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대학원 한국정책지식센터에서 '의사 정원 어떻게 해야 하나?'란 주제로 열린 정책 & 지식 포럼에서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연합뉴스2025학년도 의대 증원 여부를 확정할 법원 결정이 목전에 다가온 가운데 정부가 '증원 근거'로 내세운 연구보고서 저자가
"2천 명이라는 특정한 숫자를 (정원 증원규모로) 제시한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법정까지 가서 반목 중인 정부와 의료계의 문제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며, 필수의료 인프라 문제 등을 풀기 위한 정책 추진순서에 양측이 합의해야 한다는 해석도 내놨다.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홍윤철 교수는 14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한국정책지식센터가 '의사 정원, 어떻게 해야 하나?'를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서 이같이 밝혔다. 홍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의대 2천 명 증원'의 근거자료로 내세운 3가지 보고서 중 하나인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2020)의 저자다.
정부는 현재 의대증원 효력 집행정지 관련 항고심을 심리 중인 서울고등법원의 석명 요청에 홍 교수의 보고서를 포함한 50여 가지 자료를 지난 10일 답변서로 제출했다.
홍 교수는 '2035년이면 의사 1만 명이 부족하다'는 추계를 토대로 의대 정원을 연 2천 명 늘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정부의 입장을 두고 "과학적이지 않다"며
"추계는 과학적이어야 하는데, 어떤 한 포인트를 찍어서 하는 추계는 그 자체가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홍 교수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2천 증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 왔다.
그러면서 "정부의 의사 수 추계가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의료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면 그걸 고려해서 미래 의사 수를 추계해야 한다"며 "법원이 과학적 진실이 무엇인지를 잘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홍 교수는 또 "우리나라의 절대적인 의사 수가 (정부가 비교 지표로 거론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적은 것은 맞지만, 국민 의료 이용량은 OECD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은 수준"이라며 국내 의료 상황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의료서비스 제공량이 많은데 어떻게 제공자(의사)가 적다고 할 수 있겠나.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우리 의료의 진실을 알 수 없다"며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는 매우 독특하게 행위별 수가제에 기반해 의사가 의료행위를 많이 해야 수입이 늘어나는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행위별 수가제는 그간 업무부담에 비해 보상은 현저히 낮은 필수의료과(科)의 인력 유출을 야기하는 고질적 문제로 꼽혀 왔다. 진찰이나 검사, 처치 등 개별 행위마다 의료서비스 가격을 매겨 대가를 지불하다 보니, 의학적 판단에 근거하지 않은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부풀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 발제 자료 중 발췌. 서울대 행정대학원 한국정책지식센터 제공홍 교수는 이러한 맥락에서 의료행위의 절대 횟수보다는 환자의 치료 결과가 관련보상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행위가 아닌 성과, 결과 등 가치 기반으로 지불체계가 바뀌어야 한다"며, 가령 이같은 경우 1차 의료기관과 종합병원,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이 환자 치료를 위해 팀워크를 얼마나 잘 발휘했느냐 등이 보상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도 고난도·고위험 의료행위 등에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하는 대안적 지불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홍 교수는 이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문제의식이 같은데 싸우는 이유는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중요시하는) 순서가 다를 뿐 내용은 사실상 같아 '왜 이리 치열하게 싸워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의료개혁 4대 과제 중 정부가 '의료인력 확충'(의대 증원)을 가장 강조하면서, 정책패키지의 다른 과제들은 상대적으로 밀려나고 의·정 갈등도 더 크게 불거졌다는 문제의식이다.
홍 교수는 "정부가 4대 개혁과제를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4가지를 다 할 수 있는 방안을 가져왔어야 했다"며 "정부는 의료계와 정책 추진 우선순위 재조정에 합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즉, 큰 틀에서 양측이 의료개혁 방안을 먼저 합의한 뒤, 이를 바탕으로 의사 증원도 재논의하자는 제언이다.
홍윤철 교수 발표자료 중 발췌. 서울대 행정대학원 한국정책지식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