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인 '빅5' 가운데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하는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한 30일 서울대병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종민 기자[앵커]의·정 갈등이 70일 이상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일명 '빅5'를 포함한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이 오늘(30일)부터 순차적으로 주 1회 휴진에 들어가면서, 환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실제 휴진 규모나 환자들이 체감한 현장상황은 어떤지, 보건복지부 출입기자와 함께 짚어 보겠습니다. 이은지 기자.
[기자]네, 저는 지금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나와 있습니다.
[앵커]네, 서울대병원도 중증·응급을 제외한 진료과에서 오늘 하루 진료를 중단하겠다고 했잖아요. 실제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기자]네, 우선 병원 곳곳마다 교수들의 휴진을 공지하는 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전에 현장 혼란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조치인 셈인데요. 제가 있는 서울대병원 본관 1·2층에는 어제(29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작성한 성명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서울의대 교수들은 병원 직원들에게 전하는 글을 통해 '갑작스러운 교수들의 휴진으로 여러분의 부담이 늘어나게 돼 대단히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전했습니다. 또
'남아있는 교수들은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진료 현장을 지킬 것이나, 진료는 부득이하게 더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각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작성한 안내문도 발견됐는데요.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진료실 입구에는 'A교수가 오늘 휴진한다'는 공지가 붙었다가 철거됐고, 신촌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앞에도
'B교수의 오늘 외래진료는 중증환자에 국한해 오전에만 이뤄지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돼 있었습니다.
연세대 의대 교수들의 경우, 오늘 오전 신촌세브란스 본관 1층에 나란히 서서 대정부 항의 성격의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든 피켓에는 '전공의와 학생이 복귀할 수 있도록 (의대 증원) 원점 재논의!', '전공의와 학생이 없는 한국 의료는 미래도 없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앵커]네 그렇군요. 기존에 교수들이 예고한 대로 실제 진료 중단이 어느 정도 확인된 거네요.
[기자]그렇습니다. 앞서 서울대와 연세대, 또 이날 휴진에 동참한 고려대가 속한 전국 의과대학교수 비대위는 지난 26일 정기 총회를 통해 '주1회' 휴진을 정례화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당시 비대위는 두 달 넘게 전공의 빈자리를 채워 온 교수들이 주당 70시간에서 100시간에 달하는 과로로 '번아웃' 상태라며, 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한 진료를 위해 주당 근무시간을 60시간 이내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당직 후 충분한 휴식 보장을 위해서는 예정된 수술과 검사, 외래 일정의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또 5월이면 대학별 의대 정원을 포함한 2025학년도 입시요강이 확정되기 때문에 전공의·의대생이 돌아올 수 있도록, 정부의 증원 철회를 마지막으로 압박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안석균 연세대 의대 비대위원장의 목소리로 들어보시겠습니다.
[안석균 연세대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학생하고 전공의가 무사히 복귀하는 게 (휴진의) 목표인 것이고요. 그러려면 이제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원점 재검토해야 될 텐데…환자한텐 미안하죠. 근데 우리도 쉬긴 쉬어야 되니까…."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한 환자가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쓴 성명서를 보고 있다. 주보배 기자[앵커]'환자한텐 미안하다'는 이 교수의 말처럼, 지금 가장 큰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건 결국 환자와 보호자들일 텐데요. 진료 차질이 더 심해지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기자]네, 맞습니다. 환자들은 휴진 직전부터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이라 할 정도로 큰 불안감을 토로했는데요. 병원 측으로부터 미리 휴진 사실을 공지 받지 못해 헛걸음을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검사나 진료를 앞두고 있던 환자들은 제때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할까 맘을 졸이고 있었는데요.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80대 환자 고모씨와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60대 조모씨의 음성으로 들어보시겠습니다.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 내원 환자들]"산부인과도 취소되지, 안과도 취소되지, 이건 예약하려니까 예약도 안 된다 그러지. 큰 병원에 오고 싶어서 와요? 하루를 사는 게 그냥 조마조마하죠."
"선생님들이 안 오신다든가, 파업을 한다든가, 진료를 거부한다든가 그런 것이 두렵죠." 무엇보다 환자들은 '길어도 한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의료공백이 석 달째 이어지고 있는 데 대해 막막함을 드러냈습니다.
다만,
오늘 휴진은 중증·응급·입원환자 등을 빼고 진료과별로, 또 교수 개인 사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결정된 만큼 당초 우려된 '대란'은 없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 측은 병원 차원에서 따로 휴진 규모를 집계하지 않았다고 밝혔고요, 보건복지부도 '일부 교수 차원의 휴진'이라며 "전면적으로 진료를 중단하는 병원은 없어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앵커]그렇군요.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오늘 내내 이번 사태와 관련된 긴급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고요?
[기자]네 그렇습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대위는 아침 9시부터 조금 전 (오후) 5시까지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이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진행했는데요.
방재승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서울의대 교수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해 의·정 사태에 대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서울대병원 전공의 대표는 '정부가 전공의를 악마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을 한 목소리로 비난했는데요, 방 위원장의 목소리로 들어보시겠습니다.
[방재승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진정한 의료개혁은 필수의료·지역의료를 제대로 살리는 길인데, 정부는 이를 단지 의사 수 증원을 최선봉에 내세워서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이 진정한 의료개혁'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을 씌워 국민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30일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연 긴급심포지엄에서 최기영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가 '2024년 의료대란 사태의 발생과 배경'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앵커]네. 여전히 의대 증원은 전면 백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건데…어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만난 영수회담에서도 의·정 갈등이 논의됐다고 들었는데, 정치권에서는 출구를 찾을 방법이 없는 건가요?
[기자]
네 말씀하신 대로 어제 영수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안건으로 다뤄지긴 했는데요. 현 사태 해결을 위한 생산적 논의가 진행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대표는 윤 정부의 의료개혁에 사실상 공감한다는 입장을 전했는데, 의대 정원 확대 등은 "반드시 해야 할 주요 과제"라며 민주당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민주당은 의정 갈등을 푸는 해법으로 여야와 정부, 의료계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이는 정부와 일대일 대화를 원하는 의료계 입장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내일(5월 1일) 취임을 앞둔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차기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영수회담을 두고 "십상시들의 의견만 반영된 것"이라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앵커]네, 초강경파로 평가되는 '임현택 집행부'가 출범하면 의정 갈등이 더 꼬이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은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