 김성철, 김동휘, 홍경 등 충무로가 주목하는 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영화 '댓글부대'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댓글부대'는 음모론처럼 떠돌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다방면으로 활동한 정황이 드러나며 사회적인 사건으로 번진 댓글부대와 그들이 펼치는 여론조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에 뿌리를 둔 '댓글부대'가 추구하는 건 '모호한 경계'다.
'댓글부대'는 시작부터 영화와 현실의 경계, 진실과 거짓의 경계, 그 사이를 명확하게 나누지 않고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과연 이 영화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그리고 영화 속 내용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각색한 스토리인지 헷갈리게끔 한다. 마치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는 극 중 대사처럼 말이다.
감독의 이러한 의도는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명확하게 드러난다. 촛불집회와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에 이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야기라는 현실과 한때 민간인 댓글부대 논란을 일으켰던 삼성그룹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속 대기업의 모습은 말 그대로 현실과 영화를 경계 없이 오간다. 이때부터 감독의 의도는 시작됐고, 사람들은 영화의 오프닝부터 다큐멘터리 같기도 영화 같기도 한 '댓글부대'의 흐릿한 경계선에 발을 들이게 된다.
진실 여부와 그 실체에 대한 것보다 사실 '댓글부대'와 감독이 가져가고 싶은 것은 아마 '질문'일지 모른다. 영화 속 이야기에 혼란함을 느낀 관객이라면, 자신이 알고 싶고 알고자 하는 진실을 위해 사건들을 하나하나 검색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화 '댓글부대'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그 과정에서 관객이 생각할 수 있는 건 '왜?'다. 왜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고, 왜 이러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등을 질문하는 사이 영화와 현실 사이 경계의 모호함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현상에 쐐기를 박는 건 영화의 열린 결말이다. 기자와 팀알렙 사이 과거와 현실, 서로의 이야기를 속도감과 긴장감을 갖고 이어가던 영화는 어떻게 보면 상업영화답지 않은 선택을 한다. 모호한 결말, 열린 결말. 개운함보다 어딘지 모르게 찝찝함을 남길 수 있는 결말에서 관객들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사이다' 결말을 냈다면, 처음부터 현실과 영화의 경계,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가져가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는 무용지물이 된다. 열린 결말이 안긴 나름의 충격요법은 '도대체 왜?' '그래서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고, 하나의 정리된 결말로 영화가 영화관 안에서 끝나지 않고, 비록 찝찝한 감정을 안게 되겠지만 영화관 밖으로 계속 이야기를, 질문을 끌고 나가게 한다.
그래서 '댓글부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으며, 도대체 영화 속 어디까지가 진실이었던 건지, 그리고 왜 우리는 인터넷 속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말에 쉽게 흔들리고 선동되는지 등을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영화 '댓글부대'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영화와 현실의 모호한 경계는 그렇게 관객의 내면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댓글부대'라는 영화적인 현실, 현실 같은 영화에 관해 많은 것을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의 방식으로 '우리'의 언어를 하는 팀알렙과 같은 댓글부대에 인터넷 속 우리가 현혹됐던 것처럼, '댓글부대'와 감독은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그렇게 관객들에게 영화를 현실로 가져가고, 좀 더 영화에 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결말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업 영화의 문법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보통의 상업 영화에서 기대하는 지점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대리만족, 즉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댓글부대' 흥행은 관객들이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영화를 바라볼 것인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기존 상업 영화 문법을 탈피한 '댓글부대'가 가고자 하는 건 '통쾌한 시원함'이 아닌 혼란스러운 현실에 대한 직시와 질문이다. 실제로 국가 예산으로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영하고 여론조작을 한 혐의로 전 국가정보원장은 징역형을 받는 등 현실 속 댓글부대 관련 사건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활동하며 흑색선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십자군 알바단',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의 150명 댓글부대 논란도 있었다.
영화 '댓글부대'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이 수많은 댓글부대의 여론조작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선동에 휩쓸렸고, 휩쓸리지 않았어도 기묘한 분위기 한가운데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댓글부대의 '실체'를 궁금해 하지만, 영화가 흐릿하고 모호한 경계를 취한 것처럼 '실체' 그 자체보다 여론이 어떻게 조작될 수 있는지,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지 모른다.
영화가 관객에게 고민을 남긴 것 역시 실체 없는, 실체가 보이지 않는 현실의 댓글부대에 대한 의문이다. 이는 결국 실체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가 실제로 경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리기 위함일 수 있다. 실체 없는 글,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없는 글에 무비판적으로 끌려다니기보다 의심하고 질문하는 것, 그것이 영화가 남긴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
다시 말해 영화는 우리가 현실에서도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질문하고 고민해 보길 바랐는지 모른다. 그것이 이 영화가 모호함과 열린 결말을 통해 관객들을 최종적으로 이끌고자 했던 목표지점이리라.
그렇게 영화관 밖을 나가는 순간, 스크린에서 현실로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비로소 '댓글부대'는 '진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게 영화 속 열린 결말을 닫는 건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어떤 결말로 향할지는 결국 어떤 의문을 가지고 현실 속 여론조작의 징후들을 바라볼 것인가에 달렸다.
109분 상영, 3월 27일 개봉, 15세 관람가.
영화 '댓글부대' 포스터.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