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리창 중국 총리가 면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이재용 회장 등 삼성전자 경영진을 만나 한국 기업들에 대한 투자 확대를 당부했다.
리 총리가 별도 면담을 가진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한데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국과 미국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이 삼성전자의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며 생산 시설을 유치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리창 "더 많은 외국 기업 투자·발전토록 할 것"
중국 외교부와 삼성전자에 따르면 한·중·일 정상회담을 위해 26일 방한한 리창 중국 총리는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는 △우정롱 국무원 비서장 △진좡롱 공신부 부장 △왕원타오 상무부 부장 △쑨예리 문화관광부 부장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등이 배석했다.
삼성전자 측에서는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노태문 삼성전자 DX부문 Mobile eXperience사업부장 사장 △박학규 삼성전자 경영지원 실장 사장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 △양걸 삼성전자 Samsung China 사장 △김원경 삼성전자 Global Public Affairs 사장 등이 참석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리 총리는 "중·한 산업 체인의 공급망은 깊숙이 연결돼있고 이미 상호 이익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며 "삼성의 대(對)중국 협력은 중·한 양국의 상호 이익과 협력 발전의 생생한 축소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양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신흥 산업이 출현함에 따라 협력 전망은 점점 더 넓어질 것"이라며 "양국 기업이 첨단 제조, 디지털 경제, 인공지능(AI), 녹색 개발, 바이오·의약 등 새로운 영역을 중심으로 협력 잠재력을 깊이 발굴하고 중·한 경제·무역 협력의 지속적인 질적 향상을 촉진해 더 나은 협력을 실현하기 바란다"고 언급했다.
리 총리는 특히 "외국 투자 기업은 중국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힘이고 중국의 넓은 시장은 언제나 외국 투자 기업에 개방될 것이고 제도적 개방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면서 더 많은 외국 투자 기업이 더욱 안심하고 중국에서 투자·발전하도록 할 것"이라며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 대한 투자협력을 계속 확대하고 중국의 새로운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기회를 더 많이 공유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재용 "코로나때 도움 감사…한·중 상호 이익 협력 기여할 것"
2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리창 중국 총리(맨 오른쪽에서 두번째) 일행이 면담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회장은 코로나 시절 중국 정부의 도움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한·중 상호 이익 협력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중국 내 투자협력 상황을 소개하면서 중국 내에서 삼성의 생산과 기업 경영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지에 감사를 표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이 회장은 이어 "삼성은 중국 내에서 성장을 견지하고 중국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한·중 상호 이익 협력에 계속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덧붙였다.
이 회장은 "코로나 시절 삼성과 삼성의 협력사들이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신 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삼성전자는 전했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기간에 △삼성전자 중국 출장 직원을 위한 전세기 운항 허가 △시안 봉쇄 기간 중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생산중단 방지 △상하이 봉쇄 기간 중 삼성SDI 배터리 핵심 협력사 조기 가동 지원 등 사업 차질을 최소화하도록 지원했다.
리창 총리는 지난 2005년 시진핑 당시 저장성 서기가 방한했을 때 비서장 직책으로 삼성전자 수원·기흥 사업장을 방문했고, 이번 방한에서 19년만에 이 회장과 한국에서 만났다.
美, 中 반도체 굴기 견제 속 中 2인자 삼성전자 경영진 면담
리창 총리와 이재용 회장의 이번 만남은 세계 각국이 첨단산업의 필수적인 반도체 분야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총력전을 벌이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이번 만남이 향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미칠 영향을 두고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주요국들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고, 특히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쟁탈전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국가 주도의 반도체 산업 육성정책을 가장 먼저 시작한 국가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10~30% 수준인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관련 보조금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1420억 달러(우리돈 약 193조7천억원) 이상의 지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지원책 속에 중국에는 등기자본금 규모 610억 달러(약 83조6천억원) 이상인 반도체 기업 숫자가 200개를 넘어선 상태다.
중국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미국은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어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글로벌 쩐의 전쟁'에 참전한 상태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의 대(對)중국 수출을 막기 위한 조치를 잇달아 내놓은 데 이어 최근에는 중국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내년 50%(현행 25%)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G2의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에도 64억달러(8조7천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리창 총리가 국내기업 중 유일하게 이재용 회장 등 삼성전자 경영진을 면담한 것은 삼성전자가 국내산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 외에 이런 점이 고려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중국에 대한 투자 요청은 SK하이닉스 등 다른 국내 기업에도 공통적으로 요청되는 부분이겠지만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로부터 거액의 보조금을 받고)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가 (다른 기업보다) 삼성전자에 더 신경을 쓴다고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이종환 교수는 "중국 정부가 반도체 등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해당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전자 측에 중국에 관심을 갖고 더 투자를 해 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겠냐"며 "최근 반도체 산업 육성과 관련해 미국의 중국 견제가 심화되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